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디 지겨웠던 (방과후) 고전읽기

by 김욱곤

(이미지출처:리키의 와인브레이크 RICKY's Wine Break)


초등학교, 중학교 때 고전(古典) 읽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학교 교과과정에 정식으로 등록된 커리큘럼은 아니고 일종의 방과 후 과정인데 당시 유행하던 범국민적 고전 읽기 운동이라는 열풍에 편승한 각 학교의 부응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과정입니다. 동, 서양의 고전을 거의 망라한 문고판이 급속도로 유행했고 더 나아가 모 출판사에서는 연작으로 출간하다 보니 몇백 번까지 나왔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청에서는 일정 시기가 되면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연대회라는 이름으로 관내 학교끼리 일종의 시합을 했습니다. 학교 대표 몇 명이 선발되어 그들이 선정된 책을 읽은 후 그 책의 내용으로 시험을 쳐 등수를 내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예상하시는 대로 절대 자발적인 경연이 아니다 보니 각 학교에서는 담당 선생님께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뽑아 참가시키는 게 보편적인 일이었습니다.



저도 몇 번 선발된 경험이 있습니다. 모든 수업이 끝나면 특정 장소에 모여 책을 읽고 중간중간 모의고사로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받습니다. 학교 성적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요, 요즘 말하는 내신에 반영되는 사안도 아니다 보니 사실 친구들의 반응이나 열정은 거의 바닥을 긁는 정도입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가 고전 읽기 경연에서 좋은 성적을 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상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는 걸 보면 말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께서 우수 반이었던 우리 반에 들어오셔서 고전 읽기에 참가할 아이들을 선발했습니다. 그래 봐야 게 중에서 일정 등수 안에 드는 아이들이 선발됐고 저를 포함하여 몇 명의 아이들이 지목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전교 1등을 하던 친구가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저는 안 하겠습니다. 빼 주세요.” 지금이야 그 의견이 존중받고 한두 번의 설득이 순서이겠지만 당시에는 소위 “어디서 감히!”라는 인식이 더 높던 시절이었기에 그날 친구는 선생님께 엄청나게 맞고 나서야 선발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 당시 무슨 책을 읽었는지 어떤 내용인지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읽었다면 모를까! 제목만 들어도 다 알만한 내용이었음에도 더 나아가 내 영혼에 귀한 자양분이 되었을 귀한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했다는 그 이유로 내게 남겨진 건 허무하게도 거의 제로입니다.


살면서 내게 양식이 된 건 무엇이었을까? 얼마나 자발적이어야 하는가? 한 번은 되씹어 볼 일입니다. 나의 이런 기억이 어른이 된 지금에 귀한 촉발제가 되어 독서광 정도는 되어야 할 테지만 지금도 독서에 그다지 열정적이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언어 구사의 풍부함도, 생각의 풍성함도 갖추지 못한 그저 평범한 범부(凡夫)로 남았을 뿐입니다. 마음이 여유롭고 푸근한 사람이 되기에는 아직도 먼 길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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