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늘 나를 멈춰 세운다. 학창 시절 스스로에게 던졌던 형이상학적인 질문은 성인이 된 지금, 더 복잡하고 현실적인 무게로 다가온다. 플라톤과 데카르트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본질적인 자아가 있다지만, 나의 내면은 시시각각 변하고 통제할 수 없는 감정으로 어지럽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그렇다.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자아이며 이성으로 기개와 욕망을 다스리라는 플라톤의 말씀. 평범하고 게으른 나는 닿을 수 없는 이상이다.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라는 데카르트의 말씀도 끝없이 맴도는 잡념 속에서 길을 잃는다. 억지를 부리면 80억 인구 중에 나와 같은 잡생각은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고유한 존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차라리 데이비드 흄이나 장 폴 사르트르의 말씀에 많이 공감한다. 흄은 ‘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생각과 감정, 경험의 흐름이다.’고 주장했다. 사르트르는 ’나는 자유로운 선택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규정해 나가는 존재이다.’라고. 말했다. 공감은 하지만 깊이 와닿지는 않는다. 먹고사는 문제에 파묻혀 사는 일상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언제나 낯설다.
우리는 상대방을 파악하기 위해 고향, 가족, 학력, 직장 등 정형화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들은 명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기에 답하기 쉽다. 하지만 마음과 내면에 대한 질문 앞에서는 나 자신이 낯선 사람처럼 느껴진다. 진짜 '나'는 누구인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가끔은 부러운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명확히 알고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사람들.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은 이런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것이 거짓이고 위선일지라고 옆에서 경외의 눈으로 보게 된다.
회사 면접에서 성격이나 장단점을 묻는 질문에 항상 머뭇거렸다. 딱 떨어지게 나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향적인지 내성적인지, 흑백처럼 명확하게 나눌 수 없다. 내성적인 경향이 강할 뿐, 완벽한 내성형은 아니다. 성격에도 '중도'라는 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던 내게 구원처럼 나타난 것이 바로 MBTI다. 16가지 유형으로 성격을 분류하는 이 테스트는 모호함을 탈출할 근거를 제시한다. INTJ, 나의 MBTI다. 내향적이고(Introverted), 직관적이며(iNtuitive), 논리적으로 사고하고(Thinking), 계획적인(Judging) 사람. 내가 왜 성격 질문에 약한지, 왜 감정보다 논리를 우선시하는지, 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지 설명해 준다.
물론, MBTI가 나의 모든 것을 정의할 수는 없다. 강연장에서 만난 한 정신과 의사의 말처럼 임상적으로 활용되는 도구가 아니어서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이해하는 하나의 틀을 제공해 준다. 나의 장점으로 꼽히는 뛰어난 분석력과 통찰력, 전략적 사고는 회사에서 전략 마케팅 업무를 하며 다듬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혹은 원래 타고난 기질이 그 일을 통해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
단점인 공감 능력 부족, 완벽주의, 융통성 부족은 내가 균형 잡힌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메마른 감성을 채우기 위해 글을 쓰고 소설을 읽으려는 시도는, 내 안의 논리와 감성을 조화롭게 만들고자 하는 작은 노력이다.
아직도 완벽하게 '나'를 정의하지 못한다. 하지만 조급함을 버리고, 질문에 바로 답하기보다는 충분히 생각하고 답하는 여유를 가지려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완벽한 답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을 던지는 과정 자체는 나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정체성을 찾는 소중한 시간이다. 자주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 질문하고 글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