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 뒤 오리나무와 측백나무 숲 가운데, 시무룩하게 서 있는 키 작은 호두나무는 늘 연민의 색채를 드리우고 있지만, 오늘 아침 산책길에 그는 인사도 잊은 채 지나쳐버렸다. 나무 사이로 더그 호수 쪽을 향한 그의 눈동자는 달무리처럼 공허했다.
노작가는 집을 나설 때 아내가 건넨 가을 숲 스산한 바람을 막아줄 외투까지 마다했다. 아이린에겐 거의 평생을 함께한 남편이 다정한 미소도 없이 현관을 나서는 모습을 처음 보는 날이기도 했다.
지난 저녁 식탁에서도 노작가는 식사 시중을 드는 아내에게 의례적인 “고맙소.”라는 인사 외에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다만 식사를 마치고 일어선 노작가는 설거지하는 아내를 향해 “아이린, 당신이 내 아내여서 감사한다고 말했던가?”라고 말해서 아내를 웃음 짓게 했다.
아이린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 돌아서 다가오는 남편을 끌어안고는 “오, 가엾은 브리니, 당신은 그 말을 천 번도 더 했어요.”라며 볼에 키스했고, 남편은 아내의 허리를 감은 팔에 잠깐 힘을 주고는 서재로 들어갔다.
주위를 포근하게 감싸는 남편의 음성은 아이린을 미소 짓게 했어도 돌아선 그의 등 뒤에 어두운 잔영이 깔린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녀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언제나 양지바른 햇볕처럼 따뜻한 눈길을 잃지 않던 남편이었지만, 오늘 남편의 눈동자는 어두운 동굴처럼 생명이 없어 보였다.
당신이 내 아내여서 감사한다고 말했던가? 남편의 눈동자는 생명이 없어 보였다
맑고 깊은 꽃이라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60년 전인 25살의 브라이언 배리는 머릿속을 온통 뒤집어 생각의 점막들을 들추어야 했다.
맑고 깊은 꽃.
꽃처럼 맑고 정숙한.
정숙한 꽃의 맑은 깊이.
꽃의 형상화를 위해 어째서 그토록 어렵고 오묘한 뜻을 이름에 부여했는지 브라이언은 당시 이해하지를 못했다. 그냥 높고 고귀하다는 의미라고 해서 아일랜드인들이 선호하는 브라이언이라는 이름처럼 분명하고 쉬운 의미가 좋지 않은가.
“그래도 흔한 이름이에요, 아주 흔한.”
60년 전, 한국인 영숙은 그렇게 말했다.
“그냥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어렵지 않고, 확실한 표현으로.”
브라이언의 어설픈 한국어 발음에 영숙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런 이름도 있어요. 미화라고 하거든요. 미화. 아름다운 꽃이라는 의미. 우리나라엔 그 이름도 참 흔하죠.”
오묘한 의미의 이름을 가져선지 갓 부임한 초등학교 교사라는 스물한 살 영숙의 눈은 맑고 깊었다.
어제 오후‘Yeongsuk, Korea’라는 메일 제목을 봤을 때만 해도 노작가는 그것이 뜻하는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야 했다. 결국 비 개인 아침과 닮았던 그 얼굴이 의식 속으로 밀고 들어왔지만, 선뜻 그 메일을 열어보지는 못했다. 빛바랜 줄 알았던 오래전 감정이 어느새 살아나 의식이 혼란스러웠다. 그 동양 여인의 우수에 찬 검은 눈빛. 마지막으로 보았던 눈물 고인 그 눈과 60년 만의 해후는 늙은 브라이언 배리의 가슴을 짓눌렀다.
2
시골 성당의 브라이언 숙소는 은퇴해 자기 나라로 돌아간 프랑스인 신부가 쓰던 방이라고 했다. 오래된 성당 건물의 작고 깔끔한 그 방에 짐을 풀고 나섰을 때, 예배실 한쪽에 청아한 풍금 소리에 맞춰 부르는 하늘거리는 노랫소리가 브라이언의 발길을 붙들었다.
Oh, Danny boy,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
From glen to glen, and down the mountainside
The summer's gone, and all the roses falling
It's you, it's you must go, and I must bide.....
브라이언은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이 먼 동양 나라에서 자기 나라 민요를 듣게 되다니.
