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찌, 노포, 그리고

대(代)를 잇는다는 것.

by 김욱곤
다운로드.jpg (이미지출처:These things happen.) 맛있어 보이는 모찌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생각지도 않은 주제의 다큐를 보게 되었습니다. 특별하다고 할 거는 없고 경상도의 한 지역에서 조그마한 빵집을 운영하는 노인네의 이야기입니다. 옛날 표현으로 모찌라고 하는 찹쌀떡을 주로 만들지만, 사실 출발은 여느 제과점처럼 여러 가지 빵을 만들다가 찹쌀떡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줄 서서 먹는 집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빵을 만들고 거기에 아내는 물론 아드님까지 달라붙어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국 어디든 방방곡곡에 이런 가게가 하나쯤은 있을 법도 한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제가 태어나 청년이 될 때까지 자란 고향에도 그런 집은 이제 없습니다. 혹시 다른 업종에서는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 빵집이라는 곳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가게를 볼 때마다 맛이 궁금하기에 앞서 ‘과연 수익은 날까?’ 궁금하기도 하고, 몰려오는 손님에 비례해 수익이 난다면 ‘이미 부자가 되어 있겠지?’라는 생각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오늘 전개의 focus는 수익에 맞춰지지 않았고 가업을 잇는 부자(父子) 간의 사소한 일상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다큐를 보다 보니 중요한 순간에 부자간의 갈등이 제법 컸습니다. 그동안 해 오던 방식을 고수하려는 아버지와, 개선해 보려는 아들과의 갈등 말입니다. 이렇게 하자는 제안에, 안된다는 거절이 반복되었고 결국은 대부분 아버지의 주장대로 마무리가 됩니다. 서로의 마음을 각각 들어보면 모두 가게를 위한 생각이었기에 누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전통을 지키는 게 좋은 점이 있다면 맛이 한결같다, 단골손님들을 놓치지 않는다, 추억을 찾는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아들이 선뜻 자기의 입장을 강경하게 관철하지 못하는 포인트가 될 테지요.



지방의 한 도시에서 살던 때의 일입니다. 외곽의 한적한 면(面) 단위 마을에 생선찜을 잘하는 집이 있었습니다. 과거 대통령도 잘 오시던 곳이라 해서 더 유명해진 집인데 가게라고 이름하던 그곳의 모양은 최소 몇십 년은 되었을 법한 초라한 한옥에, 밀려오는 손님을 감당할 수 없어서 뒤채까지 터서 개조한 상황이었습니다. 상상하신 대로 쾌적함은 꿈도 꿀 수 없고 좁기는 말할 수가 없지만 수용할 수 없는 손님들을 반기는 주변 상점도 호황을 누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했고 몇 년 후 궁금해 다시 들른 그곳에는 식당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다시 돌아오려는 순간, 약 100미터 전방에 같은 간판을 발견했습니다. 3층 정도의 건물을 올렸더라고요. 제법 번듯했습니다. 식당으로 2층까지 사용하는 거 같았지만 우리는 그 건물을 그냥 지나쳐서 아예 다른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옛 정서를 잃어버린 느낌 때문입니다.


제가 굳이 이 추억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큐의 주인공인 아버지와 아들이, 그 갈등의 이면에 고객들의 이런 감성을 간파한 게 아니겠는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집안의 가업을 잇는다는 것! 과연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까요? 외국처럼 100년이고 200년이고 가업을 이으려고 결심할 때는 같은 품질로 이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먼저일까요, 아니면 아들처럼 개선하고 바꾸고 싶은 욕심이 먼저일까요? 다큐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의사이지만 제 아들도 의사입니다. 처음에 카이스트(KAIST)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그대로 정진하여 평생 연구하는 삶을 살 거라고 기대했지만, 막상 의사가 되겠다는 의견을 냈을 때 내심 좋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 만족하면 될 일인데 아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모양입니다. 기왕이면 인기 있는 과를 택하면 좋겠다, 수입도 좋은 과를 택하면 좋겠다, 이 단계까지 오더란 말입니다. 참 속물이죠? 다행히 아이에게 강요하지는 않았고 잘했다는 격려와 선택한 곳에 최선을 다하라는 부탁 정도로 마무리했습니다.


내 상황에 빗대어 보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묘한 역학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배운 셈입니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바탕이 모두에게 있겠지만 그게 자식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때로는 갈등을 유발하는 기폭제가 된다면 과감히 버릴 줄 아는 과단성도 필요합니다. 다 너를 위한 일이야! 이 말도 다 네가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이런, 말도 안 되는 포장 아래 우리 아이들에게 상처를 내는 부모이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고 돌이켜보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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