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순간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이다.
오늘은 몇 시에 일어날지, 무슨 반찬을 먹을지, 운동을 할지 아니면 드라마를 볼지, 어제 지운 게임 어플을 다시 깔지 말지, 지하철에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할지 아니면 좀 더 눈을 감고 있을지.
하나하나 모두 스스로 선택한 것, 또는 무의식적이고 습관화된 선택이다.
그런데 결혼을 준비하면서 선택의 열쇠가 나에게 주어지는 일이 특히 더 많았다. 남자친구와 같이 의논하고 선택해야 하는 식장, 신혼집, 혼수도 있었지만, 플래너, 스드메, 반지를 비롯해서 앞으로 골라야 할 혼주 메이크업, 청첩장, 부케까지 일반적으로 신부의 손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았다.
스튜디오에서 인물 중심이 좋은지 배경 중심이 좋은지,
드레스는 레이스와 비즈 중에서, 풍성과 슬림 라인 중에서 뭐가 좋은지,
메이크업에서 특별히 원하는 스타일이나 주의할 점이 있는지.
청첩장은 직사각형과 정사각형 중 어떤 모양으로 할 것이고 문구 내용과 글씨체는 무엇으로 할지,
부케 색깔과 꽃 종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평소 사진이나 화장에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고 디자인이나 예술적 감각도 없다 보니, 결혼식을 위해 하나하나 세세하게 비교하고 선택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내 눈에는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느껴져 선택지마다 차이를 구분하기도 어려웠고, 그중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나를 돋보이게 해 줄 선택지를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단 한 번이라는 이유로 선택은 더 신중해지고 고민은 더 깊어지기만 했다.
결정장애로 괴로울 때마다 내가 붙잡은 지푸라기는 바로 주변 사람이었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실장님은 어떤 게 저한테 어울리는 것 같으세요?"
"다른 사람들은 보통 어떤 거로 해요?"
그러나 이렇게 물어볼 때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신부님이 마음에 드는 거로 고르셔야 후회가 없어요."
결혼 준비에서 요구되는 수많은 선택 중에서 결혼반지는 나에게 특히 더 어려운 숙제였다.
일단 뭐가 예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보면 예쁜 것 같다가도 저렇게 보면 또 그냥 그랬다.
남들이 하는 업체, 남들이 하는 스타일이 좋은 건가 싶어서 인터넷, 웨딩 커뮤니티, 내 주변 사람들의 결혼반지를 살펴보았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들 예쁘다고 하는 디자인은 내 눈에 별로 예뻐 보이지가 않았고, 별로 인기가 없는 상품들에 오히려 관심이 가곤 했다.
내가 반지 보는 눈이 없는 게 아닐까. 미적 감각이 없어서 그런게 아닐까.
남들이 다 예쁘다고 하는데는 이유가 있을텐데. 그거 말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골라도 되는 걸까.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아무것도 못하고 고민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평생 낄 반지니까, 내가 골라야지.
일단 처음부터, 천천히 시작하기로 했다.
마치 초등학교 숙제하듯이 하루에 딱 5개씩만 결혼반지 사진을 보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에 #웨딩반지로 사진을 검색해 보았다.
처음에는 그냥 보면서 캡처만 해두었고, 그 다음에는 전반적인 느낌이 예뻐 보이는 사진에 따로 표시를 했다. 굳이 세세하게 분석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캡처한 사진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반지의 특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느낌, 색깔, 굵기, 두께, 질감, 다이아몬드 크기, 가드링 유무, 신랑 반지와 어떻게 어울리는지.
하나하나 점수를 매긴 것은 아니었지만, 반지를 볼 때 어떤 것을 봐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2주 정도 반지 공부를 한 뒤 투어를 시작했다. 캡처한 사진들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업체들을 몇 곳 추려보고, 그중 웨딩 커뮤니티에서 후기까지 괜찮은 샵으로 두 개를 골랐다.
나름대로 공부하고 갔는데도 첫 번째 샵에서는 어리둥절의 연속이었다. 인터넷에서 미리 보고 간 디자인을 보여주고 실제로 착용도 해보았는데, 어울리는 건지 안 어울리는 건지 잘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몇 개 반지를 껴본 뒤 제일 마음에 드는 두 가지를 골랐을 때 직원은 말했다.
"신부님은 되게 심플한 것만 고르시네요. 지금은 이래도 나중에 계속 보다 보면 화려한 스타일로 바뀌실 수도 있어요."
이 말이 마치, 신부님은 뭐가 예쁜 디자인인지 잘 모르신다는 것처럼, 아직은 보는 눈이 없어서 화려한 게 아니라 심플한 스타일만 찾으신다는 것처럼 들렸다.
결국 제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조금 풀이 죽은 채로 다음 샵으로 향했다.
두 번째 샵은 조금 다른 스타일이었다. 직원은 일단 신부님 마음에 드는 반지는 다 골라서 착용해 보자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무려 서른 개의 반지를 골라버렸고, 심지어 스타일의 일관성조차 없는 다채로운 반지들 앞에서 직원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많이 고르신 분은 신부님이 처음이신 것 같아요."
사실 내 눈에 예뻐 보이는 건 몇 개 없었지만, 그래도 남들이 흔히 예쁘다고 하는 인기 스타일도 한 번 껴보자는 마음으로 담다 보니 유난히 많이 골라 버렸다.
서른 개의 반지를 왼손 오른손에 하나하나 끼워보며, 더 예쁜 것은 남기고 덜 예쁜 것은 다음 것으로 바꿔 끼면서 토너먼트 식으로 반지를 골랐다.
직접 껴보니 사진으로만 봤을 때보다 나의 선호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다이아몬드가 작은 반지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흔히 인기가 많은 결혼반지들은 중간에 1부 또는 3부 다이아가 콕 박혀 있다. 딱 1개만 있기도 하고 반지를 빙 둘러서 5개나 7개까지 박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스타일은 뭔가 내 눈에는 부담스러워 보였고, 이것보다는 큐빅처럼 작은 다이아몬드가 더 예뻐 보였다.
왜 그동안 인기상품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지, 왜 나는 심플한 것만 고르는 사람이었는지 이유를 알게 되자, 남들이 예쁘다고 하는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소신껏 고를 수 있었다.
결혼 준비뿐만 아니라 삶의 많은 문제들 앞에서, 나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 쉽게 남들의 선택으로 눈을 돌리곤 했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면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잘 모르지만 잘 알고 선택한 누군가를 따라하면 중간은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꾸 선택하기 전에 주변을 살피기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선택 앞에서 천천히 스스로를 돌아보고자 한다. 나의 무지함 때문에 조급해하기보다는, 차근차근 선택할 수 있는 방안들을 살펴보고 나의 기준을 세워가고 싶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나의 선택에 어떤 의미와 목적이 있기를 바라는지 천천히 생각해보고, 그 기준을 남자친구와 공유하면서 함께 조율하고, 선택한 후에는 후회하지 않고 그 책임을 마땅히 감당하는 것까지 훈련하고 싶다.
결혼을 준비하며 주어지는 수많은 선택의 기회들, 그리고 앞으로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선택의 순간들 앞에서.
선택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당히 선택하고 기쁘게 누리기를 바란다.
[출처]
커버 사진 https://unsplash.com/photos/BJn4pHh_W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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