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에 우리 인간 삶에서는 감성의 힘도 큰 역할을 합니다. 감성의 힘으로 삶의 기쁨과 그 가치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감성의 힘을 예리하고도 높은 차원으로 다듬어 주는 것에 예술이라는 매개체가 있지요. 꼭 예술행위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예술작품 속에서 감각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에게 예술은 꼭 필요한 자양분임에 틀림없다고 봐야지요.
하지만 예술의 의미와 그 속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예술이 줄 수많은 삶의 양분을 우리는 가치 있게 소화할 수 없지요. 그것은 예술가의 땀과 열정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의 필요성을 논하기 전에 먼저 우리 일반인 개인의 삶에 크나큰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꼭 예술가가 아니라도 예술을 이해하고 그것이 주는 의미를 내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글은 예술과 그 이론인 미학에 대한 글입니다. 미술, 특히 회화를 중심으로 썼습니다.
예술에 관심이 있거나 예술 작품에서 좀 더 깊은 의미를 찾으려는 분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에서 많은 부분 참고가 있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 글은 쉽게 읽히기 위해 미학적 외국 전문용어들을 우리말로 순화했거나, 번역을 붙여놨습니다.
미학의 태동과 예술행위의 변화
우리는 생활 속에서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또 글을 씁니다. 연극을 하거나 조각(彫刻)을 해서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하지요.
이런 행위는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행위자 정신의 체화(행동)과정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행동이죠. 이른바 예술 행위입니다. 사실 이런 행동은 옛날사람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문제를 합리적인 명제(철학)로 이끌기 좋아하는 서양사람들도 오래도록 예술이라는 개념을 갖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은 이런 행위를 철학이라는 범주로 분류했거든요.
그랬어도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사람들의 예술행위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이데아(환영幻影)설 때문이에요.
이데아 개념이라는 건 말하자면 이 세상은 환영에 불과하다, 라는 사상입니다. 실제 세계는 저 너머에 존재하고 우리는 자연의 환영을 볼 뿐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예술은 뭐든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니, 우리 눈에 비친 환영을 모방하는 행위가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 환영도 모방인 것이라고 말 할 때, 예술은 모방을 다시 모방하는 게 되는 것이고 플라톤은 그래서 싫어한 겁니다.
하지만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가졌지요. 세상은 어차피 진,선,미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 중 ‘미’ 차원을 좀 더 이상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예술 행위를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시학’이나 ‘수사학’ 책을 쓰기도 했죠.
그리스 고대 유적 중에 원형극장이 많을 만큼 당시 연극도 성행했습니다. 그 때 연극은 ‘시극詩劇’ 형태인만큼 모두 詩라는 범주에 들어갔어요. 그래도 아직 예술이라는 개념은 없던 시절입니다.
그나마도 조각이나 그림, 도예 같은 것은 석수쟁이나 환쟁이, 도기쟁이들이 만드는 거라고 해서 예술이 아닌 ‘기술’로 취급했어요.
이런 개념은 르네상스까지 오는데,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지금으로서는 대예술가로 대접하는 사람들도 그 당시엔 그저 ‘기술자’에 불과했지요. 그 때까지도 예술은 도덕이나 종교, 또는 철학의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술이 예술로 대접받기 시작한 건, 서양에서 근대자유주의 사상이 나오고 부터인데 그건 프랑스혁명으로 촉발되지요. 이후 사람들은 삶을 짓누르던 억압적인 도덕과 종교사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작품 표현을 꿈꿉니다. 철학자들은 이걸 ‘계몽주의’라고 말했죠.
이후 예술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된 건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들이었기 때문에 예술을 학문의 범주로 끌어올린 ‘미학’ (美學, 영어로는 esthetics, 우리 말의 이 단어 '미학'은 일본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는 18세기 유럽에서 만든 독일어 단어 에스테티카 'Ästhetica'를 번역한 것이다) 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도 철학자였어요. 독일의 ‘알렉산드르 고트리프 바움가르텐’이라고 하는 사람이죠. 이 사람은 세상일의 인식문제를 ‘상급’과 ‘하급’으로 분류하면서 전자의 학문을 ‘논리학’, 후자의 학문을 ‘에스테티카’라고 했습니다. 즉 철학이라는 학문을 논리체계로 따지는 이성의 학문과 아름다움을 따지는 감성의 학문으로 나눈 것입니다.
