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깃발
우선 이 영화의 배경에 대한 브리핑이 필요할 것 같다.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이 일본 본토에 첫 발을 내딛은 곳은 백령도의 반도 안 되는 작은 섬 유황도(硫黃島 이오지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 곳은 일본 최남단이자 오키나와의 교두보로써 전략적으로 중요했지만, 미군은 길어야 닷새면 점령할 것이라고 내다봤었다.
그러나 그 곳은 예기치 않게도 태평양전쟁의 최대 격전지로 남게 된다.
그런만큼 조그만 섬 하나 놓고 치른 전투 치고는 양쪽의 피해가 너무 컸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전투 신은 너무도 참혹하다. 그 전투의 실제 전개과정은 다음과 같다.
1945년 2월16일부터 3일간 유황도 집중 함포 사격. (각종 함선 약 500 척, 포탄 발사 수 38만5천발)
이 폭격으로 섬 남단의 작고 유일한 산인 스리바치山(해발 169m)의 1/7이 날아갈 정도로 섬 전체가 초토화 된다.
2월 19일 상륙 개시.
미군의 상륙병력은 해병대 7만5천.
거기에 동행하는 해군 2만3천.
미군측 총지휘관은 제 5함대 사령관 R. 스플루안스 대장이었으며, 해병대 사령관이자 상륙작전의 창시자인 홀랜드 스미스 중장이 예하 부대를 직접 지휘했다.
유황도 일본 주둔군은 한 때 미국에서 교육받았던 쿠리바야시 다다미찌(栗林忠道) 육군 중장이 이끄는 2만 3천.
쿠리바야시는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했던 일본 장성 중 하나였지만 막상 그들과 맞 붙게 되자 모든 역량을 불사른다.
일본 연합함대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들 또한 붕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살아남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에 자기의 운명을 예측하고 솔직히 적었다.
“내 육신의 무덤을 어디에 쓸 것인가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좋소. 만일 영혼이 존재한다면 내 영혼이나마 당신과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것이오.”
이것이 그가 아내에게 쓴 마지막 편지였다.
그는 병사들에게 "열명의 적을 죽이기 전엔 함부로 죽지 말라." 라는 명령을 하달했을 정도로 투철한 군인이었으며 문학에도 열성이었던 덕장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부임한 8개월 전부터 이미 유황도를 철저히 지하 요새화 했다. 그렇기에 미군의 함포 공격은 그다지 일본군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런 덕분에 물량과 인원의 엄청난 열세에서도 일본군은 72일간이나 지독하게 버텨내지만 끝내 쿠리바야시 중장은 본부로 마지막 전문을 띄운다.
戰局은 최후의 문턱에 직면했음. 이제는 탄환도 떨어지고 물마저 메말랐음. 전원 반격하여 최후의 전투를 단행 할 수밖에 없음. 황국의 필승과 안녕을 빌며 영원한 결별을 고함.
결국,
일본군 대부분이 전사하고 무기가 떨어진 마지막 병사들마저 옥쇄(玉碎 명예로운 죽음)의 명목으로 자폭한다.
1033명의 일본군 포로가 있었으나 조선인 노무자들을 제외한 모두가 거동할 수 없는 부상자였다.
미군에게도 큰 희생을 안겼다. 약 7천명 전사, 2만여명 부상.
이 때, 미군 측엔 훈장이 27개 수여 되었고, 이것은 2차 대전 중 수여 된 전체 미군 훈장의 25%였다.
그만큼 신고만난(辛苦萬難)의 처절한 전투였다.
당시의 종군기자이던 戰史家 로버트 샤로트는 [지옥의 교두보]라고 표현했을 정도였다.
이런 배경에서 이 영화는 시작 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실화다.
개인적으로 나는 전쟁 스토리를 즐긴다.
