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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kipedia Feb 09. 2023

이직의 시즌 - 1부

종합 광고대행사의 업계 상황과 이직 이야기

2021년 어느 퇴근길의 서울역사 풍경



 "코로나 시즌, 이직의 기회를 맞다"


 2020년, 코로나19의 1차 유행이 세상을 막 휩쓸었을 무렵이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도 칼바람이 불었다. 국내 4대 메이저 종합 광고대행사로 불리는 큰 회사라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단 몸집부터 줄이는 게 나았던 걸까. 회사는 일사천리로 매출이 바닥난 팀부터 통째로 인력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매출이 나쁘지 않았던 우리 팀에도 인원 감축이 진행되었다. 일단 정규직 조건으로 1년 계약이었던 내가, 우리 팀 첫 번째로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곧이어 정년을 앞둔 두 분, 나랑 친했던 과장님과 대리님 한 분도 권고사직을 받았다. 팀원이 총 13명인데 그중에 5명이 퇴사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우리 본부 차원으로는 팀 하나가 없어진 곳을 포함하여 50명 중에 15명이 넘는 인원이 감축 대상이 되었다.


 급작스러운 계약 만료로 당혹스럽긴 했다. 주변에서는 슈퍼 자연재해급의 상황으로 타이밍이 안 좋다고,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마지못한 위로를 건넸다. 구두 계약 조건과 다르게 결과를 통보한 회사에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노무사를 써서라도 따질까 했으나 시간이 아쉬운 상황이라 빨리 다른 곳을 알아보기로 했다. 나 외에 정규직 분들의 권고사직은 지독하게 진행됐다. 법적 효력이 없는 권고사직은 회사가 직원 개인의 능력을 문제시 삼는 등 가혹한 언사를 통해 퇴사를 종용한다. 능력에 따른 것이라면 납득이라도 할 텐데 인사권자의 기호에 따라 결정되는 면도 있어서 잔인하다. 직장은 내가 생각했던 곳보다 훨씬 피도 눈물도 없는 곳이었다. 이곳은 철저히 계산기의 값에 따라 움직인다.   


 자존감이 하락하고 있었다. 애써 내 능력 탓이 아니라고, 믿을 만한 빽이 없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이러고만 있을 수 없어 직접 계산기를 두드려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라는 인사에 대해 어떤 시장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까? 계속해서 근로 소득을 얻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현재 일하고 있는 시장과 나의 위치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 내가 일하려는 산업과 이 산업에 속한 회사가 지속 가능한 시장인지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인적 시장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시장에 나의 위치를 잘 파악하여 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위기를 맞은 종합 광고 대행사"


 내가 일했던 산업은 광고/마케팅 업계이며 내가 일하고 있던 회사는 종합 광고 대행사(이하 종대사)이고 내가 일하는 본부는 BTL 마케팅 분야이다. 종대사는 어떤 기업이 의뢰하는 총 광고비(기획+제작+매체 집행 등, 모델료는 제외)에 대한 대행 수수료를 주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기업들이 마케팅 비용부터 줄이기 시작하면서 일 자체가 줄어든 것은 맞지만 이건 일시적인 상황이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마케팅이 점점 브랜딩 관점으로 변화하면서 대행 수수료가 줄어드는 데 있었다.