그로부터 미학이라는 학문은 철학의 한 분파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독설로 유명한 진중권은 사실 대단한 미학자기도 하죠.
어쨌든 예술론과 미학에 대한 연구는 철학자들의 몫인 반면, 직접적인 행위자들은 예술가들이다보니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예술가들도 미학이라는 철학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작품에 그 철학을 녹여내려고 애쓰게 되죠. 그래서 특히 미술계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니 로코코, 또는 인상주의나 입체주의, 추상파 같은 예술사조가 흐르게 됩니다.
그런데 철학자들은 예술을 어떻게 정의했느냐면, 먼저 대표적인 사람이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임마누엘 칸트였어요. 이 사람 말을 간단히 표현하면 ‘그 사회에서 인정하는 형식의 틀 속에 아름다움의 상상력을 표현한 천재의 소산이 예술이다.’ 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말엔 논리적으로 반박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예술을 말 할 때 이 말을 꼭 집어넣고 있지요.
다음은 헤겔이라는 철학자인데, 오늘날까지도 철학사조의 큰 흐름으로 남아있는 변증법을 창안한사람일 정도로 철학사에 큰 획을 그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예술이란, 이념을 감각으로 드러낸 것이다.’ 라고 했어요.
그런데 사실 이 말 역시 원래 철학적 사변 속에서는 통할 수 없는 이야기에요. 왜냐하면 ‘이념’이라는 것은 객관적 이성에서 나오는 것이지 주관적 감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각도 곧 주관이기 때문에 이 말은 그래서 논리적으로는 패러독스(모순)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도 헤겔은 예술과 그 행위자체가 감각의 행위기 때문이고 그 안엔 작가의 이념을 숨길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건데, 이 말 역시 아직도 예술론을 말 할 때 타당하게 통하는 말이 되었어요.
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헤겔의 이 정의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는 대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고전적인 예술에서, 단계를 거치면서 피카소의 그림 같은, 대상을 정확한 표현이 아닌 ‘나름의 형상화’를 하기도 하지요. 이젠 자연에서 볼 수 없는 ‘이율배반’이나 ‘괴리’ 같은 표현도 종종 볼 수 있는 현대미술이 생겨나게 됩니다.
바로 이런 그림들이지요.
마그리트의승리
잭슨 폴록의 검정과 하양
과거 예술들은 작가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고 관객이나 독자에게 설명을 하는 형식이었죠.
하지만 현대 예술, 특히 현대미술은 이제 설명 자체를 생략해버립니다.
그럼 관객은 뭘 보고 어떻게 느끼나?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의도를 어떻게 알 수 있나?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자연스러운 의문이지요.
하지만 현대 예술엔 이런 의문 자체도 생략해버립니다.
여기서 관객은 작품을 감상한 다기 보다는 작품 앞에서 작가랑 마음 속 대화를 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작품 앞에서 관객은 스스로 상상하게 되어있으니까요. 이 ‘스스로 상상하게 하기’가 바로 작가가 의도한 거죠. 그래서 작품을 놓고 작가에게 ‘이건 무얼 표현한 거죠?’라고 묻는 건 상당한 실례가 되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 표현을 해왔어요. 특히 예술작품이라는 틀 속에서는 자기의 상상을 마음대로 표출했지요. 그런 행위는 자기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갈고 닦았던 거지요. 그것은 남들이 자기 이야기를 더 빨리, 그리고 더 쉽게 이해해주길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개념은 일종의 화두를 던져주고 관객이 상상하게 합니다. 이 때, 얼마나 더 깊고 많은 화두를 던져주느냐가 예술 깊이의 척도를 재는 가늠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게 되요.
철학이란 어떤 명제라도 증명가능해야 한다는 철칙이 있거든요. 예술을 다루는 미학이라는 것도 어차피 철학의 분파이기에 예술에 대한 개념도 증명가능한 명제로 다루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위의 칸트와 헤겔의 명제 역시 반박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거든요. 다시 말해 이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정의는 결코 증명될 수 없는 이야기들인 겁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서로서로 조금씩 모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그저 널리 받아들이고는 있는 실정이지요. 왜냐하면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이라는 특별한 행위 앞에서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고 할까요.
