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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 May 04. 2020

치료하기-시작

우울증과 불안장애

브런치 계정을 만들어두고선 좀처럼 글을 쓰지 못했다. 족히 일년은 넘었을거다.

뭔가 읽고 쓰고 남기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작년 나를 찾아온 우울증은 날 계획한 일들에 다가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진도 찍지 않게 되었고, 책도 읽지 않았다.


매일같이 몸을 겨우 누일 내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울다가 엎드리길 반복했다.

겨우 집에서 나오면 횡단보도를 건널 수가 없었다.

처음엔 그냥 빠르게 달리는 차에 치이면 어떨까 하는 궁금함이 들고

그 다음엔 어느 정도로 달리는 차에 치일지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엔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대로변에 서 있는게 고문이었다.

사실 죽어도 별로 상관없었던 거 같다. 나 하나쯤 죽는다해도 세상은 언제나처럼 잘 돌아갈 것이고

그다지 슬퍼할 사람도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내가 사라지는게 다양한 갈등을 종결하는 식이라는 정신승리같은 엉터리 논리도 세우기도 했다.

동네친구들이 불러 나간 술자리에서 점점 말라가는 나를 보며 한 친구가 제발 죽지 말아달라고 울었다.

그때 느낀 감정은 분명 생경함이었다. 처음 느끼는 그런 기분, 누군가 살아달라고 말하는 그런 기분은 오묘했다.

넉넉치 못한 집에 홀어머니 밑에서 삼남매 중 막내였던 나는 스스로를 어머니의 짐이자, 가족들의 부담으로 느끼며 자라왔다. 그래서 늘 나의 값어치를 증명하기 바빴고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내가 뭘 원하는 지 알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그저 살아만 달라는 말이 얼마나 낯설고 생경했는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다음날에 바로 정신병원을 찾아갔다. 번화가에 있는 큰 건물 13층에 있는 개인병원

3월달이지만 사람들과 같이 붐비는 엘레베이터를 타면 온 몸에 땀이 흐른다. 13층에 도착해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조심스레 문을 열어본다. 차마 예약을 하지 못한 탓에 한껏 움츠린다.

조용한 클래식이 흐르는 작은 대기실, 조용한 간호사가 설문지 몇 장을 내게 건넨다.

문항은 대체로 삶에 대한 의지나 죽음에 관한 것들이었다. 살면서 해봤던 설문지 중에 가장 섬뜩한 내용이지만 크게 고민할 만한 상태가 아니다. 생각보다 멀쩡해보이는 번듯한 외모의 사람들이 대기실에 즐비하다. 다들 직장도 다니고 멀끔해보이는데 속은 그게 아니구나 싶다.

의사선생님을 마주했다. 무슨 일로 왔다는 말에 잠을 자고 싶다고했다. 설문을 얼추 보고는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있을거 같다고 하신다. 그래서 못자는 거라고도 사족을 다신다. 약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는데 차마 알아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저 주는 약을 받아들고 다시 숨을 참아 엘레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치료의 시작이다. 사람은 참 무기력하게도 가벼운 두 알의 위력앞에 그동안 못잤던 잠을 몰아잔다.

자니까 조금 더 낫다.

우울이 뭔지 모르겠지만 잘 자고, 잘 먹는 일에는 모두가 다 평등한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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