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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리 Mar 13. 2021

머지않아 우리는 일본에게 또 먹힐지도 모릅니다 (상)

[료마가 간다(시바 료타로) X IB를 말한다(이혜정, 이범 외)]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IB는 일본 교육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흑선’입니다.



 “그간 일본 교육에 대한 개혁 요구가 적지 않게 있어 왔지만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IB가 도입되면서 개혁 방법에 대해 눈뜨게 되었습니다. IB는 일본 교육 대개혁의 방향과 방법에 대한 롤 모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IB가 일본 교육 대개혁의 전부는 아니지만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일본에서는 IB를 19세기에 개항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이라고 봅니다. 흑선이 오지 않았다면 일본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단시간 내에 개혁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IB는 현 일본 교육의 대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흑선입니다.”

-쓰보야 이쿠코, 일본 교육재생실행회의 위원(IB 일본대사)



 2013년 아베신조는 ‘교육회생’이라는 기치로 교육개혁을 준비한다. 주어진 답을 그저 빠르게 찾는 인재가 아니라, 시대에 필요한 창의력과 비판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커리큘럼을 200개 학교에 도입하고, 객관식 센터시험(수능)마저 2020년까지 폐지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이 교육개혁의 과정을 담당하는 핵심 관료가 지금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제도를 ‘흑선’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1853년 도쿄 만에 나타나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한 일본 열도를 떨게 만들었던 흑선,

어떻게 변해야 할지 상상해본 적도 없던 일본에게 앞으로의 방향을 일러주어 메이지 유신을 이끌어냈던 그 흑선 말이다.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가 대체 무엇인데?



 프랑스의 논술형 수능시험인 ‘바칼로레아’를 들어봤을 것이다. 대입 자격을 얻기 위해 학생들은 ‘예술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어떤 쓸모가 있는가?’, ‘문화의 다원성은 인류의 통합에 장애가 되는가?’(2019 기출) 등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 자신만의 논점을 개진하고 여기서 얻은 점수를 바탕으로 대학에 입학한다.   


 마찬가지로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도 대학입학자격시험제도이다. 그러나 특정 국가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IBO라는 비영리 국제기구에서 주관하는 ‘국제교육과정’이다. IB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 고등학교용 커리큘럼인 DP(Diploma Prograame, 학위 과정),

2) 중학교용 커리큘럼인 MYP(Middle School Years Programme).

3) 초등학교용 커리큘럼인 PYP(Primary Years Programme),


학위과정인 IB-DP 과정(우리나라 고2-3)을 수료하고, 마지막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게 되면 IB를 승인하는 전 세계 여러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옥스브릿지, 아이비리그 등 수준급 대학들을 비롯하여, 전 세계 1,100여 개의 대학에서 인정한다.)



 IB는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생겨난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만들어졌다. 1960년대 다양한 ‘국제기구’가 창립되면서 다른 국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동시에 이들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국제학교들이 개설되었다. 그렇게 국경을 넘나드는 아이들이 많아지자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간 후 치러야 할 대입시험에 대한 고민이 커졌고, 세계 각지의 교육 석학들이 모여 국제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공통 교육제도와 평가방법을 개발한 것이 바로 IB인 것이다.


 (IB의 핵심을 잘 표현한 만화도 있다.)




*IB-DP의 구성


 

 고등학교 과정인 IB-DP는 크게 1)선택 과목 6과목과(고급 수준 HL 3/ 표준 수준 SL 3), 2)필수 3과정으로 이루어진 9개의 영역을 2년 동안 수강한다. 6개의 교과는 7등급 절대평가제이며 과목별 최고점이 7점이다. 과목 점수 42점에, 필수과정(미이수시 전체 과정 수료가 불가) 3점을 더해 45점 만점의 과정인 셈이다.



1) 디플로마 프로그램의 과목 구성 (최대 7점씩 6과목)


그룹 1. (모국어) : 한국 문학, 한국어와 한국 문학

그룹 2. (외국어) :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그룹 3. (개인과 사회) : 역사, 지리, 경제, 심리학, 철학, 경영, 정치 등

그룹 4. (과학) : 화학, 생물, 물리, 컴퓨터, 환경, 보건 등

그룹 5. (수학) : 수학

그룹 6. (예술) : 미술, 연극, 음악, 댄스, 영화 등



2) 필수 과정 : (지식론 / 소논문 / 창의, 체험 봉사활동 : 각 1점씩 3점)


