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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nt Sep 18. 2022

왜 한국 사람들은 비 올 때 우산을 써?

프랑스 친구들이 한국에 남기고 간 것들

22.08.21


2018년 프라하 교환학생 시절 나는 7명의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살았었다. 남자 4, 여자 3. 프랑스에서 2명, 베네수엘라, 폴란드, 핀란드, 홍콩, 한국에서 각각 1명씩. 이 중 나는 홍콩에서 온 엔젤, 프랑스에서 온 까밀과 한 방에서 살았다. 당시 남녀 칠세 부동석의 나라에서 23년을 살아온 나에게 모르는 남녀가 함께 한 집에 살면서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지내면서 재밌는 일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있었던 일화들을 조금 더 자세히 적어보겠다.


아무튼 이때 나랑 같은 방에서 살던 까밀이 친구와 함께 몇 주 전 한국에 놀러 왔다. 18년 이후 4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근황을 물어보니 코로나 시국에 할 게 없어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그렇게 한국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 했다. 마침 이직 타이밍과 겹쳐서 시간이 생겼고 이 기간에 바로 한국으로 여행을 오게 된 것이다.


놀라웠던 건 까밀이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에 내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혼자 서울에서 산지 5년이 돼가던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나라에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상당히 달랐다. 당시에 처음 겪는 타지에서의 외로움에 기숙사에서 통화를 자주 했었는데 이때 한국말이 들리는 느낌이 너무 예뻤다고 했다. 아마 엔젤이 쓰는 광둥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유하게 들린 게 아니었을까. 외국에 있다 보면 개개인이 결국 그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사절단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각설하고, 이들과 조금의 서울여행을 함께 하면서 나눴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을 짤막하게 담아보려고 한다.


 





1. 까밀은 남자인 친구와 함께 여행을 왔다.

나는 이런 문화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잠시 외국물과 멀어진 지난 2년 반 동안 너무나도 충실한 한국인의 마인드로 돌아갔고, 처음 청계천 앞에서 본 순간 너무 당연하게도 같이 온 친구인 레미가 남자친구인 줄 알았다.


여행을 하는 동안 머무는 게스트 하우스마다 질문을 들었다며 나에게 한국인들은 애인이 아닌 이성 친구와의 여행을 이상하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대부분(사실 100%에 가까울 것 같다)의 한국인들은 안된다고 생각할 것 같다. 이성을 친구로 인정을 하느냐 마느냐도 논란인데 여행, 심지어 해외여행을 같이 갈 수 있냐는 질문에 오히려 질문자를 이상하게 볼 것이 눈에 선하다. 나는 너희의 문화를 알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워할 것이라 했다. 한동안, 아니 아직까지도 여사친/남사친이 가능하냐는 것이 굉장한 이슈라 했더니 프랑스에서도 다 통용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진리의 사바사.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 달라서 가끔 술자리에서 똑같이 이 주제로 이야기하다 보면 프랑스의 유교 보이/유교 걸들이 열변을 토한다고 하니 역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2. 이들이 제일 만족한 음식은 크로플이다

까밀이 회사 다 때려치우고 파리에 크로플 집을 차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부드러운 크로와상이 와플 기계에 적절하게 구워졌을 때, 여기에 달달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위에 올려 먹었을 때, 추가로 아메리카노까지 곁들였을 때 얼마나 맛있는지 이들도 알아버렸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탈리아에서 누군가 김치 파스타를 만들었다던가, 미국에서 김치버거를 만들었는데 이게 너무너무 맛있는 상황인 게 아닐까 싶다. 신기하면서도 너무 감동적일 것 같긴 해. 아마 비슷한 감정인 게 아니었을까.


이들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말에 '한국인들은 주입식 교육을 받아서 그렇게 창의적이지 않아'라는 어쩌면 흔한 한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최근에 사회심리학자이신 허태균 교수의 콘텐츠에서 생각보다 한국인들이 융통성도 뛰어나고 주어진 무언가를 활용하는 것을 잘한다고 했다. 그 예시로 와플 기계를 들었는데, 정말 와플 빼고 다 만드는 기계가 아닐지 의심될 정도로 정말 온갖 걸 다 구워 먹는 한국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파리에서 크로플 가게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건데, 아마 영알남이었던 것 같다. 파리에 망고빙수 등 한국식 빙수를 파는 가게가 한국의 빙수 맛을 그대로 살렸을뿐더러 현지인들에게 엄청 인기가 많다고 했다. 이 외에도 여러 한국 카페들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확실히 한국식 디저트가 유럽에서도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3. 이들이 젤 충격받은 음식은 감자튀김이 올라간 피자이다.

