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무게

3전 2기

by 서동욱

한국 권투위원회 주관 ‘프로 테스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프로 테스트가 열리는 실내 체육관엔 묘한 긴장감이 퍼져 있었다. 체급마다 주어진 체중을 맞추기 위해 사람들은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대부분은 아침도 먹지 못한 얼굴이었다.
배고픔보다 더 무거운 건 긴장이었다.


“서동욱, 53.8kg. 밴텀급, 계체 통과.”
호명된 이름과 동시에 체중계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통과라는 말에 안심된 듯 미소를 지었다.
겨우 맞춘 체중이었다. 전날 찜질방 사우나에서 진땀을 빼며 몸무게를 맞췄고, 입술이 갈라질 정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몸은 가볍지만, 기운이 없었다.


계체가 끝나고 식사 시간과 휴식이 주어졌고, 오후가 돼서야 ‘스파링 테스트’가 시작됐다.
서로의 기량을 확인하는 자리, 하지만 사실상 통과냐 탈락이냐를 가르는 링이었다.
나는 21번째 순서를 기다렸다.

머리를 보호하는 헤드기어와 글러브 낭심보호대 그 위에는 나는 복싱 트렁크 입고 테스트를 기다렸다.


"21번째 경기! 준비하세요!"

나는 링 위로 올라갔고
가슴이 요동치듯 떨렸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아무리 많은 스파링을 해도, ‘프로 테스트’는 달랐다.
여기선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프로로서 설 자격이 있는가?’를 증명해야 했다.


상대는 나보다 한참 노련해 보였다.
눈빛부터 달랐다.


"땡! 1회전!"

시작하는 공 소리와 함께 프로 테스트는 시작됐다.
거리 싸움에서도, 타이밍에서도 그는 나보다 반 박자 빨랐다.
내 주먹은 허공을 갈랐고, 그의 주먹은 정확히 내 얼굴을 스쳤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리듬이 무너졌고, 나머지 라운드는 버티기에 가까웠다.
심장은 터질 듯 뛰었지만, 다리는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주먹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내 자세는 무너져 갔고 상대에게 공격의 기회를 허용했다.


“수고했어요.”
심사 위원의 짧은 한마디가 끝을 알렸다.
나는 링 아래로 내려오며 숨을 고르고 코치님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표정이 있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그리고 예상 밖으로, 함께 간 동료가 붙었다.
붙을 거로 생각한 나는 떨어지고, 기대도 안 하던 그가 붙었다.
그 순간 느껴진 감정은 패배보다도 ‘인정할 수 없다는 감정’이었다.
만약 그때 붙었더라면, 내 복싱 선수의 시작점을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유는 분명했다.
무리한 체중 감량 그리고 심리적 불안이었다.

프로 테스트가 있기 전 그날의 밤이 유독 생생하게 기억난다.
죽도를 휘두르며 소리치던 관장님의 모습.
사무실 문이 찌그러질 정도로 화를 내던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아끼던 제자가 이종격투기로 전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분노를 나에게 쏟아낸 것이다.
욕설을 퍼붓고 죽도를 휘두르며 사무실을, 난장판을 만들던 난 그의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체육관은 훈련장이 아니라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심리적으로 무너진 상태에서 링에 올랐으니,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버텼다.
매일 죽도록 스파링하고,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도,
언젠가는 이 무대 위에서 다시 설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나의 첫 번째 프로 데뷔는 그렇게 사라졌다.
관장의 분노, 체중 감량의 실패, 그리고 내 미숙함이 뒤엉켜
결국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링에서 느꼈던 상황들이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내가 진짜 복서를 꿈꿨던 순간, 패배의 순간.
그 시작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패배는 내 안에 다시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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