웃음으로 다가오는 브라이언을 보고 영숙은 노래를 그치며 쳐다봤다.
얼굴이 연홍빛으로 물든 영숙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지만, 브라이언은 적절한 한국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Sorry”라고 말했다. 그러자 영숙은 이내 밝은 표정으로 바뀌면서 “it's okay”라고 하더니 “우리말을 하실 줄 안다고 들었어요.”라고 한국어로 말했다.
그제야 브라이언은 “그래요. 한국어를 배웠죠. 실례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어요.”라면서 영숙에게 손을 내밀었다.
“브라이언이에요. 브라이언 배리.”
영숙은 두 손으로 브라이언의 손을 살짝 잡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저는 김영숙이라고 합니다. 주임 신부님께 말씀을 들었어요. 아일랜드에서 오셨다고.”
브라이언은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의 책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수록된 조선 여인의 청초한 모습이 떠올라 영숙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자 영숙은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같은 노래를 한국어 가사로 다시 노래했다.
아, 목동들 피리 소리
산골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 가고 꽃은 지니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주임신부님께 들었어요. 아일랜드에서 오셨다고
3
노작가의 손이 떨리면서 마침내 메일이 열렸을 때,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시골 성당의 마리아상 앞에 영숙과 함께 찍은 흑백사진이었다. 거기 후줄근하리만치 햇볕에 그을린 젊은 서양 남자와 맑은 동양 여자의 미소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블린 대학 시절 동양학 교수에게 건네받았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의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그 나라.
그 신부는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여행하며 수많은 사진과 영상자료에 더해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여행 기록까지 남겼다.
그 책 속엔 햇볕에 그을린 베버 신부와 조선인들의 사진이 수두룩했다.
브라이언 배리는 그 나라의 국민들이 나라가 피폐해져 가는 그 순간까지도 강렬한 태양에 시달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일랜드처럼 그 불운했던 나라의 시골 지방을 겪어보고 싶은 욕망이 솟았다.
하지만 직접 가 본 그 나라의 태양은 그토록 무자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람들의 순수한 친절만큼이나 온순했다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더불어 태양을 품은 하늘빛이 얼마나 아름다운 파란색이었던가.
‘제가 아직 이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당신에 대한 기억이 제 가슴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었어요. 길고 길었던 제 인생에서 그만큼 당신은 살아있는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이 사진 속에서 나날이 말을 걸어오던 당신은 제 삶을 부추겨 어떤 희망과 함께 이제 생명이 스러져가게 된 이 순간까지 오게 했군요.’
브라이언 배리는 숨이 차올랐다.
영숙은 예배실에서 처음 만나던 그날 이렇게 물었다.
“당신도 얼마 전 프랑스로 돌아가신 아르스 신부님처럼 오래도록 여기 계실건가요?”
그때 브라이언은 영숙의 까만 눈동자 속에 어떤 꿈을 본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것은 아주 환한 불길처럼 춤추는 환영이었다.
“저는 신부가 아닌 것처럼 선교를 위해 온 게 아니에요. 그저 한국이라는 이 나라를 경험하고, 느끼고, 공부하기 위해 온 겁니다. 저와 같은 이 나라 젊은이들의 삶에도 관심이 많죠.”
그때 영숙이 풍금 의자에서 일어나 원피스 자락을 두 손으로 모아 쥐면서 말했다.
“그럼 제게도 관심을 쏟아주시겠네요. 더구나 저는 이 나라에 대해 가르쳐 드릴 게 많거든요.”
그러면서 영숙은 활짝 웃었다.
브라이언 배리는 그때, 동양의 그 작은 나라에 끌리게 된 자신 내부의 어떤 속삭임이 그토록 강렬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처음 알았다. 고향인 마운트 섀넌에서 가까운 베네딕도회의 글렌스탈 수도원장도 그 나라를 향한 브라이언의 의지를 한 눈에 알아보지 않았던가. 마치 베버 신부의 영혼에 그 나라 숨결이 스며들었던 것처럼.