 잠깐 소개하자면, 마케팅 관점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TV 등 매체와 그에 따른 소재 전략이 중심이고, 브랜딩 관점은 기업이나 브랜드 철학을 잘 드러내도록 돕는 콘텐츠 자체에 기반한 전략이다. 브랜드 가치를 드러내는 콘텐츠는 당연히 대행을 맡기는 것보다 기업의 히스토리를 더 많이 아는 기업 내부 인력이 직접 하는 것이 비용도 줄고 여러모로 유리하다. 그리고 요즘은 마케팅 플랫폼에서 고객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뜨기 때문에 그에 맞는 대응을 하기 위해서도 내부 인력에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대세가 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광고 마케팅을 대행사에 맡기는 일이 줄었고 일을 맡기더라도 총비용을 줄이거나 대행 수수료를 깎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또한 예전처럼 주요 국공립기관의 굵직한 마케팅 프로모션을 하려고 해도 요새는 나라에서 중소기업에 기회를 많이 주고 있는 실정도 있다. 사업의 다각화나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종대사는 정말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내가 속한 본부의 BTL 마케팅의 경우는 CES라든지, 모터쇼, 메타버스 플랫폼 등 미래에 더욱 호황인 분야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미래지향적 마케팅 프로모션이 필요한 전자 회사나 자동차 회사나 빅 테크 회사가 계열사로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고 그런 회사가 없는 그룹사는 굳이 이런 부서가 필요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기껏해야 아파트 분양 프로모션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요즘은 아파트 분양은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으니 우리 본부의 필요성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의 변화 없이는 회사의 입장에서 어떻게든 일단 인력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맞았다. 코로나19는 어쩌면 좋은 핑곗거리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런 인력을 투자로 보지 않고 즉각적으로 줄이는 일로 회사는 악순환이 된다. 과정은 이렇다. 여러 사람이 하던 일을 한 사람이 하게 된다. 줄어든 수수료를 메꾸기 위해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일을 한다. 전문성과 상관없는 일을 하기 시작하고 박리다매식 프로젝트가 빈번해진다. 그러므로 전문성이 떨어진다. 야근이 생활화될 수밖에 없는데 포괄임금제로 야근이 많을수록 시급이 줄어든다. 회사가 이익을 내지 못하니 연봉이 동결된다. 이렇게 직원들의 임금은 줄고 점점 삶의 질과 커리어의 전문성이 하락한다. 결국 회사 직원들의 인적 가치가 하락하고 회사도 어려워지면서 한 배에 탄 모두가 침몰하게 된다.





"퇴사가 준 넓은 시야와 회복"


 이런 상황 속에서 타의이긴 했지만 나가는 게 잘 됐다 싶었다. 사실 나는 이 회사에 오기 전부터 전공을 살려 공간디자인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로 공간 디자인 관련 업계는 호황을 맞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채용 공고도 많이 올라와 있었고 주변 소개로 면접도 많이 보게 됐다. 공간디자인 일을 전문으로 할 수 있는 회사는 브랜드의 인테리어팀이나 인테리어 전문 에이전시인데 요즘 시장 상황이 빠르다 보니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좀 더 미래에 가치를 얻을 수 있는 분야를 찾아보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정말 공간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생각보다 꽤 많다는 것을 보게 됐다. 부동산 디벨로퍼 쪽도 있고 프롭테크* 쪽도 있었고 요즘 핫한 메타버스 쪽도 사람을 필요로 했다. 이 와중에 프롭테크란 용어 자체를 처음 들었는데 이미 이 개념으로 4~5년 전부터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산업이었다. 세상은 정말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공간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는 생각만 했지 내가 일할 분야의 트렌드도 알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퇴사를 당하는 상황이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마터면 따뜻한 우물에서 좋다고 있다가 물에 끓어 죽을 뻔했다.


*프롭테크 :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용어인 프롭테크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IoT 등 최신 기술을 부동산에 접목해 혁신적인 서비스나 산업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6월, 마지막 한 달은 진짜 회사에서 말년 병장처럼 있었다. 팀장님이 양해를 해주셔서 허락 하에 근무 시간에 이력서도 쓰고 포트폴리오도 정리하고 심지어는 면접도 보러 다녔다. 그리고 정시 퇴근을 매일 하니 퇴근 후에는 남은 회사 복지포인트를 이용하여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현대 무용 학원도 다녔다. 그리고 퇴사를 앞두니 직장 동료들과 일적인 관계 이상의 것들을 공유하면서 의외로 돈독한 대화도 나눴다. 팀원들이 응원의 의미를 담아 송별회 선물로 에어팟 프로를 해줬다. 꽤 설레는 경험들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워라밸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했다. 원래 직장 생활을 이렇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매일 좋은 워라밸로 내 커리어에 대해 꿈을 꾸며 일하는 삶! 그동안 직장 생활이라는 관성에 젖어 힘들었던 나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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