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꾸준히

준비하는 삶

by 김욱곤
다운로드.jpg (이미지출처:Flying log) 이 마크를 달 수 있을까요?

2025년 10월의 마지막 주에 직장인 병원에서 조금은 어수선하게 보내는 중입니다. 병원의 인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평가하는 주(週)이기 때문입니다. 전임병원에서도 경험했던 이 인증 평가를 이곳에 와서 다시 경험하기에 이 정도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으리라고 짐작하시겠지만, 매번 접할 때마다 부담이 되고 떨리기도 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멀찍이서 보면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일인 듯 보여도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병원도 준비하는 과정만 잘 갈무리해도 어느 정도의 체계를 보장하기에 그냥 허울 좋은 과정은 아닌 거 같습니다.


인증 평가 이틀째에 드디어 제가 일하는 수술실에 위원들이 입장했습니다. 마취 준비 및 수술 확인 과정을 제대로 하는지 검증하려 오전 첫 수술을 참관하는 것입니다.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게, 누구에게 점검받고 보여주는 과정의 마음 한편에는 준비를 잘했으니 괜찮겠지!라는 마음과 뭐라도 지적받으면 어쩌나?라는 마음이 공존하여 괜히 노심초사의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 과정 하나하나를 잘 마쳤고 직원들도 잘했다는 칭찬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인증 평가라는 과정이 제법 조직적이고 탄탄해서 적당히 준비해서는 십중팔구 통과하지 못한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전임병원에서도 준비하는 과정이 제법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이 정도야, 뭐!’라는 마음이 무색하게 닥치니 쉽지 않았습니다.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적당히 넘기려는 마음도 버려야겠다는 마음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찌 보면 같은 맥락이긴 하지만 사람이 타성에 젖어 사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집니다. 이 일에 몸담은 지 어언 30여 년을 넘기고 세월로 치면 이제 달인(達人)이 되었을 법도 하지만, 매번 만나는 환자분의 상태가 늘 똑같은 것이 아니요, 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의료 기술에 적응하고 스며들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기에 정신 차려야 할 위치인 제게 감히 달인의 경지는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증 평가는 나를 각성시키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이제 통과가 될지 안 될지? 여부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만 희비가 엇갈리는 시간은 분명히 올 터이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모든 사람이 통과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겁니다. 인증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동안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라는 단어를 생각합니다. 이는 좋은 일에는 더없이 의미 있는 말이겠지만, 악하고 나쁜 일에는 이 이상 무섭고 두려운 말은 없을 것입니다. 발전하고 성취하는 일에는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반면 악하고 게으름에는 빠르게 그리고 과감하게 포기하고 버리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서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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