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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kipedia Feb 10. 2023

이직의 시즌 - 2부

종합 광고대행사에서의 재계약 연봉 협상 이야기

2021년 어느 퇴근길, 서울로 7017 위 풍경



"이직 말고 재계약을 제안받다"


  근무 계약 만료를 5일 앞둔 날, 면접을 가려고 팀장님에게 보고를 드렸다. 팀장님이 날 멈춰 세우더니 잠깐 회의실에서 이야기하자고 하셨다. 내용인즉슨 갑자기 회사에 공간 기획 관련 큰 규모의 프로젝트가 들어왔고, 금액이 큰 건이라 클라이언트가 공간디자인 전공자가 기획 PM을 맡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팀에는 공간 전공자가 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내게 계약 연장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 물어보셨다. 


 계약 연장을 할지 아니면 얼른 이직해서 자리를 잡을지 판단이 필요했다. 또다시 이런 상황에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시장의 상황과 나의 가치를 계산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우선 이 프로젝트의 예상 계약 규모에 대해 파악했다. 이 프로젝트는 한 브랜드의 점포를 전국에 100개 이상 내는 것이었고 연매출 약 300억 정도의 규모였다. 이런 규모는 팀 내의 파트 단위로는 엄청나 큰 건이다. 사람이 오히려 더 필요한 건이다. 내 쪽에서 재계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게 아니라 오히려 회사에서 일을 해주어 고맙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재계약 시에 내 가치를 충분히 어필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부족했던 공간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더 쌓을 수 있으니 더 나은 선택이었다. 


 재계약을 하면서 연봉 협상을 했다. 계약했던 1년 전과 완전히 마음가짐이 달라졌는데, 그동안 내가 놓쳤던 나의 가치들을 페이퍼로 잘 정리해 협상 테이블에 가져가기로 했다. 그리고 절대로 나의 가치를 절하하는 계약은 안 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나의 가치 파악은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두 부분으로 나눴다. 우선 정량적인 부분을 파악하기 위해 회사 ERP에 찍힌 나의 실적을 엑셀로 일일이 정리했다. 프로젝트별 매출 및 영업이익을 정리하고 기여도를 퍼센티지로 산정하여 수치화시키고 표로 정리했다. 내가 어디서 들은 바로는 보통 매출이 잡히는 부서의 경우 직원 한 사람의 연봉을 그 사람이 벌어들이는 연 영업이익의 10%를 적정 연봉으로 본다고 한다. 나의 경우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이니까 내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 15%를 계산했다. 그리고 새로 들어갈 프로젝트의 영업이익의 정보를 입수하여 계산했고 혹여나 퇴사하실 분들의 프로젝트 맡게 될 경우까지 고려하여 표를 따로 정리해 두었다. 이 경우는 내 업무량을 파악해서 줄이기 위해서였고, 또 업무량을 보장받지 못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연봉을 가액하기 위해서였다. 


 정성적인 부분은 정규직 조건으로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고도 계약 만료 통보를 받았던 지난 1년에 대하여 감정 호소를 하기로 했다. 그래야 회사가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고 연봉 협상에서 유리하게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수행한 역할에 대해 억울한 게 많았다. 그래서 감정에 호소해서라도 충분히 보상받고 싶었다. 그리고 또다시 정규직 조건을 내걸고 과도한 업무를 맡을 수 없다고 어필하는 것이 필요했다.




"프로 선수처럼 연봉 협상을 하다"


 인사 담당자와 연봉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회사는 예상대로 재계약 연봉을 동결하자고 했다. 코로나19로 전 직원 연봉이 동결됐고 회사가 어려운 것이 이유였다. 오히려 재계약이 된 이 상황이 천만다행이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셨다. 그때 나는 안주머니에서 나의 실적을 표로 정리한 A4용지를 꺼내 인사 팀장에게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회사는 그 표를 보고 내가 얼마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인사 담당자는 다시 한번 검토하겠다며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다음날 2차 협상이 진행되었다. 회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7%를 제시했고 더는 그룹사 연봉 인상률 상한선을 이유로 인상이 어렵다고 말했다. 나의 경우는 연봉 인상이 아닌 사실상 재계약인데 그 상한선을 왜 나에게 제시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 금액으로는 계약이 어렵겠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희망 사항에 불과한 금액이 아니었다. 인사 담당자는 그럼 한 번 더 상부와 협의해 보겠다고 했다. 2차 협상도 결렬됐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 협상이 괜찮은 것은 한 가지 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인사팀의 직장 내 입장 때문이다. 인사팀은 인력과 잘 계약을 맺어 실무 부서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KPI(성과지표)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무 부서에서 계약을 요청한 이상 계약 성사를 이루는 게 목적이다.


 마지막으로 3차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3차 협상은 사측에서 나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결과 공유의 자리였다. 회사는 그룹사의 연봉 인상률 최대치에 더하여 나의 앞으로의 업무 결과와 상관없이 최고 고과 등급을 보장하여 성과급을 주는 옵션을 제시했다. 그리고 추가로 실무 부서 본부장 재량의 보너스도 옵션으로 제시했다. 그렇게 모든 옵션을 합쳐 원하는 연봉을 보장받게 됐다. 내가 마치 프로 운동선수가 된 것 같았다. 총 14%의 인상이었다. 계약서에 사인했다. 계약 만료 이틀 전이었다. 이 순간 내내 류현진 선수의 유명한 메이저리그 담당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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