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창작 프로그램 참여자들과 함께 하는 이촌 국립중앙박물관 현장 방문날이다. 신용산에서 매주 모임이 있어 자주 가는 동네지만, 국립 박물관을 가 본지는 꽤 오래됐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갈 때면 항상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반가사유상이 전시된 ‘사유의 방’이다. 15년도 더 됨직하다. 무엇 때문에 박물관에 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처음 반가사유상을 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자그마한 방의 유리관 속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의자에 앉아 보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당시 회사생활이 힘들었다. 정체된 느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반가사유상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확고함이 있지도 않았다. 그저 편안해 보였다. 복잡하고 풀리지 않는 일상사로 어지러웠던 뇌가 비로소 쉴 수 있었다. 리셋이 되었다.
마음도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하여 들어가듯이 착 가라앉았다. 의자가 조금만 더 푹신하거나 누워있을 수 있다면 잠을 청하고 싶었다.
자주 찾자 다짐했다. 편안하게 쉴 곳을 발견해서 기뻤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이 거의 가지 못했다.
몇 년이 시간이 흐른 후 박물관에 갔다. 반가사유상으로 향했다. 여전히 좋다. 그러나 첫 번째 만남의 감동과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억지로 감동과 당시의 기분을 일으켜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2000년 강남역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쉴 때 밖으로 나와 강남역 주변을 걸었다. 하루는 횡단보도를 건너 타워레코드로 들어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강남역 랜드마크 중 하나였다.
마침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홍보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뉴욕 콘서트장에서 팝 여가수 여러 명이 나와 노래하는 CD를 광고하고 있었다. 헤드폰을 끼고 눈을 감았다. 티나 터나라는 흑인 여가수였다. 노래가 나오는데 전율이 느껴졌다. 닭살이 팔에 올라왔다. 그녀는 나에게 이상한 더벅머리를 한 그저 그런 여가수였다. 그런데 흥분과 감동이 크게 일어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힐링이었다,
며칠 후 다시 타워레코드를 찾았다. 프로젝트가 안 풀려 골치가 아팠다. 다시 헤드폰을 꼈다. 변한 것이 없는데 그 감동, 흥분, 전율은 없었다. 눈을 감아도 보았다. 집중도 했다. 그러나 다시는 느낄 수 없었다. 처음의 감동을.
이번 이촌 박물관을 방문 때 반가사유상 전시실을 보았다. 예전과 달리 널따란 전시실에 반가사유상 두 개가 있다. 전시실은 한껏 누군가의 창작과 콘셉트, 기교가 들어간 멋진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처음의 감동은 나에게 없다. 서로 마주 앉아서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동물원에 있는 느낌이다. 더 이상 사유와 편안함의 공간이 아니다.
예전의 소박한 전시실이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왜냐하면 예전의 감동과 추억을 되새김질해 볼 수라도 있으니까. 영화 1편의 성공에 고무된 제작자가 후속 편을 만들면서 아이디어와 스토리보다는 돈을 들여 스케일을 키우고 볼거리를 늘린 느낌이다.
반가사유상의 편안한 미소와 사색하는 모습을 방해 없이 보고 싶다.
처음 반가사유상을 봤을 때처럼 감동을 느끼고 싶다. 타워 레코드에서 티나 터너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전율을 느끼고 싶다. 감동과 전율은 의도치 않은 순간과 공간에서 일어났다.
다시 한번 그 순간이 왔으면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꼭 오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