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놀러 간다는

내 조그마한 생각들

by 김욱곤
KakaoTalk_20251105_090010092.jpg (이미지: 바로 이 노트랍니다.)

몇 년에 한 번꼴로 제주를 놀러 가는 일이 하나의 의식처럼 되다 보니 이제는 대략 풍경도 눈에 익고 몸으로 맞는 바람결도 내내 맞던 것처럼 익숙해지곤 합니다. 되도록 휴가의 성수기를 피해서 가자는 원칙에 충실하다 보니 주로 가을이 가기 전이나 한가운데, 유채꽃이 피기 시작하는 즈음이나 한겨울, 그리고 여름이 가려고 하는 즈음에 대개 제주를 찾았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1월 중순에 들어설 무렵에 제주를 찾았습니다. 아침 일찍 도착하여 다음 날 오후 늦게 귀가할 요량으로 입도한 순간, 역대 거의 온 적 없다던 대설경보와 폭풍주의보를 만나 꼼짝없이 갇혔다가 임시 증편된 비행기로 사흘 만에 나온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동(東)으로 서(西)로 나누어 다니고 남북(南北)으로 가로지르다 보니 이제 처음 느낀 신비로움은 거의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풍경도 거의 비슷하고 날로 늘어가는 카페나 음식점들로 채워져 가는 도로변 풍경,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베이커리의 행렬은 뭍의 어느 곳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주 특유의 식사 거리라야 이미 노출될 대로 되어버렸고 그것은 이미 육지에서 맛보고 평가를 마친 것들로 가득합니다. 게다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물가 때문에, 이제 관광객의 상당수는 차라리 동남아로 가는 게 낫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은 책상을 정리하다가 조그마한 A6 정도의 노트 한 권을 찾았습니다. 책꽂이에 들어가 있던 것인데 전혀 관심을 두지 못하다가 우연찮게 제 눈에 띈 것입니다. 연한 주황색 바탕에 귤과 귤꽃으로 멋을 낸 하드커버의 노트인데 거슬러 생각해 보니 2023년인가? 제주의 조그마한 해변가 소품집에서 구매한 노트가 분명했습니다. 분명 눈에 확 들어온 색깔과 귀여움에 눈길이 가서 구매했을 텐데 오늘로 2년 정도 지난 그 노트는 이제 막 어설프게 중년에 들어가 초라하기 그지없는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의 초안을 담당하는 이 노트가 수명을 다하면 분명 다음 타자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내 손끝의 감각과 펜 끝의 사각거림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버려질 수도 있음을 직감하는 중입니다. 지금 예상하기로는 그러기 딱 좋은 몰골을 지녔습니다.



제주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노트 이야기로 넘어간 이유는, 이렇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소품조차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나 품질을 포기했다면 다른 기념품들은 오죽하겠냐? 싶어서입니다. 이는 차라리 노트 때문에 생긴 선입견이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이 외국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순간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념품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거래되는 모든 범주의 물품이 다 그러하다면 결국 제 무덤 제가 파는 꼴이 되겠지요.




제주도가 관광지로써 특별한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는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만약 다음에 다시 제주를 찾게 된다면 정말이지 꼭 필요한 것만 유지하고 올 것입니다. 혹시 모르지요. 직장이나 일터가 제주로 결정되면 어쩔 수 없겠지만 억지로 낙원을 찾아가듯 그곳을 찾을 일은 이제 별로 없을 거 같습니다. 제주가 변하고 풍경이 자연답게 원상 복구되는 그날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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