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효리 Aug 30. 2020

남편과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다 보니 부부 독서클럽.

 연애하던 시절, 제주도에서 남편과 보름 살기를 하며 휴가를 보냈던 적이 있다. 유명한 관광지는 대부분 가 보았지만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 물으면 우리는 동시에 ‘집 앞 북카페’라고 답한다. 남편과 내가 함께 좋아하는 것, 바로 ‘책’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콕, 방콕이 생활화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책과 가까워졌다. 그렇다고 매일 책만 읽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에서 몰입감 있는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몰아볼 때도 있다.


 텔레비전을 오래 보는 것,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기가 있다고 알려진 드라마들은 못해도 한 시즌당 10회가 넘는다. 한 회당 1시간이라고 쳤을 때 10시간 동안 한 곳을 응시할 수 있는 고도의 집중력과 스테미너, 움직임 없이도 소화가 되는 튼튼한 위장이 준비되어야 하는 고급 취미다.


 나는 숙련된 TV 시청자가 아니었다. TV 시청 시간이 한 시간 반이 넘어가면 머리가 멍해지고 몸이 찌뿌둥하거나 가슴이 답답하다. 기름진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TV를 오래 보면 소화가 되지 않아 속이 곧잘 더부룩하다. 몸과 마음에 ‘리프레시’가 필요하다는 생존의 욕구가 저절로 꿈틀댄다.



 그럴 때면 소파 옆에 쌓아둔 책 더미에서 읽다가만 책을 집어 든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지저분해도 되는 공간, 바로 소파 옆 간이 테이블이다. 읽다가 만 책, 읽으려고 책장에서 빼둔 책, 요즘 한창 재밌게 읽고 있는 책, 도서관에서 예약해뒀다 한 달 만에 빌린 책 등 각양각색의 의미가 담긴 책들이 있다.



 책은 이 곳만 있는 건 아니다. 안방 화장대, 침대 머리맡에도 놓여 있다. 되도록 손만 뻗으면 닿이는 곳에 둔다. 치울 수 있지만 생활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일부러 치우지 않는다. 손이 닿는 곳에 있을 때 더 자주 읽게 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책을 읽으면 TV를 볼 때보다 소화가 잘된다. (생각해보니 TV는 나도 모르게 누워서 보게 된다. 그러다 종종 잠이 들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구절엔 띠지를 붙여두고 블로그에 한꺼번에 기록해 둘 때면 충만하기 이를 데 없다. TV를 보다 몇 시간이 지나 있을 때보다 책을 읽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훨씬 개운한 마음이다.


퇴근 후 우리의 일상, 책 읽기 전 양치는 필수

 

 퇴근 후, 간단하게 저녁을 차려 먹고 나면 남편과 나는 티브이를 켜는 대신 자연스레 소파에 앉아 책을 집어 든다. 가끔은 같은 책을 나란히 앉아 보기도 한다. 때로는 도서관에서 같은 책을 두 권 빌려 남편 하나, 나 하나 사이좋게 나눠 읽는다.



 최근에 함께 읽은 책은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라는 김슬기 작가의 책이다. 책의 주된 내용은 산후 우울증, 육아 우울증을 겪는 글쓴이가 다양한 책을 탐독하며 이를 극복했다는 이야기였다. 얼마 전 블로그 이웃의 서평을 보며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 생각한 책이었다. 이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퇴근 후 함께 읽어보자며 남편이 이 책을 건네는 것이다. 이게 바로 ‘Destiny’ 라고, 남편의 센스에 감탄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중간, 애도 없는데 작가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 울컥하기도 하고 ‘나도 저럴 것 같은데 어쩌지’라는 불안감도 생긴다. 별 수 없이 남편에게 나직이 말을 건다.  



 “오빠, 나도 이 분처럼 3살 전에 어린이집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해왔어. 육아 휴직하면서 어린이집 보내는 거..내 스스로 나쁜 엄마가 되는 거라 느껴질 것 같아. ”


 “이 세상에 나쁜 엄마는 없어. 엄마가 힘이 있어야 아이도 돌보지. 00하면 나쁜 엄마다 라는 건 비합리적인 신념이야.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어린이집 보내고 있는데.. 키우다 힘들면 오전에 어린이집 잠깐 보내는 거야. 그러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도 먹으러 가고, 친구 만나서 수다도 떨고, 눈도 좀 붙이기도 하고. 알겠지?”


 “그렇겠지? 우울증 걸려서 힘들고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데, 무조건 엄마가 애를 끼고 있는 것도 현명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해. 진짜 힘들면 잠깐이라도 보내야겠어!(불끈불끈)”



 신혼을 즐기고 싶다는 신념 하에 덮어두고 살았던 ‘임신과 육아의 현실’을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오지 않은 미래지만 우리에겐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이할 미래이기도 했다.



 혼자 책을 읽을 때는 혼자 느끼고 사유한다. 남편과의 독서는 함께 느끼고 함께 사유한다. 우리의 독서는 나의 묵혀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 물꼬를 터준다. 물줄기는 ‘불안’을 ‘안심’으로, ‘두려움’을 ‘희망’으로 새로이 미래를 바라보게 만든다.  



 새삼 좋아하는 것이 같다는 것, 좋아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30대와 40대는 아이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시기라면, 50대부터는 아이 없이 2인 가족, 즉 부부만 남게 되는 시기이다.


 가끔 예능 프로를 볼 때, 50대 중년의 부부들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둘이 있으면 어색해요.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 익숙해지다 보면 남편과 아내만 있는 시간이 어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화의 소재도 주로 아이와 관계되다 보니 아이가 없는 시기에는 부부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자녀를 끼고 사는 것은 불과 20년이지만 남편과 함께할 시간은 인간 평균 수명을 고려했을 때 40년 이상이다.


둘이서만 지내는 시간이 최소 40년일 때, 공유하는 취미가 하나라도 있다는 것은 부부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부부 독서클럽’이라는 취미 생활이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독서라는 건 비싼 돈을 들일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책만 있으면 가능하다. 특히 지금처럼 ‘집에만 있어야’하는 시국에는 더없이 좋은 여가 생활임에 틀림없다.    




 토요일 오전, 인견 잠옷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느끼며 책을 읽는 이 평화로운 순간은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임을 안다. 이 순간을 마음껏 누리고, 마음껏 감사할 작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사, 너는 우리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