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저는 글은 물론 대화도 그렇고 일단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는 되도록 피하는 게 습관처럼 굳어진 사람입니다. 모인 사람들이 서로 비슷한 관점이나 가치관을 지니고 있으면 모를까! 논쟁의 빌미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쉽게 포기하는 편입니다. 생각의 저편에 얼굴을 붉히는 그 가능성마저도 두려운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나 어릴 적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학습 여건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지닌 성격이나 성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의 아이들은 그나마 한결 나은 형편이어서 상대방의 의견도 존중하고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겠구나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양쪽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는 순간에서 반드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고 하면 이는 어려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그 어려움을 피하고 숨겨버리는 일이 나에게는 더 익숙합니다. 그래서 공적(公的) 모임에서 政治나 宗敎, 理念이라는 주제는 정말 민감한 사안임이 분명합니다. 그냥 상대방의 선택을 인정해 주는 것이 더 속이 편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소위 ‘우리의 소원은 통일’ 세대이기에 막연하나마 ‘통일을 이루자,라는 관념이 강합니다. 아니 그렇게 주입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내 나이가 들고 그만큼 분단의 기간이 늘어날수록 통일 이후 벌어진 이념의 간격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 되긴 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굳이 체제를 하나로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는 주장까지 나오는 모양입니다. 통일이라는 문제를 다양한 각도로 계산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봅니다.
어떤 문제를 어느 정도의 선에서 수용하며 어느 정도의 선에서 내 의견을 피력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일은 짐짓 어려운 일입니다. 토론이 결론 도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의 과정이요 토론자의 태도가 주목적이라 한다면 굳이 무서워하고 피할 사안은 아닐 것입니다. 유럽과 미국의 교육 환경이 부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 다양한 관점을 서로 맞추어 나가고 통합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분명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벌써 그렇게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우리 젊은이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논조는 절대 아닙니다. 또한 토론의 습관이 절대 선(善)이라는 주장도 아닙니다. 단지 좋은 게 하나의 습관이 되고 이 사회의 관습이 되며 더 나아가 집단의 문화가 되는 과정은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닙니다. 연습하는 도중에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그를 다스리고 조절하는 방법까지 일련의 과정에 포함된다면 조금 늦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미래! 분명 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