사실 수도원장이 소개장을 써줄 때만 해도 브라이언 배리는 베버 신부가 남긴 책과 사진 외엔 그 나라에 대한 어떤 자료도 볼 수 없었다. 아일랜드처럼 작고 초라하며 꿈결처럼 나부끼는 미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 동양 나라에 대한 더 이상의 책이나 문서 같은 것은 더블린대학교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그 나라의 시골 역에 내려 그 작은 성당을 찾아가는 길에 눈에 띤 풍경은 상상만 하던 적막한 모습이 아니었다. 참혹한 전쟁이 끝난 지 겨우 10년이 지난 그 나라는, 이제 비극의 상처 속에서도 산 밑의 마을마다 버섯이 돋아난 모양의 초가지붕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눈물겹도록 충만한 삶의 모습이었다. 총탄에 찢긴 트러스 철교 밑 도도히 흐르는 맑고 청아한 강물에서 벌거벗은 아이들의 물놀이를 바라보던 그때, 브라이언 배리는 소박한 영혼의 자유와 담백한 풍요를 동시에 느끼며 기도했다.
내 조국 아일랜드의 미래처럼 이 나라의 미래에도 축복 있기를.
영숙은 처음 보는 브라이언을 그다지 낯설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양에서 온 브라이언을 프랑스인 신부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처음부터 친숙하게 대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르스 신부님은 영어와 불어를 가르쳐주셨어요. 아주 다정한 분이셨죠. 그분이 프랑스로 떠나시고 아주 슬펐는데, 그런데 당신은 아르스 신부님과 많이 닮았네요. 정말 신기해요.”
그러면서 영숙은 다가와 브라이언의 코를 손가락으로 톡 찍어보기까지 했다. 흐르는 물빛 표정으로.
"당신은 아르스 신부님을 닮았네요" 영숙은 브라이언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주임신부는 브라이언에게 그동안 아르스 신부가 가르치던 성당 학교의 청소년반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브라이언은 승낙했지만, 알고 보니 시골 성당이라도 아이들이 많았다.
얼마 있자 영숙이 가르치던 어린이반과 함께 참나무와 밤나무, 그리고 소나무 흐드러진 성당 뒷산으로 소풍을 갔다.
초록 물결이 온통 산야를 뒤덮은 그 위로 파란 하늘이 투명한 한국의 경치를 바라보며 브라이언은 저절로 감탄을 연발했다.
아르스 신부와 함께 오래도록 지내던 아이들 역시 브라이언을 격의 없이 대했다. 전혀 모르던 그들 게임 방법을 브라이언도 금방 익숙해질 정도였다.
그렇더라도 영숙은 낯선 한국 생활에서 혹시 불편할지 몰라 배려의 손길을 항상 준비했지만, 오히려 브라이언은 오래도록 살아왔던 마을처럼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 나라 푸르른 하늘과 사방이 초록으로 빛나는 자연처럼 천진스러운 미소가 배어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브라이언은 베버 신부가 어째서 이 나라에 애정을 갖게 되었는지 50년 전의 그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영숙은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을 몰고 성당으로 와서 풍금 치며 노래하고 게임을 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성당 앞 졸음에 잠겼던 들판까지 활기가 넘쳐났다. 브라이언은 어린 시절, 아일랜드 고향 마을에서 나귀 달구지를 타고 달리던 시원함이 몰려오는 착각이 들곤 했다.
4
‘그렇지만 저는 제 조바심과는 달리 지금도 당신이 떠나가던 그 모습이 눈에 잡힐 듯 선명합니다. 기차를 타고 떠나던 당신은 그때 미소를 지었어요. 정말이지 잊지 못할 아름다운 미소였지요. 제 눈엔 그 미소 속에 흐르는 당신의 눈물이 보였습니다. 그 눈물은 당신 가슴 속에 흐르고 있었지요. 저는 그때 고죽과 홍랑의 사랑을 당신에게 말해준 걸 후회했어요. 그들의 가슴 아픈 사랑을 우리는 차라리 몰랐으면 했던 아쉬움이 컸지요. 왠지 그 이야기가 우리를 아프게 한 건 아닌가, 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는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거든요.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어요. 세상에 가슴 아픈 사연이 많다 해도 이젠 제가 그중 하나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 이후로도 지속적인 숨결을 제게 보내주셨잖아요. 당신의 책을 통해서.’
불어오는 바람마다 여리고 가지런히 머리를 숙이던 소나무 동산에 앉아 반나절 동안 들었던 오래전 그 나라 가슴 시린 이야기를 노작가는 떠올렸다.