알고 보면 인간은 대개 거기서 거깁니다. 특별한 천재가 따로 없다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세상엔 엄연히 천재가 존재하거든요.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예술계의 천재라고 인정받는 사람이란 한마디로 노력을 효율적으로 더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그런데 노력을 하되 효율적인 노력이 되려면 역시 어느 정도 예술사조의 이론을 좀 알고 나면 이득이 크겠죠. 그렇다고 깊이 있게 알 필요도 없다고 봐요. 왜냐하면 그저 이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은 미학과 예술의 정의에 대한 개념정리를 해서 이야기해주는 글인 거죠.
르네상스 이후 근대미술의 발전
대상을 최대한 정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기법이 만연했던 이전과 달리 사람들은 상상의 나래를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한 운동이 펼쳐지는데, 이건 프랑스 혁명 이후의 ‘계몽주의’의 산물이라는 말은 앞에서 했지요. 그동안 수천 년에 걸쳐 예술행위를 하던 사람들은 이후 그 표현의 방식이 비약적으로 변화합니다.
예를 든다면 드로잉을 중요시하는 선적(線的)인 그림에서 윤곽선 보다는 시각적인 그림으로, 평면적인 그림에서 대상의 깊이를 표현하는 그림으로, 닫힌 형식에서 열린 형식으로, 정적(靜的)에서 동적(動的) 등으로 바뀌는 식이죠. 아래 르네상스 시대 그림과 이후의 바로크 형식의 그림을 한 점씩 보면서 느끼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산드리 보티첼리의 봄 1478년 경
페테르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 1634년
하지만 여전히 미술은 종교나 신화, 또는 역사적인 표현에 정보를 담으려는 ‘의미정보’에 치중을 두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에 이름이 알려진 화가들의 대세였어요. 그러나 19세기가 들어서면서 이런 예술사조는 완전히 끝나죠.
이제 그림의 대상에 대한 의미보다는 그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한 발견, 즉 ‘미적정보’에 치중을 두는 그림으로 변화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잠깐 이야기해야 할 게 있어요.
시대마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예술형식의 변화를 주게 되는 걸까?
사람들은 왜 시대에 따라 이토록 예술표현에 대한 생각이 변하는 걸까?
그건 시대마다 종교적 이해, 철학의 사조, 정치적 변동, 과학의 발달, 등으로 인해 삶의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입
니다.
옛날 수천 년간은 사회, 기술, 정치, 철학 등에서 변화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몇 백 년 쯤 지나도 표현의식 면에서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죠. 그래도 달라진 게 좀 있다면 고대 이후 중세의 로마네스크양식, 비찬틴양식, 고딕양식 등이 있습니다만, 거의 천 년에 걸쳐 아주 느리게 변화했습니다.
하지만 16세기 이후 인류는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단 백년 만에도 여러 분야에서 말 할 수 없는 변화가 이루어진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특성엔 자기도 모르게 시대적 선입관이라는 게 박혀있지요.
