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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광환 Jul 11. 2022

구두장인의 하루

구두는 기하학의 총합체



어두운 창 아래 밝은 빛이 조금씩 물들더니 이내 새 소리 시끄럽다. 뒷동산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아침을 깨우는 그 소리는 동틀 녘이면 어김없이 내집을 휘젓는다.

일어나 옥상에 오른다. 새들은 더욱 요란하다.

그 조그만 생명들의 아침인사를 차마 찌푸린 얼굴로 맞을 수 없어 그냥 웃어준다.

얘들아 안녕?

그러고는 내려와 출근을 서두른다. 아직도 태양이 보이지 않는 부연 새벽이다.


구두장인들은 대체로 이른 아침에 출근한다. 속설에 의하면 100년도 더 된 전통이라고 했다. 그 말을 의심하는 구두장인은 없다. 지금도 그럴 뿐만 아니라, 도제시절부터 그렇게 해왔으니까.

거기엔 이유가 있다.

구두장인은 늘 새롭고도 창의적인 세계를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그것은 경력이 어찌 됐든 구두장인은 평생 자신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저 오늘 또 다른 깨우침의 하루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작업장을 향한다.  


2,500년 전 노자도 말했다.

知者不博, 博者不知

매사에 아는 체 하는 자는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며, 진정으로 아는 자는 자신이 아는 줄도 모른다.

이 말은 자신의 앎의 깊이에 대해 늘 자중하며 경계하라는 의미다.

구두 장인들은 언제부턴가 그 말뜻을 알아챈 것 같다.




구두장인은 늘 새롭고도 창의적인 세계를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모름지기 구두는 기하학의 총합체이다.

사물의 형성과정과 자연의 다채로움 가운데서 어떤 영감을 얻었을 때, 장인은 그 영감의 원천을 구두 디자인에서 찾는다.

그들은 그 상상 속의 디자인을 평면에서 본(혹은 패턴)으로 나타내는데, 이것은 가죽을 정확하게 재단하는 설계도가 되고, 작업이 끝났을 때 그 평면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하학적 도형으로 변환 된다.

유클리드 기하학인 ‘원론’엔 기하학에서 필요로 하는 다섯 가지 공리와 23가지 정의가 나오는 바, 그 중 13번과 14번의 정의는 이렇다.

13. 경계는 모든 것의 끝이다.

14. 도형은 경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구두장인은 이 부분을 무의식 속에서도 동물적 감각으로 살려내는 사람들이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은 ‘세상의 근원이 수다.’ 라고 주장하면서 ‘신은 수학적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후손인 요즘 수학자들도 신이 창조한 세상의 숨은 진리를 찾아내는 사람들이며, 최근 한국인이 처음으로 필즈상을 받았다고 하여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허준이라는 수학자도 그 진리 중 몇 개의 가설을 증명해 보여서 인정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구두장인은 수학자가 아니지만 그들 역시 세상의 온갖 비밀과 그 원리를 작고 단아하며 빨려 들어갈 듯한 다채로운 채색의 한 도형에서 찾는다.

그것이 구두인 것이다.




신은 수학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은 피타고라스 학파처럼 구두장인은 세상의 온갖 비밀을 구두에서 찾는다




구두, 특히 수제화 장인은 두 가지로 분류한다.

갑피장인과 저부장인.

갑피장인은 멋과 환상의 조화 속에 그려진 디자인 본을 떠서 구두 본체를 만들고, 저부장인은 그걸로 견고한 골조와 함께 목형에 싼 뒤 바닥에 창과 굽을 붙여 구두를 완성시킨다.

나는 도제시절 스승으로부터 여자구두 갑피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기술을 사사했다.

모든 제자들이 그렇듯, 젊을 땐 신이 감춰 놓은 미세한 씨앗들을 찾아 내 스승의 벽을 넘고자 몸을 혹사시켰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 않다. 내 손을 통해 자연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정원사가 하느님 앞에 겸손한 얼굴로 정원수를 다듬듯, 나 역시 신의 섭리에 순응하는 자연을 그리고 싶다.

구두를 통하여.


오늘 내가 만들 구두 주문서를 훑어본다.

늘 그렇지만 여자들이 주문하는 구두는 겨울엔 부츠 일색이고 여름엔 샌들이 많다.

