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의 문학상

저는 남성문학상 출신입니다.

by 김욱곤
(제가 졸업한 남성고등학교입니다. 전북 익산에 있습니다)


오늘은 고등학교 1학년의 기억으로 펜을 들려고 합니다. 그것이 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학교에 남성문학상(南星文學賞)이라는 이벤트가 전통적으로 열리고 있었습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시, 수필, (단편인지 중편까지인지) 소설 부문 작품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사실 소설 부문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을 정신없이 시작하고 적응해 가던 시절, 수필 부문에 응모하여 동상인가를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주옥같던 수많은 작품 중에서 뽑힌 것이기 때문에 상(賞)의 경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도 그런 면이 있구나! 싶어 새로움을 맛보았던 귀한 기억입니다.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 저를 조용히 부르셨습니다. 여러 가지 말로 서두를 잡으셨으나 결말은 하나, 문학을 네 길로 삼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 어른들의 보편적인 소망이나 기대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지만 저는 이미 장래 희망을 이과(理科)로 결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다행히 부모님과 자식인 나 사이에 장래의 문제로 갈등은 거의 없었습니다.



내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명제는 젊은 날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는 세대가 바뀌고 여러 세대가 지나가도 쉽게 바뀔 문제는 아닐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 물을지언정 어떻게 인생을 운영할 것인가? 잘 묻지 않으며 생각하려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포기해야 할 게 많아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제가 최고의 가치로 추앙받던 시절 연봉이 받쳐주지 못한다는 논리로 우리는 수많은 장래 희망에서 많은 직업군을 가차 없이 쳐내고 버립니다. 살아남은 직업군은 소위 높은 연봉 아니면 권력을 누리는 정도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주변의 시선이나 여타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바라고 이룰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회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지표가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필요 없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통로로든지 우리는 다양하게 도움을 받으며 우리 삶을 살아갑니다.



아이가 커가며 부모로서 편견을 은연중 심어주지 않았는가? 뒤돌아보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또는 이 시점에서 저는 어느 길을 가야 할까요? 묻는다면, 굳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자작나무’를 읊어주지 못하더라도 ‘아들아 너는 이렇게 살아가면 좋겠다.’라며 지혜롭게 대답하는 부모 되기! 더 나아가 아이의 미래를 부모가 미리 결정하여 주입시키지 않기! 이 나이가 되어도 올바른 부모 되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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