조선 초기 시인이었던 관리와 관기 시인이었다는 여인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안에 담긴 정갈한 삶의 본질과 당시 사회를 지배했던 유교적 색채에 대해 설명하려 애쓰던 영숙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영숙은 그 나라 옛사람들이 나눈 운치 있는 사랑과 높이 승화된 그 격조를 어떻게 하면 브라이언의 의식 속으로 온전하게 옮길 수 있을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물론 서양 사람 의식과 동양인의 의식 속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해의 괴리가 있을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영숙이 말하는 두 주인공의 불행한 사랑을 브라이언이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브라이언에겐 사랑의 행위를 그윽한 정취로 끌어 올리고 이어지는 불행마저 사랑의 본질로 이해하며 감수하는 동양적 사고에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로웠다.
“그렇게 고죽 선생이 죽자 홍랑은 그의 무덤 앞에서 3년 상을 치렀어요. 그건 우리나라 전통이긴 하지만, 원래 여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남자들만 하는 일이죠. 왜냐하면 여자 혼자 숲속의 무덤 앞에 기거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니까요. 그랬어도 홍랑은 자기 얼굴에 상처를 내고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면서까지 뭇 남자들의 접근을 쫓으면서 3년을 견뎠대요. 홍랑은 그 후 고죽 최경창의 본가에 그동안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작품들을 넘겨주고 다시 무덤 앞에 돌아와 자결했다고 해요. 이후 고죽 선생의 가족들은 그의 무덤 곁에 홍랑의 시신을 묻어주었죠. 그렇게 죽어서라도 그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하게 된 거예요.”
산 버들 골라 꺾어 임께 보내오니,
주무시는 방 창문가에 심어두고 보소서.
행여 밤비에 새잎이라도 나거든
마치 저를 본 것처럼 여기소서.
영숙은 사회적 금기를 깬 사랑의 결과로 끝내 관리와 헤어질 때 홍랑이라는 여자가 지었다는 시를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어떻게든 설명하려 했지만, 고어(古語)의 벽과 독특한 동양적 운율에 막혀 끝내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폭풍우 빗발치는 가슴 속을 옷깃으로 여미면서까지 자신의 운명을 고개 숙이고 받아들이는 한 여인의 애절한 비가(悲歌)만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그날 소나무 동산에서 영숙과 함께했던 시간은 뜻하지 않게 마을에 소문이 퍼지면서 브라이언에겐 족쇄가 되어버렸다. 특히, 그녀의 오빠는 브라이언과 마주칠 때마다 노골적으로 노려보기 일쑤였다.
주임신부가 마을의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한국은 아직도 봉건사회나 마찬가지지요. 더구나 전쟁 후로 처녀를 둔 가족들은 서양 젊은 남자를 배타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해졌습니다. 그것은 전쟁이 낳은 또 하나의 슬픔이지요.”
브라이언은 부당하게 지적받은 것에 항의하기보다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영숙에게 미칠 영향이 염려되어 신부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은 김영숙 선생님을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그분은 학교 선생님이기도 하잖아요.”
아무리 여성이라도 성인이라면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서양식 사고방식도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통념이 아니라는 걸 브라이언도 인정했다. 하지만 이젠 이 동양도 세상의 모든 문명을 공유하는 나라가 아닌가. 그렇다고 전쟁 중 외국군대에 겪은 여성들의 사회적 비극과 거기에 따른 방어적 물결을 브라이언은 거스를 수 없어 차마 더 이상 따지고 들 수도 없었다.
브라이언은 이후 영숙과 둘만의 시간을 어떻게든 피하려 노력했지만, 영숙은 그렇지 않았다. 마을 논에서 모를 내던 날 영숙은 브라이언에게 물이 넘실대는 논에서 걷는 법이나 모 심는 요령 등을 가르치는 데 남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영숙은 다리에 거머리가 붙었을 때도 비명을 지르며 브라이언에게 달려와 떼어내 주기를 요청했다. 영숙의 아버지도 그곳에 있었지만, 큰기침을 할 뿐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늦은 밤, 방에서 책을 읽을 때 영숙은 고구마와 옥수수를 스스럼없이 가져왔으며, 직접 손으로 뜬 레이스로 책상을 장식해주기도 했다. 영숙은 브라이언의 책에 관심을 보이며 어떤 때엔 빌려 갔다가 돌려주기도 했다. 영숙의 표정은 언제나 그 나라의 산들바람처럼 맑았다. 오히려 브라이언이 마을의 소문에 대해 걱정해야 할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영숙의 행동에 변화가 오는 건 아니었다.