우리가 만약 고대 그리스 연극을 본다면 재미없을 겁니다. 심통난 신들의 이야기, 또는 그런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 한다는 통속적인 이야기에다가 우리에겐 낯선 시형식의 연극을 끝까지 보려면 거의 고문에 다름 아닐 겁니다. 어차피 조작된 유치한 이야기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은 그 연극을 가슴조이며 봤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살아있는 신들의 이야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 때 사람들이 지금 세상으로 와서 많은 사람들의 넋을 빼앗는 드라마를 본다면 재미를 느낄까요? 스토리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도 못할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대적 선입관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선입관엔 저마다 성장하면서 배워온 지적 전통과 세계관, 가치관 등이 담겨지는데, 만약 우리 머릿속에 이 선입관을 지워버린다면 우리 머리는 백지가 되면서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예요. 이해의 근원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해석철학에서는 ‘이해의 지평’이라고 말하는데,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시대적 이해의 지평을 갖게 되는 겁니다. 중세 사람들에겐 해가 지구를 돌았지만, 우리시대엔 지구가 해를 도는 이해의 지평을 갖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같은 예술작품이라도 시대가 달라지면서 이해의 지평이 바뀌면 그 해석도 달라지는 겁니다. 만약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가 피카소의 그림을 봤더라면 어떻게 해석할까? 아마도 그들은 작품을 던져버릴 뿐만 아니라 한심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 이해의 지평에 그것은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작품을 볼 땐 다릅니다. 우리는 그 시대의 특징을 알기에 ‘지평의 융합’이 자연스레 일어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과거의 의미정보에 치중했던 회화작품이 19세기가 들어설 무렵 미적정보로 달라지니 작품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그 대표적인 그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터너의 안개속의 해돋이 1806
윌리엄 터너라는 이 영국 사람은 안개 끼는 바다풍경의 묘사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영국은 마침 안개가 많은 나라니까요. 그런데 이 사람은 어째서 이런 그림을 고집했을까요. 거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안개에 대해 그리 깊게 생각할 필요도, 겨를도 없었지요. 하지만 터너가 이런 안개그림을 그렸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귀찮고 지긋지긋했던 안개에 감춰졌던 그 내면의 아름다움과 참모습을 깨달았어요.
예술이란 당연히 사물 또는 자연의 재현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거울처럼 그냥 재현하는 게 아니라 본질적이며 의미 있는 측면, 즉 은폐되었던 부분을 드러내는 거죠. 그런데 그런 부분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술가의 특별한 감각으로만 볼 수 있는 거죠. 예술가가 그것을 드러내주었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보며 경탄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합니다. 그 아름다움을 얻게 되자 거추장스럽게만 여기던 안개가 영국인들 삶 속에서 마침내 참된 모습으로 자리 잡습니다. 이토록 예술은 없던 것도 있게 합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자연의 진리를 새롭게 깨닫게 되지요.
이런 것은 비단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과 문학 같은 모든 예술에 다 적용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는 ‘예술작품이 진리를 열어준다’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19세기 중반에 들어 새로운 그림형태를 고집하는 화가가 출현합니다. 바로 현대미술의 첫발자국인 인상파의 개척자 클로드 모네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연못의 수련(睡蓮)을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밤이면 꽃잎을 접고 잠자는 꽃이라 해서 수련이라고 하는 그 꽃들 말이죠. 그 그림들을 두점만 보여드리겠습니다.
모네의 수련
모네의 가까이서 본 수련
사람들은 이런 그림들을 보면서 질문합니다.
모네가 정말 연꽃을 그린 건가?
물론 모네는 분명 수련을 그렸지요. 그러나 완성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미완성 작들인가?
그렇지도 않아요. 모네는 자기할 일을 다 했습니다. 다만 수련의 궁극적인 완성은 화가의 붓끝이 아니라 바라보는 이의 눈에서 완성되는 겁니다.
모네는 빛에 비춘 수련, 즉 빛과 거기에 비춰진 수련의 상을 그린 겁니다. 말하자면 인상(印象)을 그린 거죠. 여기서 인상파라는 말이 나옵니다.
과거의 화가들에게 대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진리였습니다. 거기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꼈으니까요. 그렇기에 달리는 마차바퀴도 그 바퀴살을 일일이 표현했죠.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대상을 눈에 보이는 상황대로 솔직히 그립니다. 만약 그들이 달리는 마차바퀴를 그렸다면 바퀴살을 일일이 그리지 않을 겁니다. 달리는 마차바퀴살이 눈에 보일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듯, 과거의 화가들이 ‘객관’을 지향했다면, 인상주의 화가들은 ‘주관’을 지향한 거죠. 과거의 화가들이 ‘대상’을 그렸다면 인상주의 화가들은 사람의 ‘시각’을 그린 겁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색이란 반사된 빛일 뿐입니다. 그런데 빛은 고정 된 게 아니라 시시각각 달라지죠. 흐린 날, 갠 날, 오전과 대낮, 그리고 저녁의 빛이 전혀 다른 것처럼.
아래는 같은 대상이지만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조에 대한 모네 그림들입니다. 프랑스 루앙성당을 그린 그림이죠.
모네의 빛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는 루앙성당
결국 이것은 성당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성당의 인상을 그린 겁니다. 결국 모네는 자신의 눈에 비친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시뮬라크르) 놀이 속으로 현실의 견고함을 사라지게 한 최초의 화가입니다.
