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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리 Oct 02. 2021

문과/이과생이 서로에게 책 한권씩을 추천한다면?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X[떨림과 울림(김상욱)]



공부란 ‘머리속에 지식을 쑤셔넣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의 해상도를 올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뉴스의 배경음악에 불과했던 닛케이 평균 지수가 의미를 지닌 숫자가 되거나

외국인 관광객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거나

단순한 가로수가 ‘개화 시기’를 맞이한 ‘배롱나무’가 되기도 한다.

이 해상도 업그레이드감’을 즐기는 사람은 강하다.  

-sns에서 발견하고 저장한 글을 일부 수정



 공부에 대하여 참 매력 있는 글을 만났다. 지식을 쑤셔넣는 행위가 아니라 인생의 ‘해상도를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라니! 생각해 보면 업그레이드된 해상도의 삶을 멋지게 살아내시는 분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는 것 같다. 공부를 통해 자신이 발견한 세상의 매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어한다는 것. 그런 분들 덕분에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조금은 해상도 높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번 글은 이 ‘해상도 업그레이드’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해보았다. 순수 이과 공대생이었던 친한 선배가 책장을 덮으며 ‘오, 이제 문과의 매력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아.’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과학 대신 시를 좋아하던 순수 문과였던 내가 최근 과학공부를 다시 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그런 것이었을까 떠올려본다.



그래서 오늘은 문과와 이과의 세상에서 삶의 해상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매력적인 두 권의 책을 나눠보고자 한다.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라는 부제와 드라마 제작으로도 유명한 책. 정재찬 교수님 <시를 잊은 그대에게>. / 그리고 ‘물리’의 매력을 대중에게 전하는데 힘쓰시며 ‘알쓸신잡’으로도 유명해지신 김상욱 교수님 <떨림과 울림>.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하는 삶 



(아래 시를 조용히 소리 내어 읽어보기)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는 다소 익숙한 풍경. 이를 시인은 갈대가 조용히 울고 있다고 표현한다. 조용히 흐느끼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갈대는 자신이 몸이 흔들리는지도 모른 채 나직이 운다. 그를 울게 하는 것은 거친 시련과 같은 바람이나, 저 높은 이상과 같은 달빛이 아니라 갈대 자신이다. 



책의 저자 정재찬이 포착하듯, '그는 몰랐다ㅡ' 는 말은 그는 '이제야 안다ㅡ' 는 것을 의미한다. 삶이란 비애라는 것을, 나를 흔드는 것은 바람도, 달빛도 아닌 갈대 자신임을. '제 조용한 울음' 때문에 그렇게도 흔들리던 갈대는 그제서야 자신의 슬픔을 직면한다. 이처럼 시인은 갈대의 떨림에서 삶이라는 비애를 읽어낸다. 모두가 한번씩 경험했을 그런 슬픔 말이다. 



'우주는 떨림이다.' 


<떨림과 울림>의 저자 김상욱은 이러한 떨림을 우주 전체로 확장한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시공간에서 진동하는 '빛'도 떨림이다. 주변의 공기가 진동하여 상대와 소통하는 '소리'도 떨림이다. 우리 눈에는 정지해 있는 듯한 이 건물과 물건들도 그 떨림이 미미할 뿐, 모두 진동하고 있다. 자기 존재의 슬픔으로 떨고 있는 갈대만으로도 쓸쓸했는데, 온 우주가 떨고 있다는 것은 자칫 회의주의나 비관주의로 이어질 정도로 삭막해보인다. 그때 저자는 이어서 말한다.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사진은 마음을 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는 심장을 울리고, 멋진 상대는 머릿속의 사이렌을 울린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떨림과 울림>, '프롤로그' 중에서)

 

이러한 '떨림과 울림'이라는 비유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저자 정재찬 교수가 설명하는 '공명'과도 맥을 같이 한다. 


“남이 울면 따라 우는 것이 공명이다. 

 남의 고통이 갖는 진동수에 

 내가 가까이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이 공명인 것이다. 

 슬퍼할 줄 알면 희망이 있다.” 



