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호스트의 니즈

요청 필수 의무 사항

by 홍선







이것과 저것은 별개의 책과 별개의 상황과 연결고리의 제 3의 4의 심상 또는 떠오는 상을 연결한다. a=b, 그러므로 c, 를. 쓰지 않는다. 때론 a=b가 허다하나,......



슬라이드가 롤 블라인드 위로 딸깍딸깍 넘어간다. 이제 순서에 일관성이 보인다. 거기 고지대 여행 장면이 있고 저기 셀리우스 거리의 집이 보인다. 필리퓌스 증조 할아버지가 전쟁 중 당신 할머니 가족이 아우르바이르 동네로 이사했을 때 지은 웅장한 흰색 주택이다. 그곳에 교외 단지가 형성되기 한참 전이었다. 이제 우리 할머니 형제자매 사진이 나온다. 37 하지만 요즘 할아버지는 달라졌다. 젊을 때는 하도 경쟁심이 강해서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될줄 알았는데, 정반대로 참솟깃오리 솜털처럼 부드러워져서 할머니를 칭찬하면서 고마워하고 감상에 젖기까지 한다. 36 슬라이드는 조금씩 바랬지만, 할아버지는 사진 속 장면을 전부 기억한다. 이름과 날짜까지 용케 떠올린다. 그러나 이제 단기 기억이 많이 쇠퇴했다.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됐어. 빙판이 갈라지는 것 같았지. 머리에 총을 맞은 것 같았어. 갑자기 자세한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거야."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세월이 지났어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할아버지다. 그 모습을 보면 뇌가 아무리 많은 트라우마를 겪어도 그 사람의 정체성은 달라지지 않는 것만 같다. 36 살 집은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열한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잔심부름꾼과 도축장 인부로 일하면서 가족을 먹여살려야 했다.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건강이 나빴으며 여동생은 갓난아기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초등학교 친구 중 몇몇은 공학자나 대학교수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반에서 일등이었어. 하지만 대학교까지 간 사람들이 반드시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알 도리가 없다. 나는 할아버지가 누구보다 훌륭하고 신중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교육 경험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슬픔과 후회가 엿보인다. 35 노동자 아파트에는 '노동자 도서관'도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고된 하루를 보내고 저녁마다 서가에 가득 꽂힌 책을 읽었다. 할아버지는 승부욕이 또 대단해서, 핸드볼이 아이슬란드에 갓 도입되었을 때 발뤼르 핸드볼팀 소속으로 아이슬란드 핸드볼 선수권을 획득했다. 1942년에는 1500미터와 5000미터 달리기 종목에서 아이슬란드 챔피언이었다. 부비동염 때문에 1943년 경주에서 패한 것을 2016년이 된 지금까지도 아쉬워한다. 35 할아버지는 돈을 모아 카메라를 샀으며 곧 열정적인 아마추어 사진가가 되었다. 지하실 벽장을 암실로 개조해서는 멜라뷔들뤼르 경기장에서 집까지 달려와 필름을 현상하여 누가 간발의 차로 승리했는지 판정하곤 했다. 요즘 말하는 '사진판정'이었다. 슬라이드가 웅웅 거리더니 딸깍 소리와 함께 색색의 밝은 빛을 화면에 비춘다. 할아버지가 초점을 맞추자 달리아가 끝없이 늘어선 풍경이 나타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키운 것들이다. 이따금 사진이 뒤집히거나 기계에 끼어 멈추거나 두 장이 한꺼번에 영사되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기계를 조정하자 분홍색, 노란색, 붉은색 달리아가 줄지어 한들거리다가 산, 자동차, 사막 모래, 바트나예퀴들 빙하의 끝없는 눈더미가 나타난다. 해마다 친구들과 오스트리아 레흐에 스키를 타러 가서 찍은 사진도 이어진다. 35


책, 시간과 물에 대하여


이 책은 시간과 물에 대한 것이다.

앞으로 100년에 걸쳐 지구상에 있는 물의 성질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빙하가 녹아 사라질 것이다. 해수면이 상승할 것이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가뭄과 홍수가 일어날 것이다. 해수가 5000만 년을 통틀어 한 번도 보지 못한 수준으로 산성화될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이, 오늘 태어난 아이가 우리 할머니 나이인 아흔다섯까지 살아가는 동안 일어날 것이다.

이 변화들은 우리의 모든 과거 경험을 뛰어넘고 우리가 현실의 나침반으로 삼는 대부분의 언어와 은유를 초과한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라는 단어는 백색잡음으로 흩어져버린다. 기후변화에 대해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은 이 주제 너머로, 옆으로, 아래로, 과거와 미래로 가는 것, 개인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태도로 신화적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쓰지 '않음'으로써 써야 한다. 뒤로 돌아감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 본문 중에서-


마그나손은 친밀한 역사, 집단 신화, 에세이, 지리 및 환경 탐사 보고를 결합하여,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기후위기의 현실을 우리 각자에게 가까이 다가와 전해준다. -파울로 조르다노, 이탈리아 작가, 소수의 고독 저자



집성촌에서 몇 대에 걸쳐 있을 모를 유교 제례와 전사를 보며 자랐으며, 전사를 다녀와서 에피소드를 아빠에게 듣고 자랐고, 족보에 있는 내 이름은 언니와 오빠의 이름을 담당자의 유추 아래 바로 전달한 이름은 두 글자로 바뀌어 있으며, 곰방대를 들고 있는 본 적 없는 할아버지와 언니 말에 의하면 오빠를 이뻐했다던 할머니는 이십대 초까지 'ㄱ'자 구조의 고향 동네의 우리집 내 방으로 지정된 옆방에 아빠의 보살핌을 받다가 돌아가셨다. 그때 돌아가시지 않았다. 나의 기억은 그랬으나, 얼마 몇 해 전인가, 오빠의 아내, 새언니가 기억이 안나나며 이야기해줬다. 그러고 할머니는 살아있는 첫딸급인 고모네 집에서 삶을 마감한 거라고, 거기서도 몇 년을 사셔서 이런 저런 상황이 있었다고. 아기적 피부가 발산되는 아빠의 빛바랜 근사한 군대 사진 뒤로는 소방도로로 개발하려다 발굴된 유물로 인해 유적 보호 단지로 지정되기 전 개발 전 고향 땅에 문중 땅에 직접 손으로 지은 집과 텃밭과 식물과 나무와 대문과 대문 풍경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아빠에게 주고 그 시절 싸이월드에 올려놓았다. 싸이월드는 무책임하게 사라졌다. 나의 그 시절의 사진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랬다는 걸 안다. 개인과 집단과 사회와 세계의 사이에 각자의 신화가 있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 그때도 좋았으며, 시멘트, 이른바 '공골'을 쳤을 땐, 우리집 앞마당이 삭막했다. 이렇게 관리가 편해진 순간 삭막한 풍경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비 올때 비가 슬레이트 끝에서 떨어져 패이는 흙 구멍을 좋아했다. 점점 더워진다는 지구에서, 어느 나라에서 어느 곳에서 어느 지붕 아래에서 그런 걸 볼 때가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