당신은 제게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5
‘이제야 고백하지만 당신이 종탑에 올랐다가 실신하던 그날, 저는 천주께 서원을 했습니다. 당신을 제게 주시지 않는다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이지요. 어쩌면 Judges(성경 사사기)에 나오는 입다의 서원처럼 어리석은 서원을 했다고 당신은 나무랄지 모르겠지만, 제겐 그렇게 어리석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잠들어 있는 당신의 부드러운 얼굴 감촉을 손으로 느끼면서, 그리고 당신의 사랑스러운 그 입술을 제 입술로 느끼면서, 어찌 그렇게 서원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더구나 실신하시면서 소변까지 지린 나약한 기사님을 두고 말이지요. 저는 당신이 떠난 이후 그 서원을 지키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보육원 교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서관의 기부 받은 책더미에서 당신 책을 발견했어요. 당신이 작가로 활동하시는 걸 처음 알게 된 그날,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당신이 제게 다시 돌아온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브라이언이 예배를 알리기 위해 성당의 종을 치고 있을 때, 종 추에 걸린 밧줄이 낡아 끊어져 버린 일이 있었다. 그날 사람을 불러 종의 밧줄을 교체하려는 주임신부에게 브라이언이 나섰다.
“이 정도 문제는 제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신부가 말렸지만, 종탑에 오를 사다리를 가져오는 브라이언에게 영숙도 팔을 붙들고 애원했다.
“안 돼요. 저긴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아일랜드의 진짜 기사라는 걸 보여드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잖아요.”
브라이언이 웃으면서 밧줄과 도르래를 허리에 묶고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러나 종탑의 높이는 생각보다 두려운 높이였다. 브라이언이 그곳으로 오르기 시작할 때만 해도 소슬바람에 시원하다는 느낌이었지만 막상 올라오고 보니 그 높이가 으스스할 정도였다.
더구나 작게만 보였던 종이 막상 가까이 보니 주눅이 들 만큼 거대했다.
널빤지를 든 주임신부와 몇몇 사람이 불안한 눈길로 쳐다보는 한쪽에 영숙도 가슴에 양손을 얹고는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브라이언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브라이언은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도르래를 고정하고 거기 건 밧줄을 밑으로 던지며 최대한 늠름하게 외쳤다.
“나무판자를 올려주세요!”
아래쪽에서 밧줄에 묶인 널빤지가 올라오자, 브라이언은 그것을 종 밑 철탑 난간에 받쳐놓고 그 위로 올라섰다.
밑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순간 떨리는 다리로 널빤지 위를 걸어 종 밑으로 가는 것은 어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밑에서 영숙이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브라이언은 용기를 짜냈다.
허공에 걸린 널빤지가 가운데로 갈수록 휘청거리면서 가뜩이나 떨리는 다리를 불안케 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을 사이도 없이 브라이언은 가까스로 종 밑으로 들어가 종 추에 밧줄을 걸어 고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브라이언이 널빤지 위를 걸어서 철탑 가장자리로 가려는데, 휘청거리던 널빤지가 기어이 부러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놀라 소리를 지르는 사이로 영숙의 비명이 종탑을 울려댔다.
순식간에 몸이 허공에 떠버린 브라이언은 심장이 멎을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종에서 늘여진 밧줄을 움켜쥐었다.
이어서 고막을 찢을 듯한 뎅그렁 소리와 함께 팽팽한 밧줄이 얼굴을 할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건 그때였다.
그토록 떨리던 몸이 움켜쥔 밧줄에 힘이 들어가면서 멈춘 것이다.
브라이언은 그렇게 천천히 밧줄을 타고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바닥에 다리가 닿자마자 스르르 밧줄을 놓으면서 실신하고 말았다.
그 순간 브라이언은 뜻하지 않게 오줌까지 지린 것이다.
깨어나 보니 눈물에 젖은 영숙이 자기 손을 잡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촛불 켜진 성당 자기 방이었다. 순간, 영숙은 브라이언의 가슴으로 무너져내렸고, 그 밤은 브라이언과 영숙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은 결국 브라이언이 영숙의 가족에게 더더욱 씻지 못할 죄인이 된 날이기도 했다.
