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도 우리를 더 맛있어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망가지지요.
요즘이야 아예 건들지도 않는 품목이지만 저는 한때 대단한 흡연가였습니다. 하루에 한 갑 정도 태울 때도 있었으니 이 정도면 그냥 맛만 보았다 정도는 넘어선 셈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청소년 시기부터 피운 건 아니고 대학 입학 후에 친구 따라 호기심에 태운 것이 20년 가까이 몹쓸 버릇을 버티고 산 셈입니다. 대학 입학하고 교련 시간의 필수과정인 향토사단 입소가 3월 셋째 주에 있었는데 입소 기념으로 우리에게 기념품으로 준 게 그 유명한 ‘화랑’ 담배 두 갑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노래에도 나오던 그 담배를 아들 세대인 우리가 받았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예 없던 필터가 옹색하게 있다는 점입니다. 시중에 팔던 담배에 비하면 담배라 이름하기 힘들었던 그 담배를 당시 장병들은 맛있게 피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담배 사업이 나라의 독점이다 보니 국민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전매청(專賣廳)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향후 한국담배인삼공사(KT & G)로 이름이 바뀌고 슬그머니 인삼과의 공존을 내세우지만, 기업의 이미지를 미화시키기에는 이미 태생적으로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2001년에 들어서 담배 제조 독점권이 폐지되어 2006년 처음으로 민간 담배 제조업체인 ‘우리 담배’가 설립되었지만 한정된 제품 수와 프로야구에 대한 무리한 지원(우리 히어로즈), 경영난으로 인해 2010년에 해체되는 비운을 겪으면서 담배 산업은 다시 독점체제로 회귀했습니다.
담배의 폐해야 다시 언급하여 무엇하겠습니까? 삼척동자도 다 아는 지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편화된 폐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담배에 열광하며 끊지를 못하는가? 왜 중독되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며 지내는가? 그런 의문은 담배가 존재하는 한 내내 계속될 게 분명합니다.
제가 젊을 때만 해도 흡연에 대해 사회 전반적으로 상당히 관대했습니다. 길거리에서는 말할 게 없고 다방, 식당, 영화관은 물론 버스나 기차 안도 끽연이 가능했습니다. 끽연은 개인의 권리라 생각해서 지금처럼 제재받고 단속하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재떨이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그 업소는 불친절하다고 취급받았고, 라이터회사인 ZIPPO는 그 업계에서 명품으로 여기던 시절을 살았습니다. 아울러 일회용 라이터는 우리나라가 여태껏 주요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담배의 인기가 여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게 중요 이유겠지만 그 상황을 초래한 기저에는 담배의 간편화가 있을 것입니다. 담뱃잎을 싸서 피던 시절에서 곰방대를 사용하거나 Cigar가 보편화되고 다시 휴대가 간편한 Cigarette의 인기가 배경에 있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렇듯 손에 쥐기 수월하다, 접하기 쉽다는 게 감소하기 어려운 주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 더 언급하고 싶은 이벤트가 80년대 중반에 일어납니다. 다름 아닌 ‘양담배의 해금’입니다. 합법적으로 양담배를 살 수 있다는 해방감 때문에 이를 계기로 끽연 인구는 다시 급증합니다. 1986년 9월 1일이라고 돼 있군요. 그 이전의 양담배는 적발의 대상이며 벌금 징수의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담배라는 게 없어지지 않는 이상 흡연이 줄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부에서 담배가격을 올리면 흡연 인구가 줄지 않을까! 하여 4.500원으로 올렸는데 일시적으로 판매량은 줄었지만, 흡연 인구가 다시 원래대로 환원되면서 결국 세수(稅收)만 느는 효과만 보였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문제는 단지 개개인의 의지만으로 힘들 것입니다. 사회 전반적인 의지, 전문가의 도움, 약의 도움 등을 받는 게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 이미 후유증으로 질병 노출 후에는, 아쉽지만 많이 늦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제 어른만의 문제가 아닌 청소년의 문제로까지 확대된 흡연의 폐해, 한때 끽연가였던 아니 애연가였던 제가 드리는 간절한 부탁입니다. 담배를 끊읍시다. 더 좋은 것! 아예 피우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