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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Nov 06. 2022

2년 만에 산정 특례를 등록했다

아무래도 회사가 조금 편해진 모양이다

 2년 전, 뇌하수체에 종양이 있단 진단을 3차 병원에서 들었을 때였다. 진료실을 벗어나는 내게 간호사가 다가와 종이를 건네주었다. ‘산정 특례 등록서’였다. 그냥 하단에 사인만 하면 됐다. 그 외의 절차는 병원에서 알아서 처리해주는 모양이었다.


때마침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어떤 이가 산정 특례에 대해 문의를 하는 중이었다. “저는 산정 특례 적용 안 되나요?” 그러자 카운터에 앉아 있었던 직원이 “의사 선생님께서 따로 말씀이 없으셨어요. 요건 충족이 안 된 거로 아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해볼게요.”라고 답했다. 그 뒤의 대화는 잘 안 들렸지만 문의한 환자는 계속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끝내 등록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나는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내 손에 쥐어진 종이를 내려 보다가 이걸 준 간호사에게 뒤늦게 물어보았다.


 “저... 좀 고민해도 될까요?”

 “뭘요?”

 “산정 특례 등록하는 거요.”


 누군가에게 아쉬울 수 있는 이 산정 특례 등록이 내게는 불편했다. 내 말에 간호사는 의아하듯 “아, 네.”라고 답했다. 그 뒤 병원 복도로 나가 한참을 서성였다. 여러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관련 사례를 인터넷 검색도 해보았고 혹시 몰라 보험사와 연락도 나누었다. 같이 온 엄마와도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몇십 분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등록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산정 특례란 중증질환 및 희귀·중증 난치질환자에게 본인부담금 등을 감면해주는 제도이다. 쉽게 말해 진료와 약 처방을 싼 비용으로 받을 수 있는 제도다. 만일 산정 특례를 등록했더라면 나 같은 경우 뇌 관련 질병에 한하여 5년간 이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었다. 기간이 만료된 이후에 재등록하면 또 5년간 적용받을 수 있다. 비용은 10%만 내면 됐다. 경과를 살피고자 MRI 진료를 한번 받으면 50만 원 이상은 우습게 깨지는데 산정특례 등록자는 그 중 5만 원만 내면 되는 것이다. 무척 유용하고 감사한 제도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좋은 제도가 내게는 불안 요소로 다가왔다. 그때는 한창 취업을 준비할 때였고 내가 언제 어떤 회사에 무슨 직종으로 정규직으로서 소속될지 알 수 없을 때였다.


많은 기업에서 최종 입사 전 신체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 기업에 지원한다면 혹여 어떤 경로로 운 나쁘게 내 병력이 밝혀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드물기는 하지만 입사 전 국민건강보험 급여 내역을 제출하라는 기업이 있다고도 들어 불안함은 더욱 커졌다. 사기업인 이상 입사자의 병력은 ‘절대로’ 조회할 수 없단 내용을 강경한 어조로 밝히는 뉴스에서조차 ‘그럼 사기업이 아닌 곳에서는 알 수 있다는 거야?!’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나는 많이 불안해했었다.


원래 내 성격이 그렇다. 유구한 역사다. 어떤 일을 앞두기 전 무수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결정을 내릴 때까지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는 성격. 좋게 말하자면 신중한 성격이고 정확하게 꼬집자면 다소 유별난 성격이다.


그 불안의 근간에는 내 괴팍한 성격만이 들어있지 않았다. 기업에 대한 강한 불신도 함께 들어 있었다. 솔직히 시인하자면 한때 나는 ‘회사 = 피도 눈물도 없는 단체’라고 굳건히 믿어왔다. 이 세상에는 나쁜 회사와 조금 덜 나쁜 회사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물론 좋은 회사가 있기야 하겠지만 그건 유니콘 같은 존재라 내가 감히 알아챌 수도, 발을 들일 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연일 야근을 시키면 화가 나면서도 ‘역시 회사라서 이렇구나!’라며 상황을 납득했다. 입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으면 황당해 하면서도 ‘역시 회사라니까~’라며 상황을 어찌어찌 넘겼다.


회사에서 일했을 때만 불신을 가진 건 아니었다. 취업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사례가 문득 생각이 난다. 어느 유명 대기업에서 지원 서류가 통과되었을 즈음이었다. 2차 시험인 인·적성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고 나는 준비를 위해 해당 기업의 시험을 열심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 문제가 나오는지, 어떤 걸 공부하면 되는지, 합격점은 평균 몇 점인지 등을 찾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대기업, 인성 검사를 무려 두 번이나 본다! 1교시에는 일반 인·적성 검사를 보고, 2교시에는 심화 인성 검사를 본다고 했다.


