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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lfynina Oct 13. 2022

[론 뮤엑] 생생한 인물에 담긴 삶의 깊이

론 뮤엑의 작품세계 : 가깝고도 낯선 우리의 삶

Ron Mueck

 

 호주 멜버른 출신의 조각가 론 뮤엑(Ron Mueck)은 실제보다 더 실제같이 사람을 구현해내는 조각가이다. 

장난감 제조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던 탓일까. 젊은시절 그는 어린이들을 위한 TV프로그램의 인형 제작자로 일했다. 이후 그는 영국으로 건너와 광고제작을 위한 마네킹 제조회사를 설립하였는데, 이 때 조각을 위한 다양한 재료를 다루며 고도의 테크닉을 익혔다. 그로부터 몇년 뒤, 화가 폴라 레고(Paula Rego)의 피노키오를 위한 극사실주의 조각 작품을 만들었을때, 영국의 저명한 컬렉터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의 관심을 끌면서 현대미술계에 '작가'로서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이러한 그의 꾸준한 발자취는 제대로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뮤엑을 동시대 최고의 극사실주의 조각가로 자리매김시켰다.


Mueck posed as Geppetto for Rego, holding his 1996 sculpture, Pinocchio


뮤엑의 작업과정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미니어처로 제작된 점토를 제작한 후 볼륨을 확대하고 그 위에 실리콘 거푸집을 씌워 모형의 틀을 뜬다. 그 위에 피부나 살결, 충혈 된 눈 등을 세필로 채색함으로써 정교하게 묘사한다. 이후에는 모공과 주름, 상처, 점과 같은 피부의 요철을 표현하며, 머리카락과 솜털까지 직접 심는다. 이토록 세밀한 작업을 거쳐 탄생한 뮤엑의 작품은 경이로울만큼 생생하다.  


론 뮤엑(Ron Mueck)의 작업실  © Ron Mueck (Photo: Gautier Deblonde)


뮤엑의 작품은 사람을 재현해내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밀성' 못지 않게 '스케일'의 영역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실물처럼 정교하지만 그 크기가 현저히 크거나, 반대로 현저히 작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체의 극적인 확대와 축소는 우리에게 흥미보다는 기이함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실물크기의 작품은 만들지 않는다.
재미가 없을 뿐더러,
실물크기의 사람들은 우리가 매일 만나고 있지 않은가?

I never made life-size figures
because it never seemed to be interesting.
We meet life-size people every day.
Altering the scale makes you take notice in a way that you wouldn’t do with something that’s just normal.



Ron Mueck, In bed, 2005, Mixed media , 161.9 x 649.9 x 395cm © Ron Mueck


 개인적으로 필자가 고등학생일 무렵,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때에는 어딘가 섬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요할만큼 극도로 사실적이면서도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는 기분이랄까. 그 후 천천히 들여다보면 묘하게 마음이 숙연해지곤했다. 이렇게 차분하고 가깝게 누군가의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그 인물이 실제가 아닌 걸 알면서도 자꾸만 주위를 서성이게 된다. 왠지 모르게 고독해보이는 조각의 모습에서 내 안의 외로움까지 마주하게 된다.



뮤엑의 작품들을 보다보면 인생의 과정이 담겨있다고 느껴진다.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즉 '삶의 순환'이 녹아있다. 지금부터 그의 작품들을 삶의 과정의 관점에서 조명해보고자 한다.