그러나 인상주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폴 세잔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됩니다. 그림에 도형을 도입하는 혁신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사람들은 이것을 ‘입체주의’, 즉 입체파라고 말합니다. 그 영향으로 결국 스페인의 두 거장인 살바도르 달리, 그리고 피카소의 초현실주의 예술세계가 잉태되지요. 아래는 세잔이 도형과 입체라는 형식으로 그린 두 그림입니다.
폴 세잔의 대수욕도
폴 세잔의 체리와 복숭아
세잔은 그림에서 인물이나 대상 자체보다는 기하학적 형태를 이용해 조형성을 강조합니다.
위의 대수욕도를 보면 삼각형이라는 도형을 크게 강조하지요. 아래 그림 역시 반듯하지 못하고 무언가 삐딱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그림을 그릴 때 부분적으로 시점을 다르게(입체) 그리기 때문입니다. 밑의 그림 체리와 복숭아를 보면 과일접시 두개의 보이는 각도가 다르죠. 뒤 쪽의 푸른 커튼 역시 전혀 다른 시점입니다. 이런 것이 세잔이 자연을 이해하는 감각이었어요.
이 사람은 이미 정해진 기법이나 양식으로는 자신의 체험을 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내기 위해 평생 노력했지요. 그랬어도 그는 죽기 한 달 전 아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야 자연을 좀 더 맑은 눈으로 볼 수 있는데, 내 이 감각을 그림으로 실현하는 것은 언제나 너무 어렵구나. 내 감관에 펼쳐지는 그 강렬함에 도저히 도달할 수가 없다."
진정으로 그가 훌륭한 건, 가장 철학적인 화가라는 칭송을 받는 천재였어도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면서 고민하고 노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피카소는 훗날 자신이 유일하게 배우려고 노력했던 존경하는 스승이 폴 세잔이었다고 실토합니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인 '현대미술의 아버지'라는 찬사가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었지요.
현대미술, 추상으로의 도피
18세기 이후 유럽의 산업혁명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정적이며 금욕적인 농경생활에서 연기 나는 굴뚝이 줄지어 선 활발하고도 동적인 도시의 산업시설로 사람들이 이동합니다. 자본이 그 위에 군림하면서 일반인의 생활방식에도 급격한 변화가 오지요. 이른바 모던(근대, 또는 현대)시대가 열린 거예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교육, 문화, 사회 등 여러 면에서 더 가파른 변화의 회오리에 휩쓸립니다.
국가는 국민을 자본주의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해 공교육제도를 창설합니다. 이제 국민들은 획일적인 교육을 받으며 획일적인 자본주의사회의 일원으로서 색채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의 코드로 수많은 복제들을 찍어내는 게 자본주의 생산의 특징이지요. 사회와 미디어 역시 획일 되고 인간마저 코드화 됩니다. 이제 개개인의 고유성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합니다.
예술가들은 이런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사회에 정식으로 항의합니다.
아래와 같이 말이지요.
말레비치의 검은사각형 1915년
말레비치의 검은동그라미 1920년
지금까지 회화의 대상은 자연과 사물이었고, 그 표현이란 그것의 재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회화표현의 대상은 자연과 사물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게다가 재현이 아닌 ‘의미표현’ 또는 ‘독립된 시각화’로 변화합니다. 예술 표현에서 추상성이 스며들기 시작한 겁니다.
‘절대주의’라는 독립적이면서도 저돌적인 예술사조가 우리에게 다가온 거죠.
획일화하는 동일성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예술은 사회 안에 통용되는 ‘코드’를 거부합니다.
고전예술은 대중과 코드를 공유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예술인들은 일부러 그 공통의 코드를 깨고 다양한 형식실험을 통해 오직 자기만의 코드를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할 때만이 예술은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존재로 남을 수 있다고 믿은 거예요. 거기엔 표현하는 예술가 자신에 대한 이해의 척도와 가치를 숨기기 위한 몸부림까지도 내포합니다.
보통의 일반인들이 현대예술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죠.
