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입니다.
한일 월드컵의 열기로 가득하던 2002년의 일입니다. 시기도 6월의 어느 날이기에 더 기억에 남는 일을 회상해 보려 합니다. 당시 저는 인천의 한 병원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8시경, 병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금요일에 수술하신 환자가 통증 조절 장치를 한 번 더 연장해 달라고 한답니다. 당연히 된다고 얘기하고 바로 병원 앞에 기거하던 제가 약을 만들어 병실에 인계하고 나왔습니다. 나온 김에 9시 예배를 다녀와야겠다 싶어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20대 중반의 청년이 제게로 뚜벅뚜벅 다가왔습니다. “배고파~~”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반문하니 “배고파”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내 상황이 판단되었습니다. 약간의 장애가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말투는 어눌하고 모든 언어가 짧은 단답형이며 존댓말이라고는 아예 없었습니다. 저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5.000원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자! 어서 밥 사 먹어요.” 그 순간 거짓말같이 택시가 왔고 제 시간 안에, 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어떤 문제도 없어 보였고 예배도 순조롭게 참여했지만, 문제는 설교 시간 시작부터입니다. 아까 내가 한 행동 때문에, 물 스미듯 후회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아휴! 미련한 녀석 같으니라고!’ 저는 나에게 그런 표현까지 사용하면서까지 저를 자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과연 그 친구가 스스로 밥을 사 먹을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5.000원이면 밥 한 그릇 정도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요, 주문하고 먹고 계산하는 일련의 과정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내내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냥 근처 식당으로 데리고 들어가 밥을 먹이고 계산까지 마쳐주었으면 더 좋을 뻔했습니다. 진짜로 배가 고팠기에 그 방법이 훨씬 현실적인 도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날 예배는 그렇게 후회와 자책으로 어떻게 드렸는지 모른 채 지나갔습니다. 다시 온 병원 앞에는 그렇게 후회 가득한 썰렁함만 남아있었습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그와 비슷한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어떤 방법으로 그 상황을 헤쳐 나갈 것인가? 늘 궁금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가정(假定)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러한 가정(假定)에서 저는 배려를 상상하고 베풂을 연습합니다.
내 편의가 우선이 아니라 상대의 형편이 되어 보기! 이는 세상을 살며 터득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제는 아내가 제게 그런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남편으로서 아내의 마음이나 형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뜨끔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확한 지적입니다. 가까운 가족의 마음도 제대로 모르면서 생면부지의 타인을 헤아리고 배려한다? 그래서 사는 게 어렵고 배워가는 과정인 모양입니다. 내 나이 70이 되고 80이 되어도 나는 늘 배워야 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