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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재 Apr 25. 2023

도시와 하이킹 #1

Urban Hiking 의 시작

"걷기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레저 행위이다. 걷기 길을 통해 우리는 도심과 농촌, 자연으로 이어지는 스펙트럼을 몸소 경험하게 된다. 걷기 길 조성은 시민들에게 건강한 신체 활동을 장려하는 기능뿐 아니라 직접적 체험으로써 자연과 지역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생에 두 번째 석사, 조경학 분야의 첫 학위논문의 머리말이다.

뮤지션으로 데뷔 후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시작한 '걷기'가 훗날 조경학 아웃도어 디자인, 하이킹 트레일 분야의 학위로 까지 이어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었고 논문이 끝난 후 기나긴 무력감이 찾아왔지만 충분히 '후회 없는 한 판이었다..'라고 읊조릴 수 있을 만큼 깊은 고민과 지식 탐구의 시간이었다.

마치 영화 결투씬 뒤에 나오는 장면처럼 안식을 받아들이고자 나는 따듯한 남쪽을 찾았다 (팜프라, 2022)


시간이 지나고 논문의 언어를 캐주얼 언어로 옮겨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어렵게 얻은 지식을 전파하자는 비장한 각오를 하였지만 그 시간은 그만 웜홀에 빠진 것 마냥 흘러버렸다.

그러던 중 함께 길을 거닐던 길동무들에게 좋은 아웃도어 행사를 함께 기획해 보자는 제안이 왔다.  


'어반하이킹(Urban Hiking)'

너무나 찰진 워딩과 목적과 아이덴티티가 명확해 보이는 타이틀이 나를 확 이끌었다.

무엇보다 '자연 기반 근교 하이킹 트레일의 개념 및 실태 -대부해솔길 이용자의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 

라는 길고 긴 제목의 관련분야 논문을 막 마친 연구자에겐 더욱 흥미로운 주제였다.


사실 '어반하이킹 인 서울'은 2021년 경의선 숲길을 거쳐 인왕산과 북악산을 거니는 코스로 한차례 행사가 치러졌다. 그 당시 나는 참가자 자격으로 행사에 함께 했었고, 안타깝게도 그 시절 팬데믹의 영향으로 시리즈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잠들어있던 걷기 행사를 깨우기에 이르렀다.


어반하이킹의 시작은 아웃도어 브랜드 '제로그램'의 창업자이자 현재는 '그레이웨일 디자인'에서 목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현상 대표님으로 부터다.

'Woody' ,  'Gray whale' 라는 닉네임으로 오래전부터 산꾼들과 장거리 하이커들에게 잘 알려진 그는 십여 년간 아웃도어 브랜드를 운영하며 경량 하이킹의 개념, 자연을 대하는 하이커 윤리 Leave No Trace(LNT)등을 한국에 정착시키는 것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나아가 그동안 우리의 아웃도어 문화가 산을 빠르게 '정복'하는 형태로 발전하여 자연을 온전하게 향유하고 탐구하는 기능을 망각했던 것에 대해 다시금 상기시키게 해 주었다. 물론 그 역시 아웃도어를 매개로 상업 브랜드의 판촉을 촉구했던 위치에 계셨지만, 파타고니아가 그랬던 것처럼 단순히 아웃도어 문화가 소비로 점철되는 것에서 자연과 그 가치를 깨닫는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의 아웃도어와 하이킹 문화에 대한 철학은 저서 '인사이드 아웃도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욱재, 2023)

앞서 언급한 논문의 서두처럼 걷는 길은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의 스펙트럼을 어떠한 장치 없이 소개하는 고마운 존재다. 때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내셔널 트레일의 개념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데, 가까운 일본의 경우 '국토를 이해하다'라는 개념을 적극적인 홍보 캐치프레이즈로 활용하고 있다.


