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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Feb 02. 2020

1월, 그것밖에는 쥘 것이 없어 손에 쥔

타인의 심장 <시의 힘>

시는 말이 실패한 자리에서 태어납니다. 말이 심정을 대변하지 못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뜻을 나르지 못하고, 사건과 세상을 온전히 담지 못할 때 생겨나는 안타까움과 억울함, 애달픔, 혼란, 분노와 통탄 같은 것들이 거름이 됩니다. 그리하여 시는 말의 꼴을 하고 있으되, 말이 닿지 못한 곳을 향해 있습니다.


말이 통째로 실패한 시대와 사회에서, 시는 더욱 절박해집니다. 재일조선인 2세로, 한국어와 일본어의 경계에서 살아온 저자의 삶에 남은 시들은 붉게 달구어진 돌 같습니다. 뜨겁고, 치열하며, 다른 세상을 갈망합니다. 그 시들을 전하며 시인이란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저자는 일갈합니다.


저는 저자의 어머니인 ‘오기순’의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해 이 책을 거듭 읽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힘들게 생계를 꾸리느라 글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가 글을 익히기 시작한 것은 쉰 살 무렵, 아들들이 한국의 독재 정권에 의해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을 때였습니다.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한국에 오려면, 공항과 호텔, 형무소 등에서 각종 서식을 작성해야 했고, 그러려면 글을 써야 했던 것입니다. 그때 연습하며 썼던 “힘차게 눌러쓴 진한 글자. 말 안 듣는 소학생 같은 글자”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그 한 획 한 획에 담겼던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다 울컥해지고 맙니다. 일제에 당했던 설움에 더해, 조국이라 믿었던 한국에 대한 배신감, 벼락같은 운명에 처한 원통함, 갇힌 아들들을 향한 애끓는 심정…. 심상한 단어들이었겠으나, 한 사람의 온 생애가 담겼을 그 글자들을 떠올리면, 우리의 쉽고 쉬운 말들로 이어진 관계와 지은 세계란 얼마나 허약하고 비루한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왜 시가 아니란 말입니까.


이 페이지, 읽어보세요!


그렇다면 시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시인이란 어떤 경우에도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요컨대 이것은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 효율적인지 아닌지, 유효한지 어떤지 하는 이야기와는 다르다는 말이다. 

내가 뭔가를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네는 너무 올곧아. 그래가지곤 이길 수 없어”라든가 “네 주장을 받아들이게끔 하려면 좀 더 부드러운 말투를 써야 해”라고 조언을 해준다. 고맙긴 하짐나 이는 틀린 말이다. 승산과 유효성에 관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게 아니라,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존재하는 루쉰에게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이렇게 살겠다’, ‘이것이 진짜 삶이다’라는 무언가를 드러내야만 한다. 시인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사회가 양극화되고 격차가 심해지는 까닭에, 일부 재벌이나 부유층은 기세가 등등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경쟁 사회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 인구는 일본의 절반 정도이지만 자살자 수는 일본을 웃돌 만큼 많다. 

“상처 입고 소외된 사람들”은 정희성의 말이다. 한국에서도 “상처 입고 소외된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하는 것이 시인에게 부과된 커다란 과제다. 1970년대, 1980년대 같은 피투성이 잔치는 끝났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언제 되살아날지 모르지만......) 하지만 시인은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을 노래할 방법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물론 옜날과 같은 가락으로 같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해야만 한다. 그것이 시인의 소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도 똑같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 사회에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시인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가 시인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요구하고 있다.(154~155)     


여기 노트 한 권이 있다. 첫 페이지에는 ‘오기순’이라는 세 글자가, 다음 페이지에는 우리 집 주소가 한 면 가득 빼곡이 거듭 쓰였다. 힘차게 눌러쓴 진한 글자. 말 안 듣는 소학생 같은 글자. 어떤 페이지엔 히라가나 50음, 다른 페이지에는 고기 어가 붙는 온갖 한자, 또 다른 곳엔 <꽃조개의 노래> 라든가 <야자열매> 같은, 좋아하던 노래 가사. 온갖 것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형들이 투옥되고 나서 어머니는 혼자 글자 연습을 시작했다. 쉰 살이었다. 그 나이까지 어머니가 글을 쓸 줄 몰랐던 것에는 충분한 배경과 이유가 있다. 그 나이가 되어 온 힘을 다해 글자를 익히기 시작한 것엔 더욱 사무치는, 더 큰 이유가 있다. 형들이 보고 싶어 한국을 한 번씩 왕래하려면, 공항의 통관 절차, 호텔 투숙, 감옥의 면회 신청, 차입 등 최소한 이름과 주소를 써야만 했기 때문이다. 갇혀 있는 아들들을 위한 어머니의 투쟁에는 이런 일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투쟁은 이렇게 까마득하고 기가 막힐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174)


돌 

정희성      


돌을 손에 쥔다

고독하다는 건 단단하다는 것 

법보다 굳고 

혁명보다 차가운 

돌을 손에 쥐고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불과하다는 

시를 보며 돌을 쥔다 

배고프지, 내 사람아 

어서 돌을 쥐어라 

입술을 깨물려 

손에 돌을 쥐고 

청청한 하늘을 보며 내 사람아 

돌밖에 쥘 것이 없어 

돌을 손에 쥔다 

(151)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11월부터 멈포드의 서재는 동네 서점 '니은서점'@book_shop_nieun과 함께 엽니다. 3개월간 진행하는 시즌 1의 주제는 '타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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