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캘리포니아

출구 없는 욕망

by 서동욱

황량한 분위기의 리프 독주.

역사에 기록을 말해주는 벽체에는 오래된 사진들이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그 앞에서 다부진 체격의 중년 남자가 입을 꾹 다문 채, 틀어놓은 음악에 심취하듯 등받이 의자에 기대 신문을 펼친 그는 거울에 비친 나를 실근 주시하며, 호통치듯 말했다.

“정확하게 쳐야지, 정확하게! 1라운드에 300개씩 주먹을 뻗어야 해!”

숨이 막혀올 정도로 나는 무수히 많은 주먹을 내기 위해 애썼다.

온몸이 땀으로 덮였지만, 한여름의 습한 열기 속에서도 그 땀방울이 오히려 시원하게만 느껴졌다.

체육관 안으로 울려 퍼지는 기타의 운율은 내 의식을 호텔 캘리포니아로 데려가는 듯했다.

“웰컴 투 더 호텔 캘리포니아—”

20년도 넘은 컨트리 록의 울림 속에서 나는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다시 들려오는 노랫말.

“언제든지 체크인할 수 있지만, 절대 떠날 수 없어요.”

호텔 캘리포니아의 그 구절이 이상하게도 내 귓가에 맴돌았다.

복싱은 내게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욕망의 호텔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안식을 얻었지만,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에 갇힌 듯했다.

복싱이라는 이름의 방 안에 갇힌 채,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복싱을 위해 내 삶은 뒷전이 되어갔다.

복싱만이 우선이었고, 복싱이 나의 전부였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복싱에 전념하고 싶었다.

복싱은 중독처럼, 그 열기는 이성보다 강했다.

왜 이렇게까지 집착했을까.

복싱은 내게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 믿었기에, 놓칠 수 없었다.

아니, 놓지 못했다.


결국 나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동안 벌어둔 급여와 퇴직금까지 모두 복싱에 쏟아부었다.

인터넷을 뒤져 더 나은 트레이너를 찾아 수소문했고,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다시 서울로.

무려 네 번이나 체육관을 옮겼다.

복싱에 전념하기 위해 합숙소가 딸린 지방 체육관에 들어가기도 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링 위에서 보냈다.

복싱은 내 일상이 되었고, 현실은 점점 멀어져 갔다.


욕망에 눈이 멀어, 나는 현실을 보지 못했다.

삶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지만, 그 사실조차 인하지 못할 정도로 내 감각은 둔해져 갔다.

모든 걸 다 잃어가면서도 나는 복싱만을 쫓았다.

복싱을 위한 삶, 복싱만을 위한 삶.

내 삶은 돌보지 않았고, 내 자신도 잃어버렸다.

현재의 즐거움은 사라졌고, 남은 건 반복되는 훈련과 피로뿐이었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점점 복싱에, 아니 욕망에 미쳐가고 있었다.


이전 03화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