‘지식론’이란 우리가 배우는 지식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지식이라는 것은 어떻게 형성되고 그 지식을 나는 어떻게 믿게 되는지, 그런 지식을 왜 공부하는지, 공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등 우리가 무엇을 왜 공부하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메타 인지를 하고 성찰하게끔 하는 교과이다. (IB를 말한다, p.91)

Ex) “과학 기술은 지식을 생산하기도 하고 생산된 지식을 제한하기도 한다.” 이 말에 대해 2가지 지식 영역을 참고하여 논해 보시오.
“좋은 설명은 반드시 진실이어야 하는가?”  / 와 같은 주제들에 대해 일주일에 1-2시간씩 토론 수업을 하고, 미리 공개된 질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1,600(영어 기준)자 정도의 논술로 제출한다.







IB는 우리의 수능과 어떻게 다른데?



집어넣는 교육이 아니라 꺼내는 교육


 


  여기까지 보면 문-이과가 통합된 한국의 교육과정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IB 과정의 가장 큰 핵심은 지식을 집어넣는 것이 아닌, ‘꺼내는 교육’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수능의 국어 영역 문항은 ‘다음 중 이 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A)의 관점으로 (B) 시를 봤을 때 적절하지 않은 설명을 고르시오.’ 등 학생이 해당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묻는다.



반면, IB 시험은 해당 지식을 활용하여 학생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지 묻는다. 2014년에 기출된 문항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문항 필수, 두 번째부터 하나 선택. 각 문항 당 2시간씩 작성) (IB를 말한다, p.99-107)


-(김원일의 소설 ‘어둠의 혼’ 중 일부와, 허만하의 시 ‘바다의 이유’의 일부를 제시한 뒤) 다음 두 지문 중 하나를 골라 문학적으로 해설하시오.

-(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시에 사용된 특수 장치에 대해 지금까지 공부한 작품에서 최소한 두 편을 골라 비교하고 대조하여 논하시오.
-(희곡) 지금까지 공부했던 작품 중 두 작품을 골라 작가가 작품에서 반전을 어떻게 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그 효과에 대해 논하시오.  
-(수필) 공부했던 작품 중 열린 결말로 마무리하는 작품을 최소한 두 작품 골라 그 효과에 대해 논하시오. /
-작가가 친한 일상생활의 언어를 사용하면 작품의 주제가 잘 뒷받침되는지, 배운 작품을 활용하여 일상적 언어 사용의 효과에 대해 논하시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고력을 평가하기 위한 역사 과목도, 단편적 사실이나 순서 흐름 정도를 묻는 우리의 평가와는 다르다.


-전쟁이 사회 변화를 가속화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2가지 이상의 전쟁 사례를 들어 이에 대한 의견을 쓰시오.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 정책들은 부의 분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는 말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논하시오.
-(한국 역사 관련) 한국 전쟁 발발에 외세의 책임은 얼마나 있는가?
-“동학 혁명은 일본의 조선 병합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라는 주장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는지 논하시오.



 단지 문과 과목의 특성이 아니다. 과학 시험은 학생들의 과학적 지식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한 뒤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분석하는지를 봄으로써 과학적 사고 능력을 평가한다.


-말라리아 발생 수와 열대 아프리카 월별 강수량 그래프 제시.
1)  그래프를 해석하기. (그래프가 보여주는 패턴 분석)
2)  연간 강우량 변화가 말라리아 발생에 기인한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3) 강우량 변화 이외에 말라리아 발생 패턴이 가능한 2가지 다른 이유를 제안해 보기.



또한, 수학도 IB 외부 시험은 수능과 같은 문제풀이지만, 내신 평가인 수행 평가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의 보고서를 쓰면서 지필고사로는 볼 수 없는 사항까지도 평가한다.


계산기는 정적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삼각 함수의 역함수는 왜 arc라 부르는가?
건축물의 부피 최적화



이와 같은 IB 과정의 실제 평가 과정을 살펴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이렇게 ‘꺼내는 평가’를 하기 위해서 ‘수업’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질문이 생겼고,


두 번째는, 왜 일본이 IB를 만난 것이 ‘두 번째 흑선’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일본이 IB라는 흑선을 통해 준비하고 있는 교육개혁



일본이 ‘새로운 메이지유신’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준비하는 교육개혁을 문답식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Q. 일본이 IB 커리큘럼을 공교육에 도입하면 어떤 것들이 달라지길래?


1) 수업 언어가 공식적으로는 영어였지만,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어로 수업하는 과목을 설정할 수 있다.

