가리부

3분 소설

by 차우진
c0146448_53761e295192f.jpg 이것은 다른 우주의 이야기


벌써 몇 시간째다. 쏠티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온 도서관이었지만 오늘처럼 거의 모든 서고를 뒤지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침내 찾아낸 책들이라곤 죄다 ‘그 단어’와 비슷한 것을 다룰 뿐,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문제는 그 빌어먹을 ‘단어’였다. 쏠티는 시립 도서관에서 가장 광범위한 장서를 자랑하는 인문도서 분야 서고에서 몇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1,584개의 장으로 구성된 <제 1우주의 탄생과 그 밖의 다른 우주들>을 끝까지 살폈을 때 쏠티는 마침내 두꺼운 책을 움켜잡고 폭발하려는 분노를 삭여야만 했다. 도서관에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모두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한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싸름과 키카는 심지어 뒤에서 비웃기까지 했다.


물론 쏠티도 알고 있었다. 친구들의 주장대로 8세대 인공지능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단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는 뜻이고, 그것은 쏠티가 어차피 헛수고를 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쏠티는 8세대 인공지능 따위는 믿고 싶지 않았다. 이미 5세대 시절부터 누락된 단어들이 많은 실패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쏠티는 항상 말했다. ‘평균 연령 200살이 넘는 늙다리들이 만든 물건 따위를 어떻게 믿어!’ 쏠티는 입버릇처럼 80살이 되기 전에 다른 우주로 가버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부모들은 기겁을 했다. 선지자들에 의해 ‘다른 우주’가 발견된 건 20세기 전이었지만 그 실체를 확인한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우주’란 ‘죽음’과 같은 뜻이었다.


8002465, 시간!


쏠티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최근 들어선 정부의 복지 정책으로 도서관 복도에는 분자 사이즈의 나노 컴퓨터가 부유하고 있었고 그 컴퓨터들은 공기의 진동을 감지해 사용자들의 명령어를 1/10,000,000초 단위로 분석하고 있었다. 도서관 사용자들은 자신의 아이디 번호와 명령어를 말하면 그 자리에서 해당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쏠티의 눈앞에 나노 컴퓨터가 구성한 홀로그램 숫자가 떠올랐다. 태양 주기 시간으로 오후 6시 45분이었다. 벌써 4시간 째 도서관을 배회하고 있었다. ‘언어학’ 수업에 빠진 대가로는 너무 비싼 헛수고였다. 해가 지려면 적어도 3시간은 남았지만 쏠티는 더 이상 빽빽한 서고를 뒤지는데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엄마 말대로 저중력 적응 트레이닝 센터에 등록할걸. 쏠티는 반중력의 도서관 복도를 아슬아슬한 몇 번의 점프로 지나갔다. 점프할 때마다 어지러웠다. 쏠티는 항상 가리부로 산다는 게 꽤 고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갓 40살이 된 아이치고 조숙한 생각이었다. 어쨌든 언어학 수업을 빠진 건 쏠티의 학점 관리에 치명적이었고 그냥 돌아가면 분해서 잠도 못잘 판이었다. 쏠티는 근성 있는 가리부였다.


그 단어는 처음 본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단어가 적혀있는 책 자체가 이상한 책이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두꺼운 종이와 희미한 잉크로 인쇄된 얇은 책이었다. 무척 오래된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쏠티는 정확히 그 책이 어느 시대에 만들어진 것인지 알지 못했다. 사실 그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었다. 쏠티가 궁금했던 것은 어떤 단어였다. 도대체 뭐지? 쏠티는 그게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단어 앞뒤의 수식어를 보면 그 단어가 어떤 생물에 대한 묘사 혹은 명칭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었다. 쏠티가 읽은 문장은 정확히 ‘커다란 거북이는 많이 먹는다. 많이 먹은 거북이는 느리다. 거북이는 원래 느리다.’였다. 단서는 ‘커다란’과 ‘먹다’와 ‘느리다’였다. 커다랗고 느린 것이 뭔가를 먹는다. 그게 건물이나 컴퓨터를 지칭하는 게 아니란 건 분명했다. 이건 어떤 생물일까. 쏠티는 40살짜리 학생답게 무한한 탐구심과 경외심에 휩싸였다. 탐구심과 경외심이야말로 가리부의 미덕이었지만 쏠티는 결국 해답을 찾지 못했다. 100살이 넘은 어른들도 쏠티의 질문에는 고개를 움츠리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8세대에게 물어봐. 그때마다 쏠티는 어른들이 지긋지긋했다.


