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그럼요! 제가 그렇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저는 하루 대부분을 수술실에서 보냅니다. 그 말은 곧 하루에 최소 몇 개 이상의 수술을 보며 지낸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이 방에서는 A, 저 방에서는 B라는 수술을 보며 퇴근을 향해 달려갑니다.
당연한 소리이지만 수술의 중등도(重等道)나 시간, 범위는 정말 다양합니다. 수술의 대부분은 대략 예측이 가능하지만 같은 수술이라도 외과의의 성향에 따라 접근방법이 다르고 수술 방법에 따라 소요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진단, 같은 수술명이 입력되었다 해서 이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단언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수술의 접근방법은 날이 갈수록 진화해서 제가 수련받을 때와 최근의 양상은 천양지차(天壤之差)입니다. 내가 전문의가 되었다고 해서 그걸로 만족하고 최신 경향을 따라잡지 못하면 변화가 빠른 이 분야에서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의라는 자격은 자격을 얻었으니 그 기초 위에 더 높은 탑을 쌓으라는 자격증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는 일입니다만, 저는 2012년 마지막 달인 12월에 제법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서술어는 받았다는 단어입니다. 평생 다른 환자를 위해 베풀던 마취를 제가 받아야 했으며 과정의 특성상 내가 의사라 해도 나를 스스로 마취할 수가 없었습니다.
진단을 위해 내시경을 하고 CT를 찍은 후에 수술이 결정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부끄럽다는 것이었습니다. 명색이 의사이면서, 그것도 나이가 50이요 날마다 수술을 보아오던 의사가 자기의 병을 위해 검진도 게을리했다? 그것도 모자라 수술할 정도로 병을 키웠다? 별수 없구나! 비아냥을 들을까 봐 겁부터 났습니다. 실제로 당시 SNS에 그런 비아냥을 주제로 한두 개의 글이 이미 며칠 간격으로 올라온 터라 이 상황을 더욱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다음은 수술과 회복하는 동안의 업무 공백이었습니다. 당시 개업하고 있었고 같은 건물의 병원에서 마취업무까지 맡고 있던 터라 업무의 공백은 곧 매출의 하락과 연결이 되고 수술 진행에도 차질이 생길 게 뻔한 일입니다. 대진할 의사를 구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 말은 곧 지출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었고 수입과 지출을 계산한 결과 며칠이 될지는 모르지만, 휴진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직검사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주변 림프조직까지 침범한 대장암 3기로 판명이 났고 수술 후 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잘 견딜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불가항력으로 따라오는 부작용 때문에 6개월이라는 기간은 실제 기간보다 훨씬 길게 느껴진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니 그 광야 같은 세월을 어떻게 보냈을까 싶은 꿈같은 시간입니다.
이렇듯 유쾌하지 않은 시절을 떠올리고 기억의 서랍에서 꺼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건강은 하루라도 더 젊을 때부터 지키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조그만 이상을 보일 때 대처하는 것과 중대한 증상을 보일 때 대처하는 것은, 병의 예후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에 그렇습니다. 제가 수치스럽다고 표현하는 과거 기억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런 노파심 때문입니다.
지금은 다행히 정기적으로 관리도 받으며 완치판정도 받고 당시 발견된 기저질환도 잘 다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입니다. 일상을 의사가 아닌 환자로 보내는 것도 한 편 좋은 점이 있기는 합니다. 환자의 형편이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아주 귀한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가능한 일일지 의문이 들지만, 일생을 불편이나 질병 하나 없이 지내다가 돌아가시는 분이 계신다면 이분은 하늘의 복을 받으신 분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굉장히 희귀한 일일 테니까 한발 물러서 생각하면 약이나 주사로 조절되는 질병 정도만 가지고 있으신 분들도 행복한 분입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Sound body, sound mind. 이 말은 만고의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