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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재 Apr 29. 2019

숲 속의 작업실

경기상상캠퍼스 입주기

내 음악 작업실은 숲 속에 있다. 많은 뮤지션처럼 홍대 인근에 작업실을 두고 오랜 기간 일했다. 언제부턴가 거대 도시의 압박에 더 이상 숨 쉬기 버거워하는 나를 발견했다. 20대 나의 치기를 받아주던 합정과 상수와 망원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지 않았다. 도시에 많은 곳들이 그러하듯, 이곳 역시 팽창과 쇠락을 반복하다가 무수히 많은 파편들은 생산했다. 안타깝게도 그 파편들 대부분은 내게 유익해 보이지 않았다. 밤샘 작업을 마치고 문을 열면 골목을 뒤덮은 쓰레기와 간밤의 젊은 영혼들이 남긴 토사물 따위였기에. 그렇게 젠트리피케이션은 마치 먹구름이 삼키듯 내 추억의 장소에 안착했다. 안타깝게도 나와 내 작은 작업실 역시 그 먹구름 안에 있었다. 물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특성상 변화의 파도 위에서 표류하는 것을 즐겨야 함은 타당해 보였다. 그 안에서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무언가를 끈임 없이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전 세계 예술의 메인 스트림을 장식했던 뉴욕과 파리와 런던 등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는 내게 생존의 문제라 여겨졌다. 목가적 성향이 무척이나 강했던 나에게 이 도시와 인파들은 어느 순간 나를 집어삼킬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서울 작업실을 정리하고 새로운 작업공간 구축을 시도했다.

작업실 앞 풍경. ⓒ 정욱재, 경기상상캠퍼스, 2018

처음엔 미국의 투어 아티스트들처럼 캠핑카를 스튜디오로 개조해 전국을 누비려 했다. 캠핑카 업체들과 중고 카라반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잠시 렌트로 사용해 보거나 동호인, 제작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캠핑카를 소유한다는 것은 감당해야 할 커다란 산들이 아직은 많아 보였다. 비용을 둘째치고 주차문제, 차량 정비와 관리의 문제, 결정적으로 어디로든 훌쩍 떠나기에는 매달 어마어마한 기름값을 지불해야 했다. 또한 그리 친환경적이지 못한 경유차에 대한 이미지 역시 내게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 후 시골 빈집을 알아보았다. 등산이나 여행으로 지방 작은 마을을 지나칠 때면 그곳이 품은 자연과 사람들이 쌓아 놓은 이야기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있을 나만의 오두막을 상상했다. 마치 프레디 머큐리가 사랑했던 스위스 어느 호숫가의 스튜디오처럼 내 안식의 장소를 찾는 고민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 또한 불편한 구석은 있었다. 공연이나 인터뷰 같은 스케줄은 대부분 서울에서 잡히니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기에. 설상가상으로 새롭게 시작한 학업 때문이라도 일주일에 절반은 서울을 오가야 했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터를 잡는다는 건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내겐 너무 복잡해 보였던 서울을 떠나기로 다짐했다. ⓒ 정욱재, 충정로, 2018

시간이 흘렀다. 우연히 집 근처를 산책하던 중 재미난 공간을 알게 됐다. '경기상상캠퍼스' 라는 곳이다. 버려진 도시 공간에 새로운 쓰임을 주입시키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다.  이 곳은 오랜 시간 동안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캠퍼스였다. 하지만 비행기 소음 등의 문제로 서울 본교로 이전하게 되면서 버려졌다. 대략 십 년 가량 도심 속 거대한 공터로 남겨지면서 자연스럽게 폐허가 되었다. 흉측하게 변해간 캠퍼스의 건물들에는 급기야 폐가 체험 동호인들이 찾아오거나 호러영화의 배경지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도시정비 및 안정상의 문제 등이 거론되면서 지자체와 서울대의 논의가 진행되었다. 결국 2016년, 경기문화재단의  운영을 통해서 새로운 공간으로 정비되어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빈 강의실은 아티스트 작업실과 공방, 청년 창업 공간으로 마련하고 입주자를 모집했다. 그 외에 공간들은 카페, 공연장, 놀이방, 미술관 등으로 채워졌다. 넓은 잔디밭과 숲은 일반 시민들에게 도심 속 자연을 만끽하게 해주는 공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 매달 크고 작은 축제와 전시, 마켓이 열리며 북적인다.

숲 속 장터 포레포레 축제 풍경. ⓒ투스텝스, 경기상상캠퍼스, 2018

입주한 지 일 년이 조금 지났다. 오래전 농·원예학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의 한 강의실에 새로운 작업실이 생겼다. 창밖 풍경은 빽빽한 건물이 아닌 오래된 나무들로 빼곡하다. 분주히 물건을 실어 나르는 트럭 소리가 아닌,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와 새들의 소리로 가득하다.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됐다. 계절의 변화, 새들과 별을 관찰하는 취미도 생겼다. 도시에서 불과 10분 남짓한 거리지만 숲은 생활양식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이끌어 낸다. 쉽게 부수고 짓는 것에 익숙한 요즘 '재생'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작업실 ⓒ정욱재, 경기상상캠퍼스, 2019

이 글은 조선일보 '일사일언' 칼럼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8/20190328001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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