이제 예술인들은 자기를 상투적 코드 안에 가두려는 문화산업의 추적을 피해 끝없이 탈주하며, 이해되지 않는 이성의 타자로 남으려 합니다.
자연을 전혀 닮지 않으면서도 현대예술은 이렇게 자기만의 독특한 틀 속에서 자연을 미메시스(모방, 또는 나름의 재현)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죠. 결국 이것은 예술가 자신만의 호소에 가까운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나중에 극한의 ‘절대주의’로 이어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일으키게 됩니다.
철학자들은 예술가들에게 외칩니다.
‘보편성의 폭력 앞에서 개별자로 남으라. 이것이 오늘날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진리다. 예술은 바로 그 참을 갖고 있다.’
철학은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스스로 ‘참’을 가질 수 없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 시대의 ‘참’은 개별성에 있는데 철학은 보편적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이 때문에 예술과 철학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오늘날 예술인들이 자기 작품에 대한 설명이 길거나, 예술작품 전시회 카탈로그에 철학적 담론이 난무하는 것은 이 때문인 거예요.
회화에서 대상성이 사라지면서 전통적인 ‘진리미학’은 힘을 잃게 됩니다. 고전회화와 달리 현대회화에는 ‘내용’이라는 게 없기 때문이죠. 대상성이 사라진 추상회화 앞에서 사람들이 의존할 유일한 길은 본질의 올바름이 아니라 형식의 아름다움에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추상이 ‘절대주의’의 단계에 도달하면서 형식미학도 더 이상 우리를 돕지 못합니다. 형과 색의 자유로운 유희도 말레비치의 저 ‘검은 사각형’ 안에서는 갑자기 멈춰버리기 때문입니다.
절대주의는 ‘형상금지’의 세속적 형태인 거죠.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꼽히는 비트겐슈타인은 말했습니다.
‘말 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해야 한다.’ 라고 말입니다.
말레비치의 사각형은 고귀한 침묵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을 집어삼키며, 그 검은색으로서 세계의 죽음을 애도하는 표현이었던 겁니다.
일찌기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했습니다.
‘예술의 본질은 모방이나 재현에 있는 게 아니다. 예술의 진리는 무엇보다도 사건을 일으키는 데에 있다. 즉 모든 존재자의 아래에 묻혀 잊혀진 존재의 체험을 일으켜 우리를 '존재망각'의 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예술작품의 진리는 개시(開示)의 진리, 즉 은폐를 들춰내고 망각을 일깨우는, 탈 은폐로서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또 다시 말한다면 ‘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한다.’ 라는 말이지요.
위의 윌리엄 터너가 그린 바다의 안개 같은 작품을 우리는 이미 봤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겐 친숙한 예술표현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모든 것들은 허상이 되어버렸어요.
현대예술의 진실과 거짓
초현실주의의 지평을 연 사람들 중 마르셀 뒤샹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현대미술과 철학의 관계에 대해 물질과 개념(개념미술의 '개념'으로써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 자신의 의도, 메시지를 말함)의 엥프라망스(극도로 얇고 예민한 것, 미묘함)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아래 그림은 그의 초기작입니다.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1912년
이 마르셀 뒤샹이 1차대전이 끝난 1917년도 미국의 독립미술가협회의 주관 전시회에 특이한 작품을 출품합니다. 지금은 유명해진 [샘]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죠.
마르셀 뒤샹의 샘 1917년
이것은 평범한 변기제작회사에서 만든 수많은 제품(기성품) 중 하나죠. 이것에 뒤샹은 작가의 이름을 가명으로 R, MUTT, 1917 이라는 글씨만 써서 예술작품이랍시고 전시회에 출품한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시회장에 끝내 전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전시회장 구석에 천을 덮어 놓은 상태로 놔두었다고 하더군요. 누구도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이후 예술가들은 그 충격적인 작품을 보면서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예술가는 계획이나 발상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예술가는 자기 발상에 맞는 물건(오브제)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교나 기술적 요소 따위는 단지 작가의 발상을 전달할 때 필요한 요소일 뿐, 중요한 것은 작가의 생각이나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평범한 물건을 빛나는 아우라에 휘감긴 예술로 ‘변용’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작품의 해석입니다. 하나의 대상은 그것이 해석의 대상이 될 때 작품으로 ‘변용’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꼭 진실이 있다고 여기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예술의 ‘공모’가 스며들 여지가 있기 때문이죠.
