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태어나 살다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고향인 제주로 내려갔는데 며칠 후 갑자기 과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심지어 딱히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던 과 동기들까지 넉살 좋게 집으로 찾아왔다.
집에서 밥도 해 먹이고 잠도 자며 며칠을 같이 지냈다. 반가움은 잠시, 계속해서 찾아오는 동기들에 힘이 들었다. 이후 방학 때 제주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짧게 일주일만 있다가 서울로 돌아오곤 했다.
동기들은 제주도라는 육지에서 쉬이 느껴볼 수 없는 특별함에 반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신기함에 눈을 반짝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면서 섬이 주는 낮선 매력을 마음껏 즐겼다.
하지만 내게는 그저 집이 있는 너무나 익숙한 공간일 뿐이라 오히려 그들의 감탄을 보며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이 설레며 나서던 여행 코스도 대부분 따라가지 않았다. 나에게는 특별함이 아니라 익숙함이었다. 어릴 적 시외버스 멀미의 기억도 겹쳐 굳이 먼 길을 함께 다닐 마음이 나지 않았다.
제주 관광 명소에 대해 잘 모른다. 고등학교 때까지 사는 동네와 학교 주변만 다녔지, 관광지까지 가본 적이 거의 없다. 관광객이 다니는 동선과 일반인들이 다니는 동선이 다르다.
결국 내게 “제주도”는 그저 나와 내 가족이 서 있는 땅, 특별하지도, 아름답다고 미화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배경이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 땅 위에 있는 가족과의 시간과 익숙함이었지, 제주라는 장소 자체의 특별함은 아니었다.
서울에 처음 와서 신사동 이모 댁에서 지냈다. 중학생인 사촌 동생과 한강 변을 산책하는데 가게에서 생수를 사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물을 사 먹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제주에서는 수돗물을 마셨다. 물론 제주에서 먹는 수돗물과 서울 수돗물은 맛이 확실히 다르다.
어느 순간 ‘삼다수’가 청정 제주라는 이미지 아래 인기리에 팔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나 자신도 이제 제주에 가면 생수를 사 먹는다. 수돗물을 먹어도 되는데 왠지 찝찝하다.
2000년 초반 거래처에서 밥을 먹자고 해서 같이 간 적이 있다. 도착한 곳은, 압구정동에 자리한 한 식당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인테리어가 잘 된 고급 일식집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거래처 직원이 당일 비행기로 공수한 고등어회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핫한 장소라고 했다. 가격도 고가였다. 어릴 적, 고등어는 흔하고 저렴한 생선이었다. 당시 고등어는 구이나 찌개로 먹는 것이 전부였고, 회로 먹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 했다.
어릴 적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을 때 고등어는 우리 집 단골 메뉴였다. 젓가락으로 고등어구이 껍질을 벗기면 하얀 살 위에 갈색 테두리가 있다. 아버지는 갈색 테두리가 소고기라며 먹어보라고 했다. 부드럽고 밋밋한 맛의 하얀 속살과 달리 갈색 소고기는 진득한 고소함이 있었다. 70~80년대 초반 소고기는 제사 때나 먹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고등어가 압구정동 고급 식당에서 소고기와 버금가는 가격에 팔리는 귀하신 먹거리가 되었다. 저렴한 생선이었던 고등어의 변신을 보며, 논밭, 채소밭이었던 곳이 서울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화려한 강남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이러한 고급화의 물결은 비단 고등어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곳곳에 제주 흑돼지 전문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번은 고등학교 동창 모임을 하게 되었는데 장소가 제주 흑돼지 집이었다. 한 동창이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흑돼지 대부분은 일본으로 수출된다고 했다. 그래서 어디서 이 많은 서울 흑돼지 집에 고기를 공급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10년이 지났을까 직장 후배가 요즘 핫한 돼지고기구이 집이라며 성수동에 있는 제주 근고깃집으로 데려갔다. 깍두기같이 자른 고기를 굽고 멸치젓에 찍어 먹는 식당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근고깃집은 방위병 시절, 시장에서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동료들과 소주를 마시던 곳이었다. 그런데 비싼 돼지고기 구이집으로 변신해 있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제주 음식의 고급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고향인 제주도로 되돌아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제주 곳곳에서 돼지고기와 향토 음식이 고급화되어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집에서 삶은 돼지고기를 넣어 간단히 끼니를 해결했던 국수는 이제 '고기국수'라고 불리며 비싸게 소비되고 있다. 깔끔하게 인테리어가 잘된 고기국숫집에는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더 이상 아버지 손잡고 가서 먹던 부둣가의 삼백 원 하던 국숫집은 찾을 수가 없다.
요즘 케이 팝 데몬 헌터스라는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를 기반으로 소니와 넷플릭스라는 미국 회사의 자본과 한국계 미국인과 캐나다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영화이다. 그들이 접해보지 않는 한국문화에 자신들의 정서를 입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냈다. 케이 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주는 문화는 순수한 한국 전통문화와 글로벌 정서가 혼합된 한국 퓨전 문화이다.
제주 음식의 변신도 지역에 한정된 고유한 변화가 아니다. 1990년 말 강남 삼성동에 맛보았던 베트남 쌀국수는 미국 문화와 융합된 퓨전화 된 베트남 음식이었듯, 제주 음식도 외부의 시선과 자본을 만나 재해석되고 있다. 이제 제주는 단순히 “청정한 고향”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된 트렌드가 다시 제주 고유의 것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문화공간이 되었다.
제주가 고향인 사람으로서 이런 변화는 흥미롭기도 하고 때로는 낯설게 느껴진다. 가끔 제주를 찾았을 때는 마치 틀린 그림 찾기처럼 변화한 제주 곳곳을 찾아내는 것이 소소한 재미다. “여기가 이렇게 바뀌었네?”하고 발견할 때마다 반가움과 놀라움이 함께 느껴진다.
하지만 관광객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보다 아이였던 나의 발자취를 되새기며 골목골목을 걷게 된다. 휘황찬란한 제주 퓨전 음식을 마다하고 정감 가는 동네 골목의 작은 식당으로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한다. 결국 서울로 돌아왔을 때 떠오르는 음식들도 그런 골목 식당들이다.
고향을 방문할 때 고급스럽고 멋진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도 좋지만 정감 있는 동네 골목 식당을 찾는 것이 편안하고 힐링이 된다. 지금의 ‘나’가 아닌 어릴 적 내가 앉아 있는 듯한 감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들리는 고향 사투리가 편안하다. 눈으로 익숙한 풍경을 보고, 코로 익숙한 집밥 냄새를 맡으며, 귀로 사투리를 듣는다. 어느새 자연스레 서울말에서 사투리로 말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