부산 여행 중에 피자를 먹었는데 피자 위에 감자튀김이 잔뜩 올라간 피자를 발견하고 어떻게 이런 조합이 다 있냐며 나한테 사진을 보내왔다. 개인적으로 나는 생각보다 짭짤한 감자튀김과 토마토소스, 치즈, 빵의 조합이 괜찮아 이 피자를 정말 좋아하는데, Half Italian, Half French인 까밀은 절대 용납이 되지 않는 조합이라고 했다. 이해를 해보자면 크로와상안에 겉절이를 넣어서 파는 느낌일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라 너무 재밌었고, 그저 극대노하는 까밀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들어줬다.


폴란드 브로츠와프를 여행할 당시 한 푸드트럭에 Kimchi 가 써져있는 것을 보고 홀린 듯이 메뉴판 앞에 서있었다. 김치라고 써놨지만 사실은 태양초 고추장이었고, 결국 파는 것은 김치버거가 아닌 고추장 수육 버거였다. 이게 무슨 조합이냐며 궁시렁거리면서도 정신 차려 보니 돈을 내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가 한국인 인 걸 보고 반가워하며 평을 부탁했는데 죄송스럽게도 빵과 고추장은 정말 생각보다 별로였고 우리가 느끼기에도 꽤나 매웠었다. 까밀이 피자 위에 감자튀김??? 했던 것이 햄버거에 고추장??? 인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ㅎㅎ

브로츠와프 광장 내 고추장 수육 버거를 팔던 푸드트럭




4. 이들은 인생 라멘집을 한국에서 찾았다고 했다.  

한식이 많이 대중적이게 됐다고들 하지만 아직까지 유럽에서 한식보단 일식을 접하는 것이 훨씬 쉽다. 이들도 일본 음식을 좋아했는데, 서울에 온 첫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에게 파리에 정말 맛있는 라멘 맛집이 있다며 내 구글 지도에 친히 별까지 달아 줬었다. 그런데 2주 후에 다시 만났을 땐 인생 라멘집은 파리가 아닌 한국에 있었다며 한껏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일본에서 먹는 라멘은 얼마나 더 맛있을지 상상도 안된다며 설레 하는 걸 보니 아무리 식문화가 달라 먹고 자란 음식이 다르대도 맛있어하는 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독일이 아니더라도 체코나 오스트리아에서 먹는 소시지가 우리나라 소시지보다 맛있듯 지리적 인접성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유럽 여행하는 동안 밥이 너무 먹고 싶은데 주변에 한식당도 아시안 마트도 없을 때 대안으로 일식집을 찾곤 했는데, 내가 정녕 이 돈 주고 먹는 게 스시와 롤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충격이었기에 이들이 한국의 일식 맛을 알아주는 것이 그렇게 기뻤다.




5. 이들은 맥주를 마시고 저녁을 먹는다.

한 곳에서 3-4시간 동안 앉아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거나, 바에 먼저 가서 맥주를 마시고, 8-9시쯤 느지막이 저녁을 먹는 것이 전형적인 프랑스 문화라고 한다. 한국에선 저녁에 반주를 곁들이거나, 저녁을 먼저 먹고 맥주를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들은 반대로 저녁을 바로 먹기엔 너무 더워 맥주를 마시면서 더위를 먼저 식히고 저녁 먹을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들의 음식점에는 에어컨이 없기에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French Culture를 소개해 주겠다며 19시쯤 나를 맥주집으로 이끌었는데 생각한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시원하면서도 오히려 배가 고파지는 느낌이라 저녁이 더 잘 들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한국 친구들에게 권하면 아무도 안 따라주겠지..ㅎ




6. 이들은 한국의 습한 여름 날씨를 제일 힘겨워했다.

처음 다시 만난 날 까밀과 레미가 나한테 How've you been 다음으로 한 말이 "How've you lived your whole life in this fucking terrible weather"였다ㅋㅋ 처음 겪는 타들어갈 듯한 더위가 아니라 찌는 듯한 더위에 정말이지 힘들어했다. 아직도 30분 걷고 앞 뒤가 다 젖은 레미의 반팔이 눈에 선하다.