루치오 폰타나의 공간개념 1961년
이처럼 폰타나가 캔버스에 처음 칼자국을 내고 작품을 전시했을 때, 비평가는 이렇게 썼습니다.
---21세기 화단의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 엉뚱한 일을 저지르는 무서운 아이) 작가가 출현했다. 회화의 형을 탐색하는 데에 주력해왔던 그가 최근 형을 초월하여 형이상으로 비약하고 있다. 화폭에서 보이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날카로운 칼자국뿐이다. 여성의 성기를 닮은 저 캔버스의 틈은 언젠가 모든 존재자를 낳은 세계의 자궁이다. 찢어진 틈으로 입을 벌린 저 어두운 존재의 심연을 보라.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와 존재자의 존재론적 차이가 저기에서 충격적으로 시각적 직관성에 도달한다. ---
우리는 이 말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글을 쓴 비평가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겁니다. 본래 자기도 모르는 말을 유창하게 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사람들이 비평가니까요.
하지만 이런 비평에 힘입어 캔버스에 칼자국만 낸 폰타나의 ‘공간개념’은 이후 1966년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회에서 최고 상인 ‘비엔날레’ 상을 거머쥐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100호 정도 되는 그의 작품은 2008년 런던 크리스티경매에서 최고가인 900만 1250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200억 원에 낙찰됐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품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진실로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미학자 조지 디키가 내린 정의를 간략하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예술계 종사자들이 인정하는 작품이라면 진정한 예술품이다.’
하지만 ‘예술계 종사자들’이라는 개념이 모호합니다.
그렇다면 그 예술계 종사자들은 누가 인정하는 걸까요?
우리는 이런 데서 ‘예술의 공모’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당 예술품을 만든 사람과 호의적으로 비평한 사람, 그리고 거액을 들여 그 작품을 구매한 사람은 펄펄 뛰겠지만 말이지요.
이런 일을 비웃듯, 미국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몰래카메라’라는 방송을 찍었습니다.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림 한 점을 내로라하는 비평가들에게 작품성을 의뢰한 겁니다. 얼룩덜룩 물감이 묻은 작품이었지요. 그 이상한 작품에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호의적인 비평을 했습니다. 그 중 한사람은 이 무명작가의 작품을 칭찬하는 내용으로 신문에 기고까지 했지요. 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방송 내내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작품은 원숭이가 그린 그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술의 종언
원숭이의 장난이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다면, 도대체 예술은 뭐하러 존재하는가?
하나의 사물을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게 그저 ‘이론뿐’이라면 예술가들은 대체 왜 존재하는가?
대중과 대중문화 그리고 미디어와 소비사회에 대한 이론으로 유명한 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 같은 이는 ‘현대예술은 무가치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무가치한 것이 그렇게 높이 평가되고,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일까?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그것은 어떤 ‘공모’의 결과라고 단언할 정도입니다.
원래 예술은 자연이나 대상의 재현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예술’은 재현을 포기했습니다. 때문에 ‘얼마나 진실하게 묘사했느냐’가 아니라, ‘다른 작품과 얼마나 다른가’ 가 작품성의 기준이 되었지요. 덕분에 우리는 무한히 다양한 예술언어를 갖게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요?
‘다르다’라는 것은 어떤 한계 내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 도를 넘어서면 ‘다르다’라는 의미도 퇴색해지게 되는 거죠. 저마다 모두 다르다면 오히려 다르다는 것은 모든 이의 ‘특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보드리야르는 과감하게 예술의 종언을 고합니다.
“예술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예술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예술은 죽는 것이다.”
지난 100여 년간 예술의 과제는 있는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없는 현실을 비로소 있게 하는 현시(現示)였습니다. 작품의 진리는 있는 현실의 정직한 증언이 아니라, 없는 현실을 만드는 창조의 힘에 있었지요.
하지만 이젠 없는 현실의 창조란, ‘있는 현실의 조작’일수도 있다는 위험한 벼랑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의 미학은 ‘존재의 윤리’로 견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가상과 실재, 허구와 현실은 어쨌든 구별되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