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라운드

3전 2기

by 서동욱

첫 번째 프로 테스트 실패 후, 나는 체육관을 떠났다.
어릴 적부터 나에게 복싱은 꿈이었고, 내가 동경하던 관장님은 그 꿈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가 파괴적으로 휘두른 죽도와 욕설은 그를 떠나야 한다는 분명한 위험 신호였다.
그는 더 이상 나의 스승이 아니었다.
어릴 적 존경했던 인물은 허상이었고,

나는 그에게 그저 밀린 체육관 월세를 충당하기 위한 관원 그 이하도 아니었다. 부려 먹기 좋은 얻어걸린 선수 지망생이었다.


체육관에는 월세 딸린 기숙사가 하나 있었는데,

유망주이던 형이 이종격투기로 이적하는 바람에 추가적이게, 지원되던 후원자가 끊긴,

공실 상태인 기숙사였다.

기숙사에는 침대 이불 냉장고 등. 비품조차 아무것도 없었다.

보일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한겨울, 찬물로 몸을 씻으며 입김을 불며 잠을 청하고
식사는 근처 반찬 가게에서 산 무말랭이와 흰쌀밥이 전부였고, 칼슘은 우유와 멸치로 단백질은 분말 셰이크로 대체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프로 복싱선수’라는 단어 하나가 내 전부였으니까.

새벽엔 경사가 높은 대학교 언덕길을 전력 질주하고,
낮엔 체육관 건너편 초등학교 트랙에서 근력과 인터벌 훈련을 했다.
밤엔 체육관 불이 꺼질 때까지 샌드백을 쳤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방까지 내려왔을 정도로 결의에 찬 마음으로 훈련은 멈출 수 없었다.
일요일엔 관장님이 다니던 교회에 가서 점심을 얻어먹었다.

나는 내 손으로 내 후원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일절 누군가의 도움은 바라지 않았다. 내 인생의 내가 트레이너였다.

기숙사 방엔 내가 산 침대 하나, 냉장고 하나, 전기장판 하나뿐이었지만

그 공간에서 나는 다시 복싱을 시작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전전긍긍 준비했던 첫 번째 프로 테스트는 실패로 돌아갔고 나는 원래 살던 곳으로 올라왔다.

내가 동경하던 어릴 적 관장님과의 인연도 거기까지였다.


좌절의 시간은 있었지만, 길지 않았다.

건설 현장에서 땀을 흘려 훈련비를 모으고,

그렇게 1년 넘는 시간을 버텼다.

다시 한번 프로 테스트를 준비했다.


2번째 테스트 날,
이번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차분했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이번엔 다를 거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링 위에 섰다.

상대는 나보다 한층 강했고,
타격은 묵직했다.
하지만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한방 한방 주고받을 때마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라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심사 위원이 공 울렸고,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다.
“서동욱 합격. 통과.”

그 순간,
내 귀에선 모든 잡음은 들리지 않았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감격의 순간, 그동안의 고생이 녹아내리듯 기뻤다.
18살이라는 나이에 복싱을 시작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27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합격한 프로 테스트.
'드디어 프로의 무대에 설 수 있겠구나.'


감격도 잠시

내게 찾아올 ‘검은 그림자’가 뻗쳐있음을 알지 못했다.

내 두 번째 체육관은 서울에, 법원가에 사무실 밀집 지역에 위치한 곳이었다.

새로운 체육관으로 옮긴 뒤,

나는 또 다른 동생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그는 나보다 재능이 있었고, 이미 미국에서 국제전을 치른 적도 있었다.

내 지인과 복싱 시합을 치룬 적이 있는 유망주 복서였다.

동생과 나는 훈련 시간을 맞춰서 함께 훈련했다.


평일 하루 반나절은 건설업을 하며 운동을 병행했고,
주말은 카페 아르바이트로 식비를 충당했다.

그렇게 훈련에 강행하며 프로 테스트 날짜가 잡혔다.

기다려왔던 프로 테스트 날, 갑자기 프로 테스트 일정이 다음 달로 밀린 것이다.

복싱 시장의 경기침체로 프로 테스트를 자주 여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다음 일정을 기다려야 했지만, 다음 달이 돼서도 협회 측에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어느 날처럼 주말에 커피 컵을 씻고 있었는데,
'프로 테스트 일정 잡혔다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체육관으로 향했고, 프로 테스트를 준비해서
합격한 것이다.

그때의 기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과정’일 수 있었겠지만,
나에겐 절박하게 얻어낸 프로 라이선스다.
그날 밤, 나는 방에 홀로 누워
허공에 주먹을 뻗었다.
눈물이 났다.

그건 슬픔도, 기쁨도 눈물도 아닌 그동안 힘들게 견뎌내며 참아왔던 설움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한 번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복싱은 인생과 닮았다.

링 안에서 싸움도 중요하지만 링 밖에서의 준비가 더 큰 싸움일 때가 있다.

복싱은 반복된 훈련의 연속이고, 인생의 작은 링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단지 인생 일부분을 알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프로 테스트는 단지 프로 복서로 가는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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