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목욕을 하던 오리들
흙탕물이 본 지 꽤 됐는데 아직 흘러 저수지로 들어온다. 그 초입에서 흙탕물이 흩어지는 모습이 보이는 경계 지점에서 깃털목욕을 하던 오리들 중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도 자라는 한 마리가 일광욕 중이며 어중간한 점심이 돼가는 시간, 어딘가의 식당에 이미 앉을 시간 어느 공간에서 무언가를 할 시간인지 좀 더 한산한 걷기 길이 된다.
오리배는 한 척 뜨고 청둥오리들은 터를 잡고 사는 오리와는 다르게 많은 수로 무리를 지어 보인다.
날이 좋다가 점점 흐려지는 일요일 오후, 저수지 둘레길을 걷다 뛰다 잠시 앉아 아이스커피모카를 마시며 영롱보다 몽롱을 재독 해보며 29페이지 까지 읽고 내가 읽었단 말이지 이 책을 하며 역시 책 내용을 잊어버려도 아무렴 어때하고 다시 읽어보다가 내가 건넨 모비딕을 읽던 그는 여기 책 누구 인물을 이야기하길래, 읽으면서 얘기해줘야 해 안 읽은 사람에게 이야기해 주듯이. 읽어도 잊어버려. 그는 두 번 읽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이런 책은. 아니, 읽을 재밌는 책이 많은데 한 번 읽어줬음 됐지 요즘엔 별로 그렇게 안 해. 요 근래 방안에 한정원 책, 인센스 책, 목정원 책, 빌 에반스 이야기 등이 놓이긴 했지만, 그 외 요즘 작가 소설들도 교차해 읽어서 대체적으로 요사이에는 다시 읽기를 안 하는 편이니까.
3.6km, 40여분 저수지 둘레길 걷기 뛰기이다.
계절에 맞게 나무는 잎을 떨구고 색을 바꾸고 나무들의 시간을 나고 또 나고, 사람은 일상을 굴리고 굴리며 그 패턴을 못 견뎌 그 시간을 어쩌지 못하고 차마 어쩌지 못해 견디기도 못 견디기도 한다.
그 무수한 날 속에 나를 물들게 하는 걸 선택하는 항상성과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되는 루틴들은 운동이나 독서나 일이나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등이 아닐까.
목에 카메라를 걸고 나가는 순간마다에 일상에 눌려 빛바랜 그녀의 눈동자에 생기가 깃들었다는 그녀의 말대로.
같은 상자를 계속 접고 접는 것의 반복적인 동작에도 예술로 보이는 여유와 미소가 누군가에게는 보인다는 수려한 말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