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보내고 나니 더 보고 싶네요.
형님. 아마 형님께 전화가 아닌 편지로 소식을 전하는 것,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사람들에게 가장 만만한 핑계 중 하나이지만 바빴다, 정신없이 보냈다는 말 밖에는 달리 고상한 변명 따위는 쉽사리 떠오르지 않네요. 굳이 연락하기로 맘먹으면 왜 연락을 못 했겠습니까? 그냥 마음의 문제이겠지요. 무심함 말입니다. 다행히 이제라도 펜을 들었으니 뒤늦게 철들었구나! 생각해 주십시오.
세월이 왜 이리 빠르답니까? 형이나 동생이나 이제 갑자(甲子)를 한 번 돌렸으니(還) 옛날 같으면 동네잔치라도 벌일 판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나이 60을 나이로나 쳐 준답디까? 그냥 지나치는 흔한 범부(凡夫)의 한 시절일 뿐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뒤돌아보면 딱히 해놓은 게 없고 이뤄놓은 거 없이 이 나이를 맞았습니다. 게다가 무언가를 해보려 계획 세우기도 어중간한 나이입니다. 참 만만한 시기입니다.
형님이야말로 무슨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그 계획을 해낼 자신감도 있으십니까? 무엇 하나 맛보려 해도 젊은 날 왕성하던 입맛조차 이제 없을 나이인데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과 패기도 이제 한풀 꺾여버린 나이입니다. 그렇다고 허무감에 빠져 모든 일에 손 놓을 시절도 아니니 그저 힘 돋우는 조미료나 영양제 한 알 정도면 다시 재미 붙여 일해 볼 심산(心算) 정도는 있다고 자부합니다.
며칠 전, 아니 한두 달 되었나? 한여름에 대학 동기 하나를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나랑 동갑이니 환갑을 맞아 다시 움츠렸다 나아갈 계획을 세웠을 텐데 날갯짓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더라고요. 사고라데요. 그렇죠. 지병으로 가기에는 너무 이르지요. 하늘나라 가는데 정해진 나이야 없다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형님. 그게 참 이상한 일입니다. 사고든 질병이든 먼저 갔다고 듣는 순간 조금도 낯설지 않더란 말입니다. 그냥 ‘아쉽다’ ‘왜 그리 급하게 갔대’ 그 정도일 뿐 한편으로 전혀 어색하지도, 낯설지도 않더란 말입니다.
우리야 맘먹으면 날 잡아 얼굴을 보니 그렇다 쳐도 세월을 한참 비낀 후에 내 동기나 오래전 친구를 보게 된다면 어디서 불쑥 올라오는 두더지처럼 중늙은이 하나 보는 셈 칠까요? 그렇게 되겠지요? 주름은 많고 피부는 검어지고 나잇살에 볼은 늘어져, 학교 다닐 적 체육대회라도 하는 날이면 세상 다 밟을 듯 뛰었던 팔팔함은 이제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중늙은이 말입니다.
맥없이 세월만 보내지 말고 조만간 한 번 봅시다. 단 하루라도 더 젊은 날 보자는 무언의 압박입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지요? 한 번 형님이시니 내내 형님 노릇 하면서 그리 지내십시다. 알았죠, 형님? 형수께도 안부 전해 주십시오. 애들 결혼 날짜 잡히면 꼭 알려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