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나의 선택들이다'
지금의 나는 결국 내가 내린 수많은 선택들이다.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의 의지와 자유로운 선택의 가치를 강조한다. 수 많은 상황들 속에서도 인간은 언제나 선택에 있어서는 자유롭다. 하지만 그래서 힘들다. 실존주의 사상가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결국 불안은 결국 자유로부터 오는 현기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죽음(유한함), 고독(아무리 가까워져도 존재하는 간격), 자유('너무' 자유롭게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 무의미(삶의 의미)라는 실존적 키워드를 가지고 산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결과에 이르지는 못하는 존재이다. 결국 인간이란 유죄를 인정받고 사형을 기다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단지 스스로 위안 받기위해 그 일에 무관심하며, 세상이란 감옥에서 자유인처럼 행세할 뿐일수도. 하지만 이를 인정하는 것이 실존적 고민을 받아들이는 핵심이다.
나는 스무살 적, 위와 같은 실존적 고민에 직면했고, 꽤나 치열하게 힘들어했던 것 같다. 내게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 나였지만, 이 세상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새삼스럽게 이를 깨닫고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고, 결국 나는 살아갈 수록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순백의 영혼에 검은 잉크를 사정없이 묻히며 얼룩질 뿐이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랑'이다. 인간은 유한하다. 그래서 삶을 의미있게 가꾸어야하고, 결국 '너무' 자유롭게 던져진 나의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며, 내 삶을 빛나게 해줄 의미있는 것을 찾아야한다. 가족, 친구, 애인 등이 될 수 있겠다. 앞서의 글에 언급한 멋진 말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존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돈, 명예, 능력을 다 가져도 다 잃을 수 있다.
이 또한 나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결국 올바른 선택은 좋은 경험에서, 좋은 경험은 잘못된 선택에서 나오기 때문에 내 결정의 통과의례는 내게 결국 성장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