더위도 더위지만 하루에 말도 안 되게 쏟아붓는 비에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불행하게도(?) 서울에서도 관측 역사상 가장 많은 비를 경험했다. 폭우가 내리기 바로 전날, 이들은 나에게 한국인들은 왜 비가 오면 우산을 쓰냐고 물었다. 비가 오니까 우산을 쓰지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라고 할 수 있는데, 프랑스를 비롯해 영국, 독일 등 북해 연안의 나라들은 비가 많이 오고 흐린 날씨가 많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연 강수량이 몇 달에 집중되는 강수 패턴이 아니라 1년 내내 고르게 적당히 온다. 또 하루에도 사계절이 다 나타날 만큼 변화무쌍하고 대체적으로 비와 함께 바람이 많이 부는 경우가 많아서 우산을 쓰는 게 무색하다. 그래서 그냥 뛰어간다거나 바람막이 같은 옷을 챙겨 다니는 게 일반적이다. 놀라운 건 26년을 살면서 이들 스스로 우산을 사본적이 없었다고 했다. 정말 충격적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 장마인데 너네 한번 한국에선 비가 어떻게 내리는지 보라고 말했다. 말하기가 무섭게 바로 다음날 서울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고 강남은 물바다가 됐다. 의도치 않게 나도 26년 살면서 처음 보는 비를 소개해 준 꼴이 돼버렸다. 이들은 우산을 쓰는 것을 한국인들의 클리셰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임을 단번에 이해하게 됐다. 그 길로 이들은 인생 첫 번째 우산을 구입했다. 레미는 우산을 한국에서 산 souvenir라고 했다. 나에게 꽤나 인상 깊은 에피소드이다.



7. 이들은 기차가 정각에 오는걸 신기해했다

유럽인 아니랄까 봐 까밀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KTX가 꼭 제시간에 오는지를 봐야겠다고 했다. 프랑스는 맨날 더워서 밀리고, 추워서 밀린다던데 똑같이 덥고 추운 한국은 왜 가능하냐며 정말 극혐이라는 단어 말고는 설명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는데, 역시 자기 나라는 자기가 까야 그 맛이 산다.

생각해보면 나도 유럽 여행할 때 혹시 몰라 차 시간 맞추어 뛰어가면 역시나 그렇듯 늘 기차는 늦게 왔고, 정시에 출발한 열차가 손에 꼽는 것 같다. 진짜 그 동네는 왜 맨날 늦을까? 여유의 차이일까? 서비스에 대한 마음가짐 차이일까?



8. 이들이 주변에 널린 산들을 좋아했다.

까밀은 하이킹을 굉장히 좋아한다. 2주간의 여행 일정에 무려 북한산, 한라산, 설악산 등반을 계획했다고 하니 말 다했다. 프랑스에는 알프스 있지 않아?라고 물었는데, 우리도 동네 뒷산이 아니라 큰 산을 가려면 휴가를 내고 설악산이나 한라산 등지에 가야 하듯 프랑스는 땅 덩어리가 훨씬 크고 알프스는 넓어서 이들도 Holiday에나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알프스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산 없는 평평한 땅이기에, 이렇게 어디에서나 주위에 산이 널린 광경, 그중에서도 산과 수많은 건물들이 어우러진 서울이 너무 인상적이라고 했다. 레미 말로는 까밀이 처음 인천공항을 나와 공항철도를 타고 바깥 풍경을 보고 말한 게 산이 너무 많다 라며 세상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는데 그 표정이 너무 잘 그려져 그게 그렇게 웃길 수 없었다.


나는 반대로 너희가 늘 보는 지평선을 볼 때면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 손꼽히는 몇몇 장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스페인 론다에서 세비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본 노을이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속으로 새빨간 해가 지고 남겨진 남색 하늘과 (굉장히 밝은 파랑에 가까운 네이비 색이었다.) 그 밑으로 빨강 주황 노란색이 그라데이션으로 층층이 쌓여 있었는데, 그 장면이 왜인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역시 사람은 익숙하면 소중함을 모른다고, 익히 보지 못하는 것들을 갈망하는 것이 정말이지 맞다.




9. 이들은 제주도가 너무 커서 실망했다.

