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가입했던 어학모임의 한 멤버가 단톡방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매주 수요일 강남역에서 만나 두 시간 동안 독일어공부를 했었다. 많이 모이면 5명 정도였다. 스터디 이외에 가끔 강남역 근처 방을 빌려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곤 했다.
모임에 가입한 지 몇 달이 지났을까. 식사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연배가 있는 여성분이 나를 자신들만의 단톡방으로 초대했다. 나를 포함하면 여덟 명이 있는 방이다. 기존 일곱 명은 관계가 이미 오래되었고 가까워 보였다.
2년 전부터 더 이상 모임이 진행이 되지 않았다. 스터디룸 예약 등 ‘귀찮은 잡일’에 적극적이던 30대 초반 여성멤버가 활동을 멈췄다. 나중에 보니 임신 중이었다. 그 후 스터디는 완전히 멈추었다. 그러다 올 초에 한번 보자는 연락으로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 만남 이후 더 이상 모임은 없었다.
한 달 전 한 남성멤버가 결혼하다고 여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단톡방에 올렸다. 다른 멤버처럼 활발한 축하인사는 건네지는 못하고, 의례적으로 “축하한다”는 문자를 남겼다. 사실 그를 가끔 보긴 했지만 거리감이 있다. 만났을 때 성격상 서로 살갑게 대하거나 가깝게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와의 관계는 의례적 관계라고 생각했다.
가까운 멤버들이 '결혼식에 가니 마니' 하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결혼식에 간다고 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관망하기로 결정했다.
과거 20대 후반, 친구 A가 친구 B의 결혼식에 가서 밥이나 먹자고 했다. B는 알고 지내기는 했으나 몇 년간 못 본 사이였다. 나는 청첩장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냐고 했다. 그리고 수중에 축의금을 낼 돈도 없었다. 친구 A가 “친구사이에 무슨 상관이냐"며 자기도 축의금 안 낸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할 일도 없고 가서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오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식장에 들어서자마자 잘못 왔음을 실감했다. B가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왔지?’하는 표정이었다.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는데 왔으니 당연하겠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당시 졸업하고 백수였던 나는 초라함을 느꼈고, 자존심이 상했다. A도 기분이 그랬는지 나보고 “결혼식 보지 말고 밥이나 먹고 가자.”라고 했다. 고급스럽게 차려진 뷔페음식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나올 걸 ‘모양 빠지게’ 음식을 왜 먹었는지 모르겠다. 이후로는 결혼식 참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간다.
일주일이 지나 독어모임 단톡방에 강남역 한 식당에서 보자는 알림이 떴다. 두 명은 아프다고 해서 나까지 포함해 여섯 명이 모이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5시, 집에서 한 시간 좀 넘게 걸려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미리 와 있는 멤버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농담삼아 한 멤버에게 물었다.
“스터디 모임은 2년째 진행이 안 되는데,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면서 이렇게 모임이 진행되는 게 신기하네요.”
상대는 “네. 저도 다른 모임이 있는데 그곳도 그래요.”라고 답했다.
솔직히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 상대방의 ‘이름’을 모른다. 단톡방에 등재된 닉네임만 알뿐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각종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고, 주로 인터넷을 통해 모임을 알고 참여했다. 인터넷을 통한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사람을 만날 때 바뀐 것이 있다.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물어보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척 힘들었다. 이름, 나이, 학력 등 개인정보를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분위기상 물어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적응하고 살다 보니 이제는 전혀 상대방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십 년 이상을 그렇게 하다 보니, 이제는 남이 나에게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이 무척 불편하다.
온라인미팅 초기에는 이름도 교환하고 서로 명함도 주고받고 했으나, 요즘은 이름도 묻지 않는다. 나이도 물어보지 않는다. 상대방이 뭘 하는지도 본인들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대화 속에서 유추할 뿐, 물어보지 않게 되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도중에 초대자가 청첩장을 건넸다. 아니나 다를까, 청첩장 봉투에 단톡방에 등재된 대로 ‘ㅇㅇ님께’라고 적혀 있다. 단톡방에 성 없이 이름만 등재했기 때문이다. 나도 솔직히 초대장을 건네는 당사자의 정확한 이름을 모른다. 이번에 청첩장을 받게 되어 알게 되었다.
그래도 청첩장을 받으니 다행이다. 무작정 단톡방 알림만 보고 행동하기엔 심적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서로 이름도 모르고 무엇을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즐겁게 대화를 했다. 독일과 독일어에 대한 동일한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즐겁게 식사하고 차도 마시면서 즐겁게 떠들다 헤어졌다. 오기 전에는 계좌번호로 돈을 보내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웃고 떠들다 보니 결혼식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