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全科)에서 배우지 않은 내 습관

전과, 수련장은 역시 표준과 동아입니다.

by 김욱곤
(이미지출처:블로그 닥스훈트) 이미지는 동아전과입니다만 저는 표준전과로 공부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참고서라야 전과나 수련장밖에 없던 시절을 살았습니다. 제 공부하던 습관 중 하나는 수련장의 문제를 풀 때 답을 미리 적어놓지 않고 푸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을 눈으로 풀고 나서 답을 보고, 서너 번 그리 한 뒤야 마지막으로 시험 보듯 답이 맞나? 봅니다. 효과는 제법 좋습니다. 그러다 보니 참고서가 정신 나갈 정도로 난잡해질 일은 거의 없습니다.


5학년이던가 6학년쯤 되던 어느 하루는 제 친한 친구가 시험 전날, 두 시간만 수련장을 빌려달라기에 아무 생각 없이 빌려주고 약속된 시간에 돌려받았습니다. 수련장의 시험 범위를 편 순간 저는 마치 부모님이라도 돌아가신 듯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야 말았습니다. 답을 다 달아놓은 것도 모자라 그 답을 외우는 과정에서 연필로 진하게 밑줄까지 그어놓아 그야말로 연탄집에 다녀온 수련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글쎄요. 뭐 그 정도를 가지고 울고 난리를 쳤느냐고 모두 의아해하시겠지만 제 심정은 그랬습니다. 내가 만약 남의 것을 빌렸다면 최대한 손상되지 않게 쓰고 돌려준다는 원칙이 어린 나이에도 있었기에 그 점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이모가 친구에게 살짝 얘기해서 미안하다, 괜찮다 웃으며 지나갔지만, 그 일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이 습관이라는 것이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도 쉽게 가라앉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대학을 다닐 때 의사국가고시를 준비할 때는 물론 전문의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내 책은 참 깨끗했습니다. 그냥 중요한 부분에 메모해 놓는다든지 아니면 포스트잇을 붙여놓는 정도에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공부는 하고 있는지 의심하기 딱 좋은 정도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나에게 말을 안 했을 뿐 그런 생각을 한 사람도 있었겠지요.



요즘에도 책을 읽으면 그런 원칙은 늘 지킵니다. 책을 펼치면 다시 덮어지려 하는 탄성을 막기 위해 책을 꾹꾹 누르는 습관도 제게는 없습니다. 조금은 답답해 보이는 이러한 습관들이 이제는 고칠 필요도 고칠 이유도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일종의 배려와 세심함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소유, 그것이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간에, 내 잣대로 그것을 판단하고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잣대로 배려해 주어야 맞습니다. 그렇게만 해주면 최소한 저 사람은 이상하다, 실수했다. 그런 편견에서 많이 해방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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