당신이 종탑에 올랐다가 실신하던 그날, 저는 천주께 서원을 했습니다
노작가는 떨리는 손을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오, 세상에.’
그렇더라도 신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입다와 같은 서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브라이언 배리는 그만큼 마음속 절박감 속에서 신께 매달렸을 영숙의 마음이 수십 년의 풍상을 안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끝내 자기 가슴 속으로 내려앉는 것을 바라보았다.
풍선처럼 명랑하던 그 하얀 영혼 어느 깊이에서 그토록 애달픈 결기가 들끓고 있었는지 브라이언도 의식하지 못했다.
철저한 예의와 활기찬 웃음 속에서도 어쩌면 자신만의 은밀한 마음을 숨겼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그렇더라도 영숙의 말처럼 오래전 슬픔의 검은 연기 속에 사랑의 결말을 띄워 보낸 두 주인공 이야기는 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영숙이 바라본 먼 눈길, 그 까만 눈동자 속에서 자신의 타오르는 가슴을 브라이언은 처음 보지 않았던가.
브라이언이 그 마을을 떠나오기 전날 밤, 영숙이 그의 방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 사이에 세상의 가장 험한 늪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사회 속에서 가능할 수 있는 어떤 길로도 함께할 수 없음을 눈물로 인정해야 했다. 그렇기에 그날 밤 영숙의 방문은 미련과 회한에 짓무른 그 나라 사회 풍조의 현실을 뚫고 그 어떤 희망의 불꽃이라도 당겨보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브라이언은 마을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며, 결국 그 나라를 떠나게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브라이언은 영숙의 눈에 흐르는 절망의 눈물을 막을 수 없는 초췌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6
이후 먼 길을 돌아 첫 작품을 출판할 때, 브라이언 배리는 그 책의 헌정사를 이렇게 썼다.
‘동양의 그 사람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웨일스의 청교도 처녀에 대한 비운의 사랑을 그린 그 작품은 브라이언 배리의 먼 곳을 향한 갈망으로 채워진 소설이었다.
브라이언 배리는 그 책을 통해 심연에 끓어오르는 한 아름의 슬픔을 신께 고했지만, 이후 자신이 바라던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야 신께서 응답을 주시다니.....’
노작가는 영혼이 무너져 내리는 애끊는 고통 속에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당신을 원망하겠어요. 사람이 일평생 산다는 건 외로운 먼 길을 가는 여행이라고 말하지만, 결코 제 인생은 당신 책에서 표현한 헛간을 서성이는 쓸쓸한 바람 같은 인생이 아니었어요. 당신을 만난 이후, 제 인생을 넘치도록 채워준 당신이 있었기에 저는 충만한 일생이었습니다. 먼 곳에 계신 당신에게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신께서 응답을 주시다니
7
마주 앉은 탁자 위 휑한 적막을 멍하니 바라보는 노작가에게 일어선 아내가 다가와 어깨를 감싸 안고는 이마에 입술을 가져왔다.
“가엾은 양반. 이 사랑스러운 가슴 속에 그런 슬픔이 들어있었군요.”
그동안 독차지했던 이 다정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늘 의례적이었지만, 그 마음이 결코 가벼워서는 안 된다는 걸 먼 동양 여자는 눈물로 전해 온 것일까.
포근한 아내의 팔에 노작가가 머리를 기댈 때, 아이린은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말했다.
“제게 당신은 언제나 곁에 있는 분이지만, 누군가에겐 평생을 그리워했던 사람이군요. 그러고 보니 저는 운이 좋은 여자였어요.”
기어이 노작가의 눈물이 아내의 팔로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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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 호수가 붉게 물들었다.
아내가 건네준 외투를 걸치고 저녁 산책길에 나선 브라이언 배리는 측백나무와 오리나무 우거진 숲을 지나 천천히 걸어갔다. 숲엔 브라이언 배리의 발걸음처럼 느릿느릿 어둠이 내렸다. 그 희미한 숲 저만치 키 작은 호두나무가 풀죽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오리나무 가지를 헤치고 다가온 바람을 맞으며 브라이언 배리는 호두나무로 다가가 가냘픈 손을 뻗었다.
“아침엔 인사도 없이 그냥 지나쳤구나.”
노작가가 가지를 쓰다듬을 때, 호두나무를 흔들어대던 저녁 바람이 숲을 지나 더그 호수 쪽으로 몰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