까밀은 한국 여행을 하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가 제주도라 했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여름에 휴양하러 가는 섬이라는 말을 듣고 어디 유럽인들이 휴양 가는 아주 작은 섬을 생각했는 모양이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빽빽한 제주시내에 너무 놀랐고 서귀포는 호텔과 리조트로 가득한 관광지여서 충격적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이들이 생각하는 섬의 크기가 아니었을뿐더러 프랑스는 수도 파리의 인구가 200만 명, 그다음 도시인 마르세유가 80만 명, 세 번째 도시인 리옹에 50만 명이 산다. 그런데 제주시 인구가 65만 명이다ㅎ 이들이 놀라는 게 당연지사다.


개인적으로 나름 프로 제주 여행러로서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제주의 매력을 담고 있다는 구좌나 산방산 쪽을 추천해주고 싶었는데, 제주도에 머무르는 시간이 워낙 짧았고 까밀은 파워 J라 이미 모든 동선을 다 짜고 거기에 맞게 숙소를 예약해와서 다른 장소를 끼여 넣을 틈이 없었다.




10. 이들은 캠퍼스 문화를 부러워했다.

우리가 교환학생으로 갔었던 학교는 체코에서 제일 큰 공과대학교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KAIST 랑 비슷한 느낌이다. 전문대를 제외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은 대부분의 학과를 보유하고 있는 종합대학인지라 나에게 당시 캠퍼스는 빌딩 몇 개 없는 굉장히 귀여운 캠퍼스였는데, 까밀이 다녔던 학교는 전교생이 200명 남짓인 건물이 하나밖에 없는 Engineering School이라 당시 프라하 학교 캠퍼스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한국에선 고등학교만 해도 한 학년에 200명이 넘을 텐데 신기하기만 하다.

대학이라곤 2년제/4년제가 거의 전부인 한국인 입장에서 프랑스의 교육체계를 완전히 이해하긴 쉽지 않았지만 까밀의 말에 의하면, 예를 들어 공학계열을 공부하고 싶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2년 간의 Pre-Uni 느낌의 Engineering School을 다닌 후, 다른 학교로 들어가 학사 1년 마스터 2년을 하는 게 일반적인 공대생의 루트라고 했다.  


한국 캠퍼스가 우리가 다녔던 학교보다 훨씬 더 크다고 말하니 이들은 한 번 가보고 싶어 했다. 숙소를 홍대로 잡았길래 신촌 연대 캠퍼스를 가보라고 권했는데 아직 캠퍼스 투어 후기는 듣지 못했다. 조만간 한번 어땠는지 물어봐야겠다.




11. 이들은 종각 젊음의 거리를 인상 깊어했다.

우리에게는 하나도 안 이쁘고 촌스러운 간판들이 내뿜는 불빛들이 피로하게만 느껴지던 거리인데 반짝이는 게 정말 이쁘다고 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한국의 밤거리냐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정말 마침 초안을 쓰고 있는 8월 21일,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본 유현준 교수님의 유튜브에서 이 내용을 다뤘는데, 우리가 라스베이거스 가면 반짝이는 네온사인들이 이쁘다고 느끼지만 미국인들은 그것을 전혀 이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간판을 정보로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고, 모국어로 된 간판은 상징적인 의미보단 정보로 인식되어 피로도가 더욱 높아져 결국 우리는 같은 뷰를 보고도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또한 유럽은 백화점을 제외하고는 건물 자체가 상업 용도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주상복합 형태로 1층은 식당이나 상점, 2층부터는 주거시설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1층에만 간판이 있는 것이 흔하다. 때문에 온 건물을 휘감는 간판이 이들의 눈엔 익숙지 않아 더욱이 그저 건물을 휘감는 반짝이는 무언가에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나에게는 오히려 촌스럽고 지저분하게 느껴지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이쁘게 보일 수 있다. 모든 것은 관점의 차이이다.




