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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재 May 15. 2023

도시와 하이킹 #2

URBAN HIKING in SEOUL '정릉'

2023년 어반하이킹 행사 당일에는 비가 왔다. 행사 하루 전까지도 행사를 연기할지, 취소할지, 아니면 강행할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결과론 적이지만 행사를 일주일 미뤘더라도 똑같이 비가 왔기에 강행이 옳은 판단이었을지 모른다. 덕분인지 하이킹 경험이 다수 존재하는 참가자들이 대부분 참석하여 큰 사고 없이 행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쉽게 경험하지 못했던 우중 하이킹 역시 즐길 수 있었다.

2023 어반하이킹 인 서울 '정릉' 스케치 (정욱재, 2023)

올해 어반하이킹 코스는 서촌 수성동 계곡으로 부터 시작하여 북악산과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길을 걷고 정릉천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로 계획했다. 어반하이킹의 취지가 도심 속 자연과 사람들이 쌓아온 동네의 정취를 탐방하는 것이기에 해당 루트에서 가장 오래됨을 간직한 곳을 하산 포인트로 잡는 것이 관건이었다.

2023 어반하이킹 인 서울 '정릉' 스케치 (정욱재, 2023)

개인적으로 정릉에는 친구가 론칭한 '라이프쉐어'라는 문화 플랫폼 공간이 있어 이곳을 자주 방문했기에 나름 장소성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고 판단했다. 백 년 가까이 된 오래된 구옥의 철거와 인테리어에 손을 보태며 정릉을 오갔다. 그 과정에서 정릉천이 다시 살아난 이야기, 골목골목 재미난 가게들과 힙스터들, 시장의 노포들과 사찰로 이어지는 운치 있는 돌담길, 그리고 도심 속 자연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물고기와 새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2023 어반하이킹 인 서울 '정릉' 스케치 (정욱재, 2023)

라이프쉐어의 공간 '이너시티'를 베이스캠프 삼아 행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관해 두고 참가자들과 함께 수성동 계곡에서 부터 정릉까지 대략 10km를 걸었다. 엔딩 포인트는 '슬로카페 달팽이'로 정했다. 이유는 이곳이 마을 커뮤니티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카페 오너께서 오랜 기간 정릉에 대한 매거진 발간과 정릉천 복원, 마을 문화기획과 같은 로컬 행사에 관여했기에 누구보다 이 지역의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에서는 이러한 커뮤니티 기능을 가지고 지역의 활력을 불어넣는 공간을 '앵커' 시설로 표현하는데, 대표적으로 유럽의 광장과 공원 등이 이에 속한다. 나아가 오래된 식당이나 펍 또한 지역 사람들 혹은 이방인을 자연스럽게 마주하도록 돕는다. 반면 우리 도시의 경우는 공원과 녹지 형태가 주로 경사가 있는 산, 선 형태의 하천위주로 이루어져 있기에 사람들이 움집 하여 여유롭게 교류하는 오픈스페이스가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아파트와 같이 바운더리가 형성된 주거문화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교류를 단절시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의 상징적인 오래된 식당, 카페, 마을회관, 도서관 등 문화공간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도심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공원을 조성하는 이유기도 하다.

라이프쉐어 '이너시티' (좌) , 슬로카페 달팽이 (우) (정욱재, 2023)

내 삶의 궤적과는 전혀 무관한 동네 사정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친구의 공간에 방문하고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산책했기에 가능했다. 이렇듯 걷기와 길은 로컬을 이해하고 체화시키기에 무엇보다 좋은 수단으로 보인다. 그리고 먼 곳으로의 여행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도시 혹은 인접한 고장을 방문하여 여유롭게 거니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란 사실을 우리는 팬데믹을 통해 경험했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 걷기 길이 존재할까?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의 성공은 새로운 걷기 문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곧 전국적으로 과도할 정도로 많은 도보 길이 경쟁하듯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이 중 상당수는 매력이 떨어지는 길로 외면받고 방치되었다. 2017년 기준 한국관광공사 조사에 따르면 당시 자체적인 이름을 가진 506개의 길, 1579개 코스, 약 16,420km의 도보길이 존재했을 만큼 그 수가 방대했다. 오랜 기간 운영되어 관리체계와 기준이 확립된 등산로와는 달리, 걷기 길은 그 개념과 체계, 심지어는 이를 부르는 명칭조차도 합치되지 않았다. 결국 걷기 길, 걷기 여행길, 둘레길, 트레킹 길, 트레일 등 모호한 개념의 양산되었고 이는 연구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논문이 쓰인 2021~2022년 당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공공데이터 포털에 올라오는 각 지자체별 걷기 여행길에 대한 자료(전국길관광정보표준데이터)를 활용하여 2017년과 2022년의 하이킹 트레일을 비교하였다.


전국 지역별 하이킹 트레일 및 코스별 현황 (정욱재, 2022)

그 결과 전체 길의 수는 늘었지만 전체 코스의 총합은 오히려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각 지자체 별로 걷기 길을 취합하는 과정에서의 오류로 보인다. 예를 들어 2022년 자료에서 인천 29개 길의 경우 실제로는 29개가 각각의 트레일 브랜드가 아닌, 각 코스의 테마 명칭이 개별 트레일로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강화나들길 1코스 '심도역사 문화길' , 19코스 '석모도 상주 해안길'과 같이 각 코스별 테마 명칭이 있음)

결과적으로 지난 기간 우후죽순 생겨나 관리가 되지 않았던 길들을 각 지자체가 정리하고 통합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동해 '해파랑길' 남해 '남파랑길'과 같이 대한민국 전체를 도는 코리아 둘레길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각 지자체별로 만들어놓은 개별 길들하나의 장거리 트레일로 흡수하는 리빌딩 과정에 있다고 본다.

분석에 있어 안타까운 점은, 앞서 언급한 대로 데이터의 오류들 (길이의 잘못된 기제, 아주 오래전에 만들고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길, 오래전 길과 업데이트된 길의 중복 기제 등)이 난무하여 정확한 집계보다는 경향성을 파악하는 정도로 인지하는 수준인 점이다.

이에 대한 좋은 대안은 미국의 내셔널 트래일 시스템으로 사료되는데, 미 전역에 만들어진 걷기 길에 대한 정보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 통합관리 체계다. 우리의 경우 한국관광공사가 '두루누비'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역할을 일정기간 담당했지만, 현재는 코리아 둘레길에 집중하여 전체 길에 대한 업데이트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된다.

미국의 National Scenic and National Historic Trail (좌) , National Recreation Trail (우) 현황 (자료 : US.NPS)

걷는 길 조성은 지역과 자연을 이해하는데 좋은 수단이 되고 이는 시민의 환경 성숙도를 높이는 것과도 이어진다. 그리고 한 국가의 트레일 수준은 그 나라의 환경보전과 국토계획에 대한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하이킹 트레일이 오랜 기간 정착한 나라들이 도보 체계를 지속적으로 정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길이 지금까지는 관광 레저차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면, 이제는 보다 성숙된 형태로 도약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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