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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이 필요할 때

by 홍선


생각을 끝까지 하면 덜 어지럽다. 마치, 어떤 것을 떠오르려 하지 않을 때 회피하면 계속 떠오를 땐, 생각나는 대로 생각을 끝까지 나름 하다가, 다른 생각이 또 떠오면 그 생각을 하는 거다. 다만, 생각을 정말 하지 않아야 하는 한계선에 왔을 땐 베이킹이나 민화 바림 색칠하기나 오일 파스텔로 따라 하기가 개인적으로 무념무상이 되다.

생각 안에는 나와 너와 우리라 부르는 것에 시간과 감정과 서사가 있다. 그것만으로 생각을 굴리면 감정적일 수 있어, 그 수는 버리고 다른 책을 읽거나 음악, 영화를 틀어 다른 서사를 흘러들게 한다. 의도적으로 낭독하여 집중하여 책과, 나의, 그들의 서사를 비틀거나 심층적으로 본다.

책, 나무의 시간을 보다 보면, 마차의 정통성을 현대의 자동차에 포기하지 못하고 속력은 포기할지언정 차체 내의 마감으로 요리조리 쓰인다. 그것을 보면 어떤 건 문화나 취향과 방향에 따른 취사선택이다. 시대와 사람들의 정신, 취향, 방향을 모두 맞추다 보면 지향하는 부분의 디테일은 눈을 씻고 봐도 없게 되니.

미술관 일기를 읽다 보면, 소리 내 읽다가 마음속으로 읽다가 열다섯 살이던 때부터 열아홉 살 언저리 사이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의 나와 내 주변을 떠올리며 어떤 사람은 같은 시대가 아닌 데도 더 이른 나이에 태어났어도 다른 시대 다른 배경, 다른 문제 사안들을 보면서 이 시대에도 동경하는 부분을 일상으로 살았구나 하다. '한다'를 보통서술어로 쓰지 않고, 기본형을 쓰는 사람이 여기 있구나 하면서.

그러다가, 인스타그램 릴스를 세 개만 보고 핵심어를 기억하고선 자려다가 이걸 끝으로 의식해 자고 싶지 않아 핸드폰 조명을 켜고 머리카락이 그림자가 되어 삐죽한 명암이 있는 책을 펼쳐 누운 자세에 맞춰 삐뚤하게 읽는다. 계속 읽게 되는 건, 내 꿈에도 내 잠에도 벼린 무의식이 들어오게 하고 싶다는 의식이다. 다만, 일기지만 미술관 일기라는 제목하에 엮인 이야기는 핵심어가 들어있는 릴스보다 벼린 선택이라는.

보다가, 바닷가 가까이 살았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미술관일기만큼 쓸 거리는 없는 건가' 했다가, 쓰다가 생각난 것은 고등학교 때 걸으면 30분 안에 바다에 다다를 수 있어 친구와 아침 산책으로 걸어 걸어 가다가 똥 마려운 친구는 가다가 풀숲에 똥을 싸고는 다시 갈 수 있다고 해 목적한 바다에 다녀왔다. 똥을 싼 기억은 나는데, 그 바다가 어땠는지 참 기억이 안 난다. 미술관 일기에서는 바다를 앞마당 삼아 바닷물을 적시고 모래에서 잠도 자고, 바닷가 햇볕을 요긴하게 이용해 일조량을 맞춰가며 사는 대목들이 나온다. 미술관을 건립하는 사이사이 이야기, 고르바초프 이야기, 주위 친인척들의 방문, 그날의 컨디션, 해야 할 일이 있어 살아갈 에너지를 조절하는 팔순이 다 되어가는 몸의 이야기, 뉴욕 파리를 내 동네로 살아가는 사람의 수수한 문체가 드러난다.

핸드폰 조명으로 역할을 하던 핸드폰을 끌어당겨, 빌에반스의 재즈를 튼다. 유튜브 프리미엄을 끊어서 광고가 조금 나오지만 빌에반스 등 구독 중인 재즈 채널은 그래도 광고가 적은 편이다.


음악의 소리와, 책 읽는 내면으로 내 경계의 일련의 이야기들을 보기도 안 보기도 하다.


다른 경험, 무인구제 샵을 지난해 갔던 ㅇㅇ카페의 존위를 살피다 발견해 체험하기, 겨울이라 카펫 한 장 깔린 공간의 추위를 핸드폰으로 재즈로 녹이며 구석구석 구경하다가
다른 공간, 다른 영역 이야기
다른 시간, 같은 것도 곳도 시간이 엇바뀌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