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선물같은 시그널입니다.
나와 성격이 비슷한 친구가 있다. 알고 지낸 지는 오랜 세월이 되었지만, 그 친구와 자주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다. 나랑 비슷한 사람과의 만남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했다. 잔 걱정이 많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과하게 애를 쓰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친구.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면 화살은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친구다. 나는 그 친구를 철저히 '나 자신'으로 지각하고 있다.
태어나서 자란 환경도 다르고, 부모님의 양육태도도 다르고, 유전적 기질도 다른 사람인데 말이다. 이를 상담이론에서는 '일치성', 혹은 '일치감' 이라고 한다. 충분히 자신이 억울한 상황인데도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친구 모습을 보며 나는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얼른 해답을 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친구를 만나고 오면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문제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거다.
이는 자식 교육, 혹은 학급 경영에도 적용 된다.
많은 부모님들이 공부를 안하거나, 못하는 자식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낀다. 사실 그 답답함은 '불안'에서 기인된다. 내 인생은 '공부를 못해서 실패했다.' 라고 느껴질 때, 내 자식도 공부 못할까봐 걱정한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 인생에 대한 좌절과 무관하게, 그저 아이가 너무 놀아서 불안한 것은 '저렇게 놀면 먹고 살기 힘들 것이다.' 라는 걱정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불안에는 현실불안과 신경증적 불안, 공포증이 있다. 현실불안은 정상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불안(시험 불안, 발표 불안)을 의미하고, 신경증적 불안은 신경증 환자가 겪는 불안을 의미한다. 공포증이란 특정 대상이나 상황과 결부된 불안이지만, 실제의 위험물보다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불안을 의미한다. (출처:네이버 두산백과)
현실불안이라면, 아이가 놀고 공부를 안하더라도 내 스스로 그 불안을 컨트롤 할 수 있고, 아이에게 적당한 개입으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 신경증적 불안이나 공포증 정도의 불안이라면 아이에게 지나치게 개입하게 되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아이와의 사이만 악화된다.
자신의 불안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잘 알고, 그에 맞게 대처해야하는 것이다. 즉, 굉장한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공포증 수준의 불안감을 느낄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것을 원하고 있고, 지금 나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도출하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녀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만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
다시 말하면,
'공부 못하는 자식 때문에 답답하다.'가 아니라,
'공부 못하는 자식 보면 나처럼 불행해질까봐, 혹은 나보다 먹고 살기 힘들까봐 (내가) 불안하다.' 가 정확한 표현이다.
부모라면, 자식이 공부를 안해서 먹고 살기 힘들 걸 생각했을 때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일 뿐이다. 성적이 나쁘면, 확률 상 어렵게 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지, 그렇게 되리란 보장은 없다.
친구보면 답답하다. 자식만 보면 답답하다. 남편만 보면 답답하다. 그건 다 자기 것이다. 자기 것인데 남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