나도 호모 사피엔스라서 그런지, 아니면 [ ♂ ] <---이 거라서 그런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2차 대전에서도 태평양 쪽 전쟁 중에, 특히 일본군의 싱가폴 함락 장면과 더불어 바로 이 이오지마 전투 장면을 읽은 것은 오래 전이었음에도 내가 직접 겪은 것 처럼 생생하다. 어떤 매력적인 소설보다도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유황도 전투에 대한 영화(그 것도 실화 영화)가 나왔다니.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내 눈이 얼마나 튀어나왔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하지만 전장의 포성 곁으로 빗기는 병사의 무겁도록 우수어린 장면을 기대하며 최대한 감동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를 이 영화는 마음 껏 비웃는다. 이 영화는 그런 전쟁류와는 조금 다르다.
전투가 한창 진행 되던 무렵, 유황도 스리바치山을 점령한 미군은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다. 이 때 AP통신의 종군기자인 조 로젠탈이 이 역사적인 장면을 찍어 본국에 타전한다. 이렇게 해서 그 유명한 [이오지마의 성조기] 사진이 탄생된다.
이 사진은 신문 1면 톱에 게재 되자마자 당장 영웅을 목말라하던 미국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부풀린다.
그 호재를 정치권에서 그냥 놔둘리 없는 것, 정부는 당장 국기 게양 병사들을 불러들인다.
국기 게양 직후에 전사한 세명을 뺀 나머지는 전투 중 갑작스레 귀국한다.
해군 위생병 존 닥 브래들리(라이언 필립 分)와 인디언 출신 해병 아이라 헤이즈(아담 비치 分), 통신병 레니 개그논(제시 브래포드 分)이 그들이다.
정부는 그들을 영웅으로 분장시켜 열광하는 국민들의 무대에 세우지만, 갑자기 광대가 된 느낌인 세 병사는 괴로워 한다.
그들의 기억에 진정한 영웅은 자신들이 아니라 무수히 죽어간 동료들이었기 때문이다.
더우기 인디언 출신 아이라는 환호하는 대중을 떠나 으슥한 술집에 들렀지만 어이없게도 쫓겨난다.
"인디언에겐 술 안 팔아."
그는 갑작스레 영웅으로 간택 되어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정체성과 조국이라는 낯선 얼굴 앞에 방황 한다.
물론 여느 전쟁 영화처럼 여기서도 엄청난 폭격과 잔인한 살생, 그리고 포연 흐르는 적막에서의 비애 젖은 한숨은 있다.
하지만 길고 긴 이 영화에서는 전쟁터의 로망이 없다. 사실 그 게 전쟁 영화의 생명인 건데.
거기에 자주 반복 되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기법도 산만하다.
이야기 내내 영웅인 사람이 스스로 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데서 오는 묘한 의식의 충돌이 자꾸만 여운을 남길 뿐이다.
그런데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느릿느릿 감동이 치밀어 올라 닭장에 갔던 꼬마처럼 눈물을 흘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질 지경이다.
전쟁 이면의 숨겨진 분노를 냉정하게 쳐다보려는 감독의 눈빛이 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이 늙은 감독은 아버지의 진실을 말하고자 했던 원작자 제임스 브래들리의 마음과 교통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세 영웅 중 하나인 존 닥 브래들리의 아들이 아버지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어쨌든 미국인들이 만든 전쟁 이야기 치고는 굉장히 겸손하다.
자랑스러운 조국, 또는 성조기여 영원하라 따위의 낯 간지러움도 없다.
이런 것을 일컬어 사람들은 "성찰" 이라고 말하는가 보다.
사실 이 영화는 쌍동이라고 한다.
당시 일본군 지휘관인 쿠리바야시의 인간성에 매료된 영화제작진이 일본군의 시각으로 또 하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또 다른 하나인 [유황도에서 온 편지 硫黃島からの手紙,]는 아직 개봉이 결정 되지 않았다.
왠지 그 영화 또한 무언가 나와줄 것 같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