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해 보기
애당초 저는 어릴 적부터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자랐습니다. 많고 많은 직업 중에 굳이 왜 의사냐고 물으시면 대답할만한 이유는 많은데 그 이유는 나중에 서서히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 결심은 시간이 흘러도 바뀐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고2 때 짝꿍이 너는 한의사를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 말하기에 며칠 흔들리기는 했지만 이쯤 되면 초심(初心)을 잘 지킨 편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중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세워놓은 제 결심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공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선을 계속 유지해야 함에도 제 성적은 마치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처럼 불안정하기만 했습니다. 마음에 조바심이 나셨던 부모님, 특히 아버지와의 갈등은 점점 심각해졌고 심하게 혼나는 일이 잦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의사가 되었고 전문의도 되었지만, 그 당시 아버지의 조바심과 아쉬움을 다음과 같은 말로 대변하시곤 합니다. ‘네가 꾸준히 정진했으면 하버드 의대도 갔을 거야! “. 제 아버지도 어쩔 수 없이 보통의 부모님과 크게 다르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내 아들 이야기를 하기 위함입니다. 아들 소개를 먼저 할까요? 아들은 과학고 출신입니다. 2년 조기졸업 후에 KAIST(카이스트)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고 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요. 그런데 졸업 전에 엄마 아빠에게 오더니 ’ 의학전문대학원(醫學專門大學院)을 가겠다 ‘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이야기했고 그 후 아들은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대학의 병원에서 지금 전공의로 수련 중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부자의사(父子醫師)입니다.
저는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공부 좀 해라. 그렇게 놀기만 해서 어떡하느냐. 는 투의 잔소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니 우리 부부가 참 복이 많구나! 싶습니다. 거의 모든 공부를 스스로 알아서 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하는 공부에는 적수가 없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아이의 공부 습관 뒤에는 잊지 말아야 할 존재가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제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입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모자(母子) 간의 팀워크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아이를 통해 배웠습니다. 아이를 격려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성향이나 성격을 잘 파악해야 하며 그것에 맞게 해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제 아내가 엄마로서 그 과정을 잘 파악하고 도와준 결과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뒤돌아보면 아빠가 걸어간 길을 아들도 걷는 게 참 뿌듯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내가 그만큼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명과 같아서 나 스스로 대견하기까지 한 요즘입니다.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강단 있게 잘 견뎌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빠가 아닌 선배 의사로서 많은 도움과 조언도 주고 싶지만, 다행히 지금껏 제 길을 잘 가고 있음을 보면서 믿는 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중입니다.
부디 실력이 있고 좋은 의사로 커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나라에 귀한 재목(材木)으로 남아 주기를 조용히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