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에게는 미안하지만

한때 멀리했었지요

by 김욱곤
다운로드.jpg (이미지 출처:네이버) 책의 표지입니다.


글쎄요? 시(詩)와 거리감이 생기고 멀리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말이 좋아 시간이지, 그냥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몇십 년은 족히 지났을 터입니다. 아이를 낳고 이미 장성하여 30 중반을 넘겼으니 이는 시간으로 표현하기도 부끄러운 날입니다. 그냥 내 생각에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 표현했지만 어색하기 그지없는 단어임을 익히 알고도 남습니다. 그냥 애초부터 세월이라고 표현할 걸 그랬습니다.


사실 70~80년대의 경제 논리로 따지자면 시(詩)는 그 길이 때문에, 소위 가성비가 떨어지는 장르쯤으로 여겼던 모양입니다. 이쯤 해서 모든 시인께서는 모두 분기탱천하여 봉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얼마든지 그러셔도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압니다. 시 하나가 탄생하기까지의 열정, 남은 여백에 그려질 수많은 생각의 그림들, 단어 하나에 쏟아 넣을 농축된 생각들이 모르긴 몰라도 가치를 달 수 없을 정도의 무게라는 걸 말입니다.



제가 몸담은 교회의 남선교회에서 단톡방이 하나 개설돼 있습니다. 공지 사항도 있지만 매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성경 말씀이 일정 분량 게시되고 주석과 느낀 점이 주욱 달리는 방식입니다. 도중에 참가하여 어느 시점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창세기부터 시작했을 법하고 지금은 레위기를 묵상 중입니다. 아시다시피 토라에 해당하는 모세 오경은 자칫 지루하기 십상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묵상 거리가 달리곤 합니다.


그런데 30명이 조금 넘는 회원 중에 연세가 지긋한 큰 형님 정도의 장로님께서는 어디에서 불러오는지 모르겠으나 참 다양한 주제의 시(詩) 한 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칫 내 취향이나 숨결과 문체가 있으면 그냥 넘겨버릴 텐데 이 장로님 같은 경우는 선별 능력이 참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그 영향이 있어서일까요? 다른 분들이 올리는 시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편하고, 미려하고 때론 구수하여 내 감성의 깊은 곳을 툭툭 건드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자연스레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가끔은 성경 말씀보다 시를 기다리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내가 시를 기다리고 좋아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 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김사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06>



오늘 실린 시입니다. 시구처럼 그냥 조용히 쳐다보는 중입니다. 살랑살랑 무언가가 내 마음 한구석으로 들어오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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