01 탄생

Ron Mueck, A Girl, 2006, mixed media, © Ron Mueck

 <여자 아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갓난아이가 방금 태어난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연한 핑크빛 피부에 비치는 미세한 혈관들과 축축히 젖어있는 얇은 머리카락들. 찡그린 표정과 주름들, 군데군데 묻어있는 피의 흔적까지. 영락없는 신생아의 모습이지만, 크기는 실제 아기의 200배는 될 듯하다. 안으면 부서질듯 연약하고 작은 신생아의 모습만 떠올렸지만, 그 아기의 모습을 이렇게 거대하게 재현해냄으로써 탄생의 위대함을 무게감있게 느낄 수 있다. 또한 신생아는 연약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보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아기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이렇게 표현해낸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 <A girl>의 탄생 과정

https://www.youtube.com/watch?v=hPE67R3VEzw


작품을 제작하는 뮤엑의 모습이 마치 조물주같다. 경외감 마저 드는 작업과정은 실제 인간의 탄생과정에 대해서도 상기시킨다. 하나의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은 이토록 위대하고 엄청난 일임을, 그렇기에 생명은 참으로 소중하고 유일한 것임을, 또한 이 생명이 가진 힘은 아주 거대하다는 것을 느낀다.


Ron Mueck, Mother and Child, 2003, Mixed media © Ron Mueck


02 인생

Ron Mueck, Boy, 1999, mixed media, 4.9x4.9x2.4m, © Ron Mueck
Ron Mueck, Woman with shopping, 2013, © Ron Mueck
Ron Mueck, Big Man, 2000, Mixed media, 203.8 × 120.7 × 204.5 cm © Ron Mueck
Ron Mueck, Mask II, 2011, Mixed media, 


Ron Mueck, In bed, 2005, Mixed media , 161.9 x 649.9 x 395cm © Ron Mueck
Ron Mueck, Couple Under An Umbrella, 2013, mixed media, 300 x 400 x 500 cm © Ron Mueck

론 뮤엑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기, 소년, 중년의 여성과 남성, 노년기의 부부까지 아주 다양하다. 조각들이 각자의 삶을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될만큼, 과장없이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조각의 표정과 자세로부터 그들의 감정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모두 다른 인물이며, 다른 표정을 짓고있지만 '초연함'이라는 공통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각 인물들은 왠지 모르게 사색에 잠긴 듯 하며, 고독해보이기까지 한다. 뮤엑은 작품에 상상을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했다. 우리가 보고있는 그의 작품들은 주변에 있을 법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보여주지만 오히려 이는 우리를 더욱 사색에 잠기게 한다.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각자의 고민을 안고 지내는 우리의 외로운 모습이 그의 작품에서는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우리가 그의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건 아마 저 인물들의 고독함을 모른 체 할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저 인물들의 고독함이 우리의 내면에도 잔재하니까.



03 소멸

Ron Mueck, Dead dad, 1996-97, 20 x 38 x 102 cm, © Ron Mueck

<죽은 아버지> 는 뮤엑의 처녀작으로 그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정밀하게 묘사된 나체에서 리얼리티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는 실제 그의 아버지의 임종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그의 자전적인 슬픔과 상실감이 드러난다. 인간의 죽음을 가감없이 보여준 이 작품은 서늘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죽음의 현장을 생생하게 포착한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갓 태어난 아기부터, 파릇파릇한 소년, 고뇌에 빠진 남자와 여자, 늙어가는 노년의 부부와 죽음을 맞이하는 아버지까지. 그의 작품에는 탄생과 소멸, 그리고 그 사이 존재하는 우리의 삶에 대한 실존적인 고뇌가 담겨있다. 우리는 탄생과 죽음에 대해 인지할 때에 비로소 그 사이의 인생을 더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다. 인간 삶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모두에게 인생의 이유는 다르며,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가지만 누구나 내제된 고민이 있다. 거창한 상상력이 묻지 않은 론 뮤엑의 인물들은 보다 생생하면서도 잔잔하게 우리를 위로한다. 그의 표상에 담긴 삶의 깊이에 잠겨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삶의 깊이다.

'Although I spend a lot of time on the surface,
 it's the life inside I want to capture.'



참고자료


https://www.bbc.com/culture/article/20181023-paula-rego-unsettling-images-twisted-from-disney

https://www.widewalls.ch/artists/ron-mueck

https://schakeringen.nl/ron-mueck-kleiner-en-groter-dan-het-leven/

https://ropac.net/ko/online-exhibitions/51-ron-mueck-25-years-of-sculpture-199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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