거북이. 일단 커다란 거야. 얼마나 클까? 나보다 몇 배는 더 클까? 그럼 정말 많이 먹겠네. 그런데 도대체 뭘 먹는 거지? 그 덩치를 유지하려면 단백질과 지방과 탄수화물이 필요하지 않을까? 잡식이겠군. 그런데 그 커다란 게 숨이라도 쉬면 지금처럼 공기 정화용 나노분자가 도시 곳곳에 퍼진 상태에선 무지 곤란할 거야. 그러면 멸종된 걸까. 아냐. <멸종 동식물 도감 완전판>에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다른 우주의 생물일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우주는 최소한 12개인걸. 아무리 8세대 인공지능이라도 수만 억 종의 데이터를 죄다 스캔하지는 못했을 거야. 그렇다면 친구들 말대로 아예 존재하지 않는 생물인걸까? 그럼 이 책은 뭐지? 거북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생물인지 알 수가 없네. 아이고. 거북이라니. 거북이라니. 쏠티는 이어폰 타입의 헤드기어를 쓰고 끊임없이 낙서를 하고 있었다. 뉴런에 연결된 헤드기어는 전두엽에 직접 이미지를 구상하는 장치였다. 어른들은 30세미만의 아이들이 헤드기어를 쓰는 걸 보면 칭찬을 많이 했다. 상상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상상력이야말로 문명의 근간이었다. 쏠티는 몸이 자랄 때마다 헤드기어를 바꿨다. 덕분에 쏠티의 헤드기어는 모두 4개였다.


목을 잔뜩 움츠리며 쏠티는 생각했다. 아이고, 도저히 모르겠다. 마침내 쏠티는 제 멋대로 거북이에 대해서 상상하기 시작했다. 무거운 몸을 지탱하려면 다리가 많아야 할 거야. 4개? 6개? 앗 하지만 느리다고 했잖아. 그러면, 다리 수는 적어야 하겠지. 근육은 가리부보다 덜 발달했을 거고. 그럼 결국 다리는 두 개인건가. 그렇다면 직립을 했겠군. 직립인 채로 느리게 걸으려면 하체는 짧고 두꺼웠을 거야. 대신 머리는 작았겠지. 많이 먹는 생물들은 자고로 뇌가 발달하지 못했다고 배웠으니까. 그런데 팔은? 많이 먹으려면 어쨌든 팔이 많아야겠네. 하지만 다리가 두 개잖아. 그럼 팔도 두 개 이상이면 곤란하지 않을까?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을 테니까. 헤드기어가 쏠티의 뇌에 이미지를 새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다리는 두 개, 두껍고 짧은 다리. 그리고 불룩한 배. 그리고 기다란 두 개의 팔. 그리고 작은 머리. 몸에 털은 없었을 테고. 입은 컸겠지. 이때 쏠티는 거북이의 눈을 두 개로 그렸는데 거기에 대해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귀찮아서였다. 느리다고 했으니까 날개 같은 건 없었겠지. 쏠티는 자신이 그린 거북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그건 마치 100세기 전 쯤 제 4우주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생명체와 닮은 것 같았지만 당장 그 이름이 떠오르진 않았다. 뭐더라. 뭐였지? 호...뭐더라. 호.... 머... 아, 호머. 호머 사피에스 심슨이었나, 아니다. 줄여서 그냥 호머라고 했지. 쏠티는 킥킥 웃으며 목을 움츠렸다. 아이 정말 모르겠네. 8002465, 시간! 홀로그램은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현관으로 나가기 위해 저중력 복도를 지날 때 로비에 설치된 홀로그램 영사기에서는 가리부의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예고편이 방송되고 있었다. 진화에 대한 경외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다큐멘터리로 40세 미만 저학년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다른 40살짜리 아이들처럼 쏠티도 그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다. “가리부는 드디어 딱딱한 등껍질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직립의 역사가 시작된 덕분에 가리부는 우주 최고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홀로그램 영사기는 두꺼운 등껍질을 짊어지고 네 발로 느리게 기어가던 선조 가리부가 등껍질에서 미끄러져 나와 구부정한 자세로 일어섰다가 마침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직립을 하는 과정의 동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쏠티는 엄마가 만든 신선한 프랑크톤 요거트를 떠올리곤 입맛을 짭짭 다시며 막 현관을 빠져나갔다.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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