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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스타 Aug 02. 2021

결혼 후 첫 생일, 홀로 눈물 흘렸던 이유는

D+72, 열심히 하기는 싫은데 잘하고 싶을 때

결혼 후 첫 생일.

코로나 시국에 특별히 놀러갈 곳도 없고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가족들을 만나러 갈 수도 없어서, 그 전 주말 남편과 소소하지만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고 생일 당일에는 평소와 똑같이 출근을 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여전히 한결같이 따뜻한 친정 가족들의 축하에 더하여 시댁 가족들에게도 사랑과 축하를 받을 수 있어 감사했고,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는 신혼을 잘 보내고 있냐며 생일을 축하해주는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 덕분에 하루 종일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또 평소와는 다르게, 남편의 일과 관련하여 손님들과 만나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와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잘할 수 있을까. 몇 년의 직장생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자리가 어려운데 내가 이야기 흐름을 끊으면 어떡하지.

나의 걱정과 달리 대화를 잘 이끌어가는 남편의 능력과 손님들의 유쾌한 성격 덕분에, 하하호호 웃으며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나누고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 앞에서는 편하게 끄덕끄덕 듣기도 하면서 무사히 이야기를 잘 마쳤다.


그러나 방에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오늘 같이 식사를 한 손님들은 나랑 비슷한 나이인데,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갖고 실제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몇 번의 수상 경력과 여러 경험들이 쌓여 얻게 된 노하우들을 들으며,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자꾸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직장 5년차인데 아직도 나의 업무에 자신이 없고, 회사에서 그럴듯하게 일을 잘하고 있지도 않는 것 같고, 나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통찰력을 자랑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취미나 재테크나 다른 역량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진 나는 심지어 괜히 오늘 내가 입은 옷이 괜찮았었나, 내가 화장을 너무 대충했나, 결혼해서 너무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은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리고는 눈물이 쏟아졌다.

부끄러움인지, 속상함인지, 자책인지, 부러움인지, 후회인지, 혹은 자기연민인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전부 이유였을지 모르는 눈물이었다.




중학교 시절, '선배들과의 만남'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를 진학한 선배들이 후배들을 찾아와 어떻게 공부했는지, 열심히 공부해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가니 무엇이 좋은지, 앞으로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하며, 후배들에게 경험을 전해주고 동기부여를 해주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1시간 정도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지금까지 기억나는 내용은 하나도 없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만큼은 확실히 기억난다.


나도 꼭 저 자리에서 서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이 열망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여 1년 뒤, 고등학생이 된 나도 그때의 선배들처럼 선배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공부했는지,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했는지, 평소 어떻게 필기노트를 정리했고 시험 직전에는 그 노트를 어떻게 활용하며 공부했는지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나의 방법이 정답인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나의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했다. 

대학 입학 후, 그리고 취업 후에도 공부법과 취업준비에 대해 강의해달라는 제안이 종종 있어서, 나의 이야기를 전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곧 서른을 눈앞에 둔 요즘, 이제는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아 자신이 없어지고,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내 안에 내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텅 비어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왜일까.

그래도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29살의 나는 이렇게 한없이 부끄럽고 자신이 없는 모습이 되었을까.


사실 어쩌면 그 답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충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었는데, 그저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잘하기 위해, 잘하고 싶은 만큼, 그만큼 나는 열심히 하고 있었는가.


그동안 공부에 대한 나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기울여 주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그만큼 내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해야 하는 공부의 분량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매일 책상에 앉을 때 스탑워치를 켜고 책상에서 일어날 때 스탑워치를 끄며 공부시간을 체크했고,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공부 이외의 것을 하면 흐름이 끊길까봐 공부가 하기 싫을 때에는 그보다는 그나마 흥미로운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작은 일탈을 했고, 시험 최소 2주 전부터는 매일 시험 스케줄에 맞춰 일어나고 공부하고 쉬었고, 면접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오면 잘못 대답할까봐 미리 예상질문과 답변을 50페이지 넘게 작성하며 연습해보고.

노련하고 능숙하게 잘하는 편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만큼 우직하고 성실하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기에, 그 노력의 과정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 노력이 있었기에 그 결과 역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노력 없이, 그저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만 하고 있었다.

"회사가 너의 인생을 책임져주지는 않는다"라는 말을 마치 회사 업무를 적당히 해도 된다는 말로 이해하고, "칼퇴하고 저녁에는 너의 삶을 살아라"라는 말을 마치 저녁에는 내 마음대로 쉬고 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해석했다. 순환근무 때문에 전문성을 기르기가 어려운 회사의 환경을 노력을 게을리하기 위한 핑계로 삼았고,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승진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안 알아준다"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일을 잘하려는 마음과 의욕을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잘하는 것이 힙하고 쿨한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마치 타고나지 못한 자가 고통스럽게 애쓰는 불쌍하고 불행한 것처럼 느껴져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도 잘하고 싶은 말도 안되는 욕심만 있었다.




노력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에 대한 부끄러움.

노력하지 않은 만큼 뒤처져 버린 것 같은 속상함.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진짜 어리석은 나에 대한 책망.

자신만의 내공을 쌓아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과 영향력에 대한 부러움.

그들이 내공을 쌓는 동안 한 톨의 노력과 고통도 감당하고 싶지 않아 흐르는 대로 보내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

그럼에도 아무나 그들처럼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조금 편하게 살아도 괜찮다며, 그리고 나도 어느 정도는 노력하며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자기연민.

그 모든 마음을 눈물로 한참 쏟아냈다.


그리고 텅 빈 마음으로 지금까지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조금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와 비교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었던 아쉬웠던 모습을 그대로 인정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적당히"를 미덕으로 삼지 않고 결과보다는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 자체를 기쁨으로 여기겠다는 결심으로 나의 마음을 채웠다.


내 안에 지식과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노력을 통해

조급해하지 않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이루는 성장을 통해 

나중에 나의 이야기와 경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의 것을 아낌 없이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더 넉넉한 마음에, 더 가득찬 노력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결심했다.


그렇게 나의 29번째이자 결혼 후 첫번째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첫번째이기도 한 생일을 마무리한다.



[출처]

커버사진 https://unsplash.com/photos/nwWUBsW6u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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