여자들에게 구두는 그저 신발이 아니라 자신만의 ‘유리구두’라는 걸 오래 전 스승은 일깨워준 바 있다. 구두는 그들의 상상력이고, 꿈이면서, 자신과 일체 된 환상의 앙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충 만들 수 없다. 그건 하늘이 준 기회를 감사하지 않는 행위만큼 겸손치 못한 거니까.




여자에게 구두는 상상력이고, 꿈이면서, 자신과 일체 된 환상의 앙금이다




주문서 하나가 눈을 사로잡는다. 여름에 걸맞지 않는 앵클부츠 주문서다.

흰 가죽.

테두리에 금피 바이어스를 덧 대고 하얀 공단 리본에 보라색 크리스털 장식을 얹고는 거기에 여덟 줄 금박 끈을 묶는 디자인.

누구든 웬만해서 신어내기 어려운 디자인이다. 이 디자인의 속성은 삶 속에 감춰진 잔잔한 뉘앙스가 아니라 실제로 꿈속에 빠져 드는 행복의 파안대소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복을 이토록 대담하게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과연 누굴까.

주문서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눈이 커진다.

주문서 고객 특징 란에 매장 직원은 이렇게 적어 놓았다.

‘고객님께서 결혼식에 신을 웨딩화입니다. 특별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미소가 떠오른다. 주위가 환하게 빛난다. 주문서 자체가 타오르는 불꽃같다는 착각이 일 정도다.

준비된 마음을 각인시키듯, 소매를 걷어 올린다.


덩치 큰 생선인 참치 회의 환상적인 부분처럼 동물가죽도 배 쪽의 윤기는 특별하다. 그 부분을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들여다본다.

빛깔에 생기를 잃지는 않았는지. 혹시 미세한 흠집은 없는지. 다행히 싱싱한 광채가 매끈한 최상품 가죽이다. 그 부분을 조심스럽게 재단할 때 안개 속 뽀얀 웃음이 보이는 듯하다.

수십 년 손때에 길들여진 연장이 늙은 기마병의 애마처럼 장인 손아귀에서 순순히 움직인다. 손길은 더욱 정교해진다.

깎고, 접고, 덧붙이고, 박음질하는 사이 이마에 구슬땀이 맺힌다. 장인의 무아지경은 정열과 순수를 동반한다.

2차원 깨끗한 가죽은 금피 바이어스 스카프를 두른 채 조금씩, 아주 조금씩 3차원 피날레 속으로 들어선다. 하얀 공단 리본이 꿈처럼 하늘거리고 보라색 크리스털 장식이 위엄을 갖춰 기다리는 그 세계로.

제작 된 갑피를 목형 위에 얹어 놓고 잠시 쳐다본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다.




장인의 무아지경은 정열과 순수를 동반한다



다음날.

저부장인에게 건네받은 완성된 구두가 앞에 놓인다. 흡사 성스러운 점안식 의식처럼 금박 끈을 끼워 가장 아름다운 모양으로 묶으려 애쓴 뒤, 흠 없이 순결한 그것을 상자에 담는다.

장인의 정성과 노고를 몰라준다 해도 상관없다. 다만 길고 긴 행복의 관문에서 만족하게 신어지면 그 뿐이다.

장인은 축복의 마음을 함께 담은 그 상자를 결국 떠나보낸다.


1950년 9월 14일 밤, 서해바다 파도를 가르며 북상하는 상륙함선들의 기함 마운트 매킨리 호에서 맥아더 사령관은 극심한 중압감에 휩싸였다. 성공확률이 오천 대 일이라며 워싱턴 대부분의 지도부가 반대한 인천상륙작전을 혼자만의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월미도가 가까워진 다음 날 새벽, 사령관은 참모인 휘트니 장군과 함께 갑판에 올라 어두운 하늘을 향해 말했다.

‘최후 심판의 날에 내 영혼이 무서운 심판을 받으리라.’

가혹한 전쟁터의 수장으로서 수많은 생명들의 운명을 관장해야만 했던 그의 초조한 일면이 엿보인다.


그런 기록들을 읽을 때, 사람들이 상상하는 꿈결의 불빛을 꽃피우느라 땀 흘린 나날들이 인생의 뒤에 차곡차곡 쌓인 구두장인은 상대적 안도감을 갖게 된다.

생명들의 포근한 감성 속에 우러나는 충만한 마음으로, 몽환 속 전설에 휩싸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영혼을 빗질하는 직업.

최후 심판의 날, 신 앞에 조금은 할 말이 있지 않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변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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