12. 이들은 한국인은 도덕성이 높으면서도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외국인이 놀라는 포인트로 많이들 소개된 모먼트에서 이들은 똑같이 반응했다. 어떻게 상점 바깥에 물건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고 팔며 심지어는 아무도 없이 기계만 달랑있는 무인 상점이 어떻게 가능한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이들에게 엄복동의 나라임을 설명해줬다. 카페에서도 다른 사람의 물건이 아닌 자리만 탐내는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꼭 자전거만 보면 훔쳐간다고. 아무튼 이들은 남은 2주 동안 즐겨야 한다며 나랑 있는 매 순간 배낭을 정말 아무 곳에나 던지고 다녔다ㅋㅋㅋ 일부러 가방을 격정적으로 챙기지 않는 모습이 정말이지 너무 웃겼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모든 곳에서 도덕성이 높은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한 아주머니 분 께서 까밀이 예약한 창가 자리에 먼저 앉아서 안 비켜준 모양이다. 어차피 1시간이면 가니 아주머니의 원래 자리로 추정되는 통로좌석에 앉아서 가게 됐고, 이에 소심한 복수를 하고 싶었던 이들은 비행기가 멈추자마자 일어나서 짐을 챙기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최대한 take time 했다고 했다. 계속 나가고 싶어 하시는 할머니한테 하는 나름의 소소한 복수였다. 사실 나도 돌이켜보면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본가로 오고 가는 길에 아주머니들한테 뺏겨 내 원래 창가 자리가 아닌 통로 자리에 타고 간 적이 종종 있다.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늘 이들과 이야기할 때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라 괜히 다 부끄러웠다.




번외. 프랑스엔 entp / enfp 가 가장 많다?

빠질 수 없는 MBTI이야기이다. 나름 MBTI 덕후라 어떤 사람과 어느 정도 이야기해보면 그 사람의 MBTI를 웬만큼은 파악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한국에선 최근에 NF 성향이 많아진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아직은 주로 젊은 층에 해당하며 부모님 세대에는 ST 성향이 제일 많다.(사실 NF/NT, SJ/SP로 나누는 게 맞는 분류긴 하다) 특히나 급격한 발전을 거치면서 세대 간 자란 환경이 너무 다른 것에서 파생되는 갈등이 정말 많다. MBTI 에도 잘 반영이 되어있다.


이와 반대로 프랑스엔 세대를 불문하고 NT, NF 성향이 정말 많다고 한다. 특히 ENTP, ENFP.

교육 방식의 차이이지 않을까. 철학을 정규과정을 배우고, 논술과 토론을 기반으로 하는 시험들. 이런 교육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방법을 길렀을 것이고 그게 대중들의 성격이 된 것이겠지. 우리나라는 아직까진 흔히들 말하는 주입식 교육이 대중적이고 나 또한 있는 지식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활용하는 게 더 익숙하다. 맞고 틀림을 논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각각이 필요한 영역이 다르기에 고른 교육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재밌었던 건, 수많은 영어로 된 짤 들에서도 알 수 있듯 MBTI 밈은 만국 공통이라는 것이다. ESFJ인 까밀은 ISTJ인 상사가 맨날 자기가 던지는 농담에 웃기는커녕 진지하게 분석을 하려는 모습이 너무 싫다고 했고, 레미는 INTP인 상사가 정말 연구소에 있는 괴짜라며 진절머리를 쳤다. 물론 당연히 MBTI 가 모든 사람의 성격을 특정화 할 수 없지만 이들도 MBTI를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던 것 같다.









많은 외국 친구들을 알게 될수록 많은 이별을 겪게 된다. 어쩔 수 없다. 교환학생에서 친해진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2018년 이후 홍콩 친구 캔디는 두 번이나 한국에 놀러 왔고, 독일에서 온 마티아스, 체코에서 온 다비드와 시몬, 그리고 까밀까지 벌써 5명의 친구들을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코로나 시기를 감안하면 정말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친구들을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가만 보면 밖에서 보는 한국의 위상이 꽤나 높아진 게 마냥 국뽕인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기에 더욱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고 기약 없는 만남을 또다시 기약한다.

 

같은 나라에서 자란 사람들도 너무나도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온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흥미롭다.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고, 새로운 생각거리들을 던져주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의 고민들을 바라보게 되어 내가 당연하게만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그게 아님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이유이자 '인문학'이 대두되는 이유이고, 나에게 너무도 큰 즐거움이자 계속 외국에 나가고자 하는 이유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인지라 언제라고 장담하긴 어렵지만 아직까지 나의 목표 중 하나는 영국에서 살아보고 일해보는 것이고, 그때쯤 까밀을 유럽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이 파리나 프라하면 더더욱 낭만이 가득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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