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생각하면 항상 담배를 피우던 모습과 일본어를 공부하시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안방에는 담배와 재떨이, 그리고 일본어 교본과 녹음기가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담배를 달고 사셨다. 말년에는 담배를 말아 피우셨다. 고급진 빨간색의 깡통 속 담배는 향이 참 좋았다. 원래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데 이 냄새는 뭔가 고소하고 향이 좋았다.
아버지는 후두암으로 돌아가셨다. 술은 안 드시니 담배와 스트레스가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수술 후의 아버지의 모습은 초췌했다. 목 중앙에 구멍이 뚫리고 플라스틱 마개로 덮여 있었다. 말씀하려 할 때마다 플라스틱 마개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충격이었다.
180센티미터 가까운 키에 고교 시절 축구 선수로 활약하실 만큼 건장하신 분이었다. 36년생인 아버지 또래 친구분 중에 아버지만큼 크신 분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타까웠던 것 중 한 가지는 그토록 가고 싶어 하시던 일본 오사카 여행을 가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는 항상 쉬는 시간이나 틈만 나면 일본어 공부를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왜 일본어를 공부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본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것도 아니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신 분이 영어는 관심이 없었다. 옆집 가게에 미국 사람이 왔을 때 아버지를 부른 적이 있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했다고 하니 부른 것이다. 그러나 한 마디 못하고, 나오는 모습이 기억난다. 대학 때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왜 영어를, 한 마디 못하지?’하고 실망했었다.
그러나 일본어는 유창하셔서 일본 관광객이 올 때면 아버지가 나서서 통역을 하셨다. 오사카에서 사시다가 한국에 오셔서 수산물 수출을 하시는 분이 있었다. 그분에게 아버지가 오사카 곳곳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무척 놀라워하는 것이 기억난다. 오사카 살았던 자신보다 오사카를 잘 안다며 일본에서 살지 않았냐고 재차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일본어뿐 아니라 오사카 지역 소개 책을 펴 놓고 공부하셨다. 80년대는 일본과의 관계가 단절된 때라 일본 서적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굉장히 비쌌다. 그래도 알음알음 일본 서적을 구해서 공부하셨다.
녹음기에서는 항상 일본 엔카가 흘러나온다. 아버지가 듣던 음악은 트로트와 일본 엔카다. 당시 엔카는 금지되어 있었다. 젊었을 때 거처하시던 어느 할머니 댁과의 인연이 오사카에 거주하는 그 할머니 댁 자식들과의 관계로 이어졌다. 아버지는 그 가족과 관련된 일을 가끔 봐주었다. 우리 집에는 답례로 받은 일본 제품들이 많았다. 선물 중에는 일본 엔카 테이프도 있었다.
70년~80년대 일본은 한국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선진국이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역사적 문제에 대한 교육을 받아온 나로서는 일본 엔카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우연찮게 해 주신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일본으로 돈 벌러 밀항하려고 했었단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는 바람에 포기했다고 하셨다. 몹시 아쉬워하셨다. 요즘 방송에 동남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몇 년 일하고 돌아가서 건물 짓고 배운 기술로 사업한다는 것을 봤을 때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때 아버지가 다녀오셨으면 나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 지금이야 한국이 많이 잘살게 돼서 에피소드로 생각하지만, 어릴 때는 아버지가 다녀오셨으면 했었다.
아버지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셨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꿈을 중도 포기했다. 그 후 도청에 다니시다가 사업을 하기도 하고, 실패해서 노시기도 하고, 음식점을 하시는 등 많은 일을 하셨다. 도청에 그냥 다니시지? 그랬더니 글씨체가 악필이라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고 하셨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참 성실하셨다. 항상 새벽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셨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다. 주말도 없었다. 그 덕에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감사한다.
일을 그만두신 뒤 아버지는 오래 마음속에 간직해 온 일본 여행을 드디어 결심하셨다. 오사카에 사시는 재일교포 가족분의 초청장을 손에 들고, 아버지는 옷장에서 정장 한 벌을 꺼내 넥타이를 매고 여권 사진을 찍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출국을 며칠 앞두고 갑작스레 체중이 줄어들어 병원으로 가셨는데 후두암 진단을 받았다. 그 후로 2년간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셨지만 끝내 일본 여행을 가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시던 오사카는 결국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이 되고 말았다.
회사 일로 일본 고베 출장을 가게 되었다. 첫 일본 방문이었다. 고베는 오사카와 바로 붙어 있다. 출장 중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특히 간사이 공항에서 고베 시내로 들어가는 도중에는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했지만, 아들과는 가끔 떠난다. 평소에는 따로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아 함께 여행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아들은 여러 나라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여행을 가장 선호한다. 동남아나 홍콩, 대만 등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여행을 가자고 하면 늘 일본으로 가자고 한다. 아들과 일본 여행할 때면 아버지가 계속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학업은 마쳤으나 IMF 금융위기 시절이라 취직을 못하고, 백수로 지내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좀 더 살아 계셨으면 아버지와 일본 여행도 같이 갔을 텐데 아쉽다.
생각난 김에 이번 겨울, 오사카에 다녀와야겠다. 아버지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 하셨던 오사카가 아닌가.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아들과 함께 다녀와야겠다. 오사카 곳곳을 함께 걸어야겠다. 그때 아버지도 함께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가 많이도 그리운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