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배우는 '리더십'

by 자행가

아파트 단지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위쪽 테라스에 앉아 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다. 아침 산책을 할 때, 단지 내 묘지에 거주하는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중년 부부도 가끔 본다. 버려진 고양이를 보면 안타깝지만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낀다.


2001년 한 외국계 회사로 전직하면서 고양이 식품을 맡게 되었다. 당시는 개 전용 식품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보신탕문화가 만연하고 개에게는 집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나마 개는 상황이 나았다. 고양이는 인식이 안 좋았고 기르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나 자신도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어릴 적 밤에 담장을 지나던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눈빛에 온몸이 오그라들었었다. 무척 무서웠다. '집안에 고양이를 들이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어른들의 말도 떠올라 고양이를 피하게 되었다. 그런데 고양이식품 담당자가 되라니, 앞날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본사에서 보내온 고양이 기르기 책자를 발견했다. 당시 한국에는 개 기르기 관련 책은 드물게 있었지만, 고양이 기르기 책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책자를 번역하여 무료 배포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축산학과 출신인 사장님은 이런 접근을 좋아해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다. 책을 번역하며 고양이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고양이를 대하는 시각도 완전히 바뀌었다.


그 후로는 테라스 같이 높은 곳에 앉아 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더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게 되었다. 육식동물인 고양이는 높은 곳에 위치해 주변환경을 한눈에 파악하고 사냥감을 찾던 오랜 습성이 남아 있다. 높은 곳은 낯선 사람이나 큰 동물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다. 고양이는 350만 년 전 표범, 사자, 호랑이 무리와 나뉘어 진화한 포식자군이다.


농업이 발달하면서 수확한 곡식을 갉아먹는 쥐는 큰 골칫거리였다. 인간은 고양이가 쥐를 탁월하게 사냥하는 능력을 인정하고 고양이와 함께 하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고양이를 숭배하여 고양이 여신 바스테트(Bastet)가 탄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독교가 확산되면서 이교도 신앙은 배척되었고, 고양이는 점차 악마와 동일시되었다.


고양이의 습성 또한 악마화에 일조했다. 고양이는 쥐 사냥을 하거나 동료들과 놀 때 밤에 활동한다. 중세 사람들은 이러한 야행성을 어둠 속에서 비밀스러운 행위를 하는 악마와 연결 지었다.


1233년 교황 그레고리 9세가 발표한 교서에서 흑고양이를 사탄의 화신으로 묘사하는 내용을 포함하면서 악마화는 확대 재생산되었다. 당시 약초로 병을 치료하거나 혼자 사는 여성들이 고양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고양이를 소유하는 것 자체가 마녀의 증거로 악용되면서 수많은 여성과 고양이가 화형을 당했다.


고양이가 사라지자 쥐의 수가 급격히 늘었다. 이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흑사병의 원인이 되었다. 쥐의 털에 서식하는 벼룩이 흑사병의 숙주였기 때문이다. 결국, 쥐를 잡는 역할이 다시 중요하게 인식되면서 고양이는 농장과 배에서 귀중한 존재로 부활했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독립성이 강하다. 중세 사람들은 고양이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길들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동물로 생각했다.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고양이의 독립성은 불안감을 유발했다. 이는 고양이 악마화의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다양성과 평등한 관계가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 잘 맞다. 개는 주인을 신처럼 따르고 적응하려 하지만, 고양이는 자신을 신이라 여긴다고 한다. 과거 조직은 윗사람의 말을 잘 듣고, 말하지 않아도 의중을 잘 파악하고, 눈치껏 행동하는 사람들을 선호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개성이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예전처럼 명령하고 결과를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조직을 이끌 수 없다.


고양이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편이라 주인의 입장에서는 깐깐하고 다루기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기보다는 우선 관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행동과 표정을 살피고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장점을 끌어내어 강점으로 만들어 줘야 한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많은 요즘, 자신의 방식과 생각을 강요하기보다는, 관찰하여 잠재력을 발견하고, 이를 강점으로 키워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고양이와 함께 할 때 요구되는 관찰과 존중의 자세는 강요보다 자율성을 중시하는 21세기 리더가 갖추어야 할 필수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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