+ 공감도 능력이다. 공감은 공명에서 온다. 공명이란 과학적으로 말하면 어떤 물체의 진동에너지가 다른 물체에 흡수되어 그 물체가 진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원래 진동에너지의 진동수와 진동에너지를 받는 물체의 고유 진동수가 가까우면 더 큰 공명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공명이란 한자 뜻 그대로 남과 더불어 우는 일이다. 남이 울면 따라 우는 것이 공명이다. 남의 고통이 갖는 진동수에 내가 가까이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이 공명인 것이다. 마치 현악기처럼 말이다. 그 소리가 울려 퍼져 음악을 만들듯 우리 사회에도 아름다운 공명이 울려 퍼질 수 있다면 그때 분명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슬퍼할 줄 알면 희망이 있다. (P.92-93)



이 공명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하나의 시가 떠올랐다. 앞에서 소개한 <갈대>를 쓰신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의 노래>. 




가난한 사랑의 노래 

-신경림,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시인의 시는 가난으로 인한 설움과 분노로 끝이 난다. 

그러나 내가 처음 이 시를 만난 고등학생때 일기장에는 마지막 연이 나의 언어로 적혀 있다.


그럼에도 나의 이 가난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세상을 향한 내 울분과 분노 때문에

나의 노래가 멈추지 않도록 해주신 분들이 있다. 

가난한 나의 노래를 포기하지 않으신 사랑이 있다.


//

당시 열일곱의 나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자퇴를 고민중이었다. 

그런 나의 형편을 당신의 문제처럼 아파하셨던 은사님과 작은 개척교회 목사님이 계셨다. 

땀흘려 번 돈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던 기업들의 장학금이 있었다. 

'내가 너를 잊지 않는다.'는 성서의 한 문장이 생생하게 울리던 그 밤들을 또렷이 기억한다. 

나도 누군가의 떨림에 울림으로 응답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상성의 힘 (사랑에 빚진 단단한 일상)


그렇게 우리는 '떨림과 울림'속에서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시인은 일상성의 힘을 다음 시를 통해 소개한다.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황동규, 즐거운 편지)


-내 사랑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하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위대한 선언인가. 매일같이 변함없이 일어나서 사소해 보일 뿐,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굉장한 일이 또 있을까? 오늘 해가 지지 않으면, 오늘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큰일 아닌가? 그 엄청난 일이, 그것도 매일같이 벌어진다는 것은 실로 경이라고 해야 옳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시를 잊은 그대에게> p.111


더 특별하고 자극적이어야 '사랑'이라고 말하는 세상속에서, 사실 사랑은 일상 안에 있다는 당연해보이는 설명이 오히려 반전을 만든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의 사랑의 힘이 일상 안에 있음을 시를 통해 보여준다. 



우리 주변의 세상을 관찰하여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시'라면, 김상욱 저자는 우리를 지탱하는 일상을 가장 잘 표현한 시를 소개한다.




'F=ma'


저자는 이 공식이 우주를 기술하는 아름다운 시라고 말한다. '힘 = 질량 X 가속도'라고 가장 잘 알려진 이 공식은 힘이 물체의 가속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물체가 가속했다는 것은 외부의 힘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속도의 법칙으로 알려진 이 뉴턴 운동 2법칙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우리의 사소한 일상을 '힘'을 통해 기술한다.  



물리학자는 이 네 글자에서 우주의 모든 것을 읽는다. 불과 4글자로 이루어진 시이지만 이 시 속에는 우주가 결정론적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 장치 같은 것이라는 사실과,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아주 힘들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인간은 이 시를 연구하며 새로운 문명을 만들었고, 이제 발을 딛고 있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아가는 중이다. <김상욱의 과학공부, p.345>


위 공식은 미분으로 기술된다. (속도의 시간에 대한 미분 - 가속도'a') 이어 저자는 말한다. 우주의 법칙이 시간의 미분으로 쓰여 있다는 것은, 어느 한 순간 값을 알 때 그 다음 순간의 값을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그렇기에 우리는 이 사소하고 소중한 일상을 지탱하는 힘이 다른 순간들에도 기술될 것이라 생각한다. 시인의 표현처럼,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는 그런 순간들에도 말이다. 






중력, 전자기력과 같은 이 '힘'은 분명 존재함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 

우리의 오늘을 지탱하고 있음에도 너무나 쉽게 잊혀진다는 점에서 사소한 일상과도 비슷하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 

당신과 주고 받았던 떨림과 울림들 말이다. 


삶의 해상도를 높이자. 

사소한 것들에서도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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