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른 봄날의 여유

이런 호사를 즐기기

by 김욱곤
다운로드.jpg (이미지출처:아담원의메아리) 이런 햇살 좋은 날



학교에 다닐 때는 물론이요, 직장 생활, 개업하고 있는 동안 가끔가끔 드는 생각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평일 오후의 일상은 어떤 느낌일까?’입니다. 이는 당연히 수업이 끝나고 하교하는 길,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그런 일상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남들은 수업하고 근무하고 영업하며 배달하느라 바쁜 그런 시간에 나만이 누리는 한적함이나 여유는 어떤 느낌일까? 그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호화를 누리는 사람은 부유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일 거야, 그런 가정하에 내가 누린다면 과연 그런 사치는 어떤 기분이고 느낌일까?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입니다만 그런 여유로움도 나이에 따라 미세하게 다를 수 있겠다고 여기는 중입니다. 젊을 때만 해도 그랬습니다. 커피숍이나 가볼까? 영화는 요즘 무얼 하나? 혼자 밥 먹을 만한 데는 없을까? 같이 놀자고 불러낼 사람은 없을까? 결국 친구들은 열심히 일할 시간이요, 친구의 수가 두텁지 못한 나는 그렇게 우왕좌왕하다가 집에 오는 그런 시절을 보냈습니다. 결혼하고는 그저 집에 오기 바빴습니다.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는 가정이 최고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아내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꼬박꼬박 일찍 귀가하는 것도 그다지 반가움의 일상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나이 60이 넘은 요즘에는 그냥 유유자적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 도상(途上)에는 주로 서점이나 문구점, 그리고 번잡하지 않은 카페에 가는 일입니다. 이런 일상에도 단점이 없을 수는 없는 일! 읽어야 할 책이 쌓여가는 일, 필기구나 노트가 많아지는 일, 오후 늦게 마신 커피 때문에 야간에 화장실 들르는 일이 잦아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 글도 지금 카페에서 방금 구매한 펜과 메모 패드 위에 적어나가는 호사를 누리는 중입니다. 굳이 경중(輕重)을 따지라 한다면 그다지 밑지거나 하찮은 일은 아닙니다. 이 일이 지겨워지는 날까지는 그리할 듯합니다.

이제 내 나이도 생리학적으로, 법적으로 노년에 접어들기 시작하고 지하철도 무료로 탈 수 있는 나이에 접어들다 보니 슬슬 직업의 영역에서 멀어지는 날을 상상하곤 합니다. 월급날이 없는 생활은 어떤 느낌일까? 그저 연금으로 지내야 할 텐데 줄어든 수입으로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런 상황이 된다고 해도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은 아닐 것이요, 지출되는 영역이 조정될 테니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때그때 형편에 맞게 조정되고 적응하는 삶을 살 테니 말입니다.


글을 쓰다가 눈이 피곤해 잠시 올려 본 하늘이 유달리 파랗고 높습니다. 이른 봄만 되면 늘 우리를 따라다니며 불편하게 하는 미세먼지며 황사도 오늘은 눈치껏 비껴가는 모양입니다. 옛날에는 이를 모두 황사(黃砂)라고 퉁쳤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유달리 하늘이 누렇고 뿌옇게 변해있거든요. 그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그래도 양반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인 청파감리교회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몽골 지역의 조림(造林) 사업을 주도하고 후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업이 하나하나 모이면 결국 우리에게 큰 이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부디 이런 사업이 점점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과연 어떤 어린 날을 보내고 또 기억할까요? 우리와 다른 경험, 가치관! 학원을 가야 하고 또 다른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조그마한 버스에 타야 합니다. 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거의 필수인 듯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스스로 공부하고 정리하며 생각할 시간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학교는 학원숙제를 하기 위해 등교한다고 할 정도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어른인 저도 답답할 노릇입니다. 어른이 풀어야 할 문제인데도 어른이 답을 모릅니다. 지금의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 제대로 길을 걸으며 좋은 길을 걷고 있는지요? 나의 행동이나 말 한마디가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요?



마치 자기들 얘기를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처럼 바깥에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내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처한 형편 때문에 아이들의 걱정이 늘고 우울해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들의 배려는 점점 커지며 이 사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많아지고 커질수록 아이들의 등짐은 작아질 것이며 그 남는 공간에는 꿈과 희망이 대신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전쟁의 소식은 사라질 줄 모르며 서로를 향한 으르렁거림은 사방에서 그칠 줄 모릅니다. 어른인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그림은 분명히 이런 게 아님을 알지만, 여전히 우리는 엉뚱한 페이지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에 혀를 찰 일이 아니라, 자자! 우리 어른이 잘하고 있는지 뒤돌아봅시다. 제대로 발자국을 내고 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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