2) 등록금이 비싼 일본 국제학교에서만 실행되는 것을 넘어, ‘정규학교’까지 확대된다.

3) 커리큘럼 이수 후 일본대학 진학뿐만 아니라 해외대학 진학이 가능해진다.

(출처 : 국제 바칼로레아의 모든 것, 후쿠타 세이지, p.234)




Q. 일본은 어떤 문제의식을 느꼈길래 이런 변화를 추구하는 것일까?


1) 일본의 학교들이 글로벌화되지 않으면, 앞으로의 세계무대에서 일본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2) 주어진 과업수행만을 강요하는 교육으로는 창의적인 인재를 기를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앞으로 일본의 노벨상은 없을 것이다.

3) 지금의 경제적 격차가 다음 세대의 교육적 격차로 굳어지게 되면, 더 이상 일본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출처 : 국제 바칼로레아의 모든 것, p.9,  동경가쿠게이 대학 데쿠치 총장 인터뷰 및 일본 정부 발표 편집)


‘일본’이라는 주어 대신 ‘한국’을 넣어도 위화감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Q. 일본이 생각하는 ‘IB’의 매력은?


 -학생들로 하여금 ‘탐구의 즐거움’을 알게 한다는 것.

 -특히, 선생님과 학생들이 어디에나 있는 수업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수업을 만든다.

 -IB 커리큘럼을 통해 앞으로 미래 사회에 필요한 사고력, 판단력, 표현력을 비롯하여 ‘살아가는 힘’을 육성한다.

(출처 : EBS 다큐프라임, 4차 학교 혁명 시대 교육대혁명)

 



Q. 200개의 IB 학교 도입은 일본 전체 학교의 규모에 비해 작지 않나? 


-일본의 궁극적 목적은 IB 학교의 양적 확산이 아니라, 국가 공교육 시스템의 본질적인 개혁이다.

-47개의 시도교육청 아래 20,000개 초등학교, 10,000개의 중학교, 5,000개의 고등학교가 있다.

-권역 별로 초, 중, 고 IB 한 세트를 도입하면 IB를 경험한 교사들이 다시 퍼뜨릴 것이다. IB를 경험한 교사들이 다시 이전의 방식대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에듀인뉴스, ‘교육혁신 대안 부상 IB’)



(‘윌리야, 진짜 변화는 뭉툭한 칼자루 여러 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뾰족한 바늘 한 자루를 보여주는 거야. 이를 전체 시스템에 옮기는 건 다른 사람들의 역할이거든.’이라고 하던 존경하는 형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사카모토 료마’가 ‘흑선’을 만나며 진행되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사는 재미있게 읽혔지만,

지금 일본이 IB라는 ‘흑선’을 만나 ‘두 번째 메이지 유신’을 준비한다는 말은 전혀 다르게 와닿았다.


아마 그 둘이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 이유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역사가, 준비되지 못했던 조선에게 어떻게 펼쳐졌는지 너무나 아프게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글을 쓰며 내가 느낀 뭉툭한 긴장감을 잘 표현해준 단락이 있어 이를 소개하며 마치고자 한다.


백수십여 년 전 우리보다 먼저 시대를 읽었던 일본이, 4차 산업 혁명과 인공 지능이라는 또 다른 쓰나미가 밀려오는 작금의 시대를 읽고 신메이지 유신을 하겠다며 교육 혁명에 착수했다. IB의 공교육 도입과 대입 시험 개혁을 이미 수년 전부터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교육 당국의 한 수장이 일본에 다녀온 후 일본 공교육에 도입된 IB 학교가 200개 학교 ‘밖에’ 안 되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 했단다. 이것은 임진왜란 직전이나 구한말 때와 같은 안일한 시각이다.(...) 우리는 칼과 창이 2만 개 있는데 저들은 총이 200개 밖에 없다고 무시하는 것 같은 어리석음이다. 시대의 역량을 기르는 교육은 칼과 총의 차이처럼 차원이 다른 힘이다.

임진왜란 직전 선조의 명으로 일본을 다녀온 후 황윤길은 전쟁이 날 것 같으니 대비하자 했고, 김성일은 전쟁 날 가능성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선조는 후자를 믿고 방심했고 우리는 처참하게 임진왜란을 겪었다. 구한말에는 전쟁 없이도 나라를 잃었다. - IB를 말한다, p.197 (부록, 일본의 교육개혁)


 소개한 단락은 마지막에 질문을 던지며 끝이 난다.

‘작금의 시대와 일본의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하겠는가.’



나름의 답을 다음 편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하)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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