잠시 하이킹 트레일의 개념과 역사를 이야기하자면, 영국과 미국을 빼놓을 수 없다. 영국의 트레일 역사는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인클로저 운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당시 영국은 산업화와 맞물려 도시외곽 사유지 농장에 울타리를 치게 되면서 평소 이동하던 길들이 아주 멀리 돌아가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주말에 교회를 가거나 학교와 삶의 터전을 매일 오가야 했던 국민들의 반발이 'Public Footpath'가 도입이 되는 배경이 되었고, 관련 법률 'National Parks and Access to the Countryside Act', 그리고 'Countryside and Rights of Way Act'로 발전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 후 이 도심 외곽의 도보 길들은 레저 문화가 확산되면서 도시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좋은 안식처이자 휴식의 기능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영국의 도심 근교에서 흔히 마주하게 되는 Public Footpath 사인 (정욱재, 2019)

미국의 경우, 보다 합리적인 '자연자원의 관리' 목적으로 국립공원과 그곳을 오가는 트레일 개념이 정착했다. 여기에 흔히들 '국립공원의 아버지라'라고 불리는 John Muir, 레저와 자연보전의 개념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조경계획가 Benton MacKaye가 등장한다. 이들의 숭고한 작업이 씨앗이 되어 우리는 국토와 자연이 '공공재'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무분별한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자연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게 되었다.

아무쪼록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둘레길과 산책길들의 발원은 이러한 맥락을 통해 탄생하게 되었고 그 핵심 가치는 '자연보전'과 '공공의 목적'에 있으며 현재에 이르러 '레저'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나아가 시민의 건강한 삶, 그리고 자연과 지역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여 그 가치를 깨닫게 하는 훌륭한 해법으로 보고있다.


한편으로 우리의 경우는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레저문화 역시 빠르게 발전하게 되었다. 전 국토의 큰 비중이 산악지형으로 구성된 우리는 근교 산행을 중심으로 트레일 문화가 발전하게 된다. 애초에 우리의 등산로는 일제강점기 자원수급의 목적으로 관료들과 학계 지식인들로 부터 개발되었는데 이는 점차 엘리트 집단의 '산악부', '산악회'로 이어지게 된다. 그 후 경제성장과 함께 대중들의 근교 산행문화가 전파되었고, 걷기 문화가 발전한 대부분의 국가들과 달리 걷기와 레저는 곧 산 정상을 오르고 내려오는 '등산'으로 이어지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에 해외여행이 자율화되면서 다양한 국가의 트레일을 경험한 이들로부터 '수직적 걷기 문화'가 아닌 '수평적 걷기'에 대한 요구가 '둘레길'이라는 형태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가 경쟁하듯 걷는 길을 유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논문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현재 등산로가 아닌 '걷기 여행길'의 수요 측정과 그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반하이킹의 이야기를 해보자.


2023 어반하이킹 인 서울 '정릉' 포스터 시안 (미루, 2023)


어반하이킹의 첫 취지는 '아웃도어는 멀리 있지 않다'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대다수가 도시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의 녹지는 '산'의 행태로 도심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산이 있으면 계곡이 있고 하천과 강과 바다로 연결된다. 런던과 뉴욕, LA와 도쿄와 베이징처럼 한두 시간가량을 운전해야만 인공적이지 않은 nature 영역으로 닫는 대도시의 상황과는 달리, 우리의 자연은 매우 가까이에 있다. 어반하이킹의 시작은 '문밖을 나서며 시작되는 일상의 아웃도어'를 통해 내가 살아가는 도시와 내 주위의 환경을 이해하자는 취지이다. 그리고 도시가 지니고 있는 자연뿐이 아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람들과 로컬의 이야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어반하이킹 행사를 준비하며 그동안 미뤄왔던 길 연구의 언어를 대중적 언어로 풀어내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이제 일주일이 남은 행사가 우여곡절도 많고 미흡한 부분도 있겠다만, 이 계기로 하이킹 문화가 자연과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는 보다 성숙된 레저 문화로 발전하기를 희망하며 미약한 지식을 풀어내 보고자 한다.


http://www.urbanhiking.co.kr/

https://www.instagram.com/urbanhiking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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