왜 이런 특이한 방식인건지 궁금해서 취업 사이트에서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별 해괴한 소문을 읽을 수 있었다. 예전에 이 대기업에서도 인·적성 검사를 한 번만 봤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부 임직원이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건이 생긴 뒤 심화 인성 검사를 추가로 도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인지, 유언비어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실제로 해당 기업에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 생겼고 끝내 자살한 직원이 몇 분 계시긴 했다. 게다가 시험장에서 가서 직접 받아본 심화 인성 검사지에 이런 식의 질문이 빼곡하게 적혀있기도 하였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평소 기분이 가라앉는 경우가 많습니까?]

 [우울감을 종종 느낍니까?]


 누가 보아도 이건 우울증 검사였다. 우울증 환자나 혹은 걸릴 가능성이 있는 인물은 입사 전 미리 배제하겠다는 심산이 너무 눈에 잘 보였다. 우선 최선을 다해야 하니 ‘아니요.’ ‘절대 아니요.’란 답변 칸에 거의 체크를 했지만 감정은 차게 식어갔다. 병력 조회를 못 하니 이런 식으로 캐묻겠다는 거지? 이미 정이 떨어진 상태여서 그런지 며칠 뒤 날라온 탈락 통보에 아쉬움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이런저런 경험과 특이병력을 가진 이들은 미리 떨어트린다는 항간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으로 인해 나는 산정 특례 등록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실비 보험이 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지만 만일 보험이 없었다고 해도 조금은 고민했을 것 같다. 내게 있어 회사란 그렇고 그런 곳이니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뇌종양 진단을 받은 지 2년이 지났다. 현재 나는 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재직 중인 G사는 내가 지금껏 제일 오래 다닌 회사이며, 동시에 내가 가장 만족해하며 일하는 회사다. 규모는 작지만 기업 문화와 분위기, 가치관이 마음에 들었다.


 G사에 다니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반차를 내고 3차 병원을 찾아갔다. 뇌종양 경과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여러 검사를 받고 진료를 받았다. 약 처방전을 들고서 수납 장소로 찾아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또다시 나는 산정 특례 등록신청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간호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요청했다.


 “산정 특례를 등록하고 싶습니다. 신청서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긴 세월 고민했던 것치고는 쉽게 등록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간호사는 곧 신청서를 준비해주었고 나는 하단에 주저 없이 사인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등록됐다는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G사가 내 생애 최고의 회사가 맞긴 하나 솔직히 회사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남아있는 채다. 함부로 병력 조회를 할 수도 없고, 설령 알았다 쳐도 업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나를 함부로 해고할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아마 나는 계속 이럴 것이다. ‘마,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의 건배사를 회식에서 할 일도 없을 테고, ‘회사 = 피도 눈물도 없는 단체’라는 사고방식을 완전히 버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전보다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아무래도 회사가 조금 편안해진 모양이다. 안 그래도 얼마 전 G사 동료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었다. 요즘 편해 보여, 라고.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입사 초에는 벽을 세운 느낌이었어. 그녀는 그런 말을 덧붙이기도 했었다.


개인적인 고민이 있어 머리가 지끈거리는 나날을 보내긴 했지만 그런 사생활과는 별개로 회사 생활로만 따지자면 그녀의 말대로였다. 근래, 나는 회사를 편하게 다니고 있었다. 동료의 말에 나는 순순히 그렇다고 답했었다.


어쩌다 보니 이런 경험을 다 해본다. 두터운 불신 속에서도 ‘그래도 이 회사라면 다르겠지.’라는 믿음이 꾸역꾸역 자라고 있다! 신박한 신뢰였다. 사실 다르든, 안 다르든 이제는 별 상관없어진 기분이다. 병으로 꼬투리 잡을 회사면 애초에 안 다니는 게 훨 낫지, 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드는 까닭이다.


이런 변화도 일종의 성장인 걸까? 내가 단단해진건지, 어떤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확실한 건 예전보다 내 마음은 좀 편해졌고 카드값은 덜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산정 특례를 등록한 후 나는 약국에서 구천 원의 영수증을 받을 수 있었다. 원래 약값은 구만 원이었다. 엄청난 할인이었다. 나는 기분 좋게 약봉투를 들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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