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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May 30. 2016

때는 나의 일용할 양식이여

집에 욕조가 있어도 그 곳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우선 물을 받기 전후로 욕조를 깨끗이 닦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고 뜨거운 물을 욕조의 삼분의 이 가량 받아서 쓰고 나면 그 물을 버리는 일이 좀 아까운 생각도 들어서다.  물론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욕조에 기대어 눈을 감으면 하루의 피로가 싸악 풀리는 기분은 정말 좋지만, 그 물을 욕조를 닦는데 사용한다 해도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을 버리는 일이 왜 그런지 편치 않다.  따지고 보면, 샤워하며 흘려보내는 물의 양도 그에 못지않을 것 같기는 한데 ‘모았다 버리는 물’과 ‘흘려버리는 물’의 시각적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목욕”에 대한 나의 개념은 “때”를 벗기는 일이어서 몸을 물에 불리고 나면 때수건으로 밀어줘야 개운한 기분이 드는데 모든 곳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손이 닿지 않는 부분들이 있고, 왜 그런지 집에서 미는 “때”는 민 거 같지 않은 기분이 든다.  그렇기에 “때”를 벗기는 일은 집보다는 대중목욕탕에 가서 하고 나야 더 개운한 기분이 드는데 그건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다닌 탓 일거다. 엄마 손에 이끌려 정기적으로 다닌 덕분에.


외국에서 생활하며 불편했던 일 중의 하나가 대중목욕탕에 갈 수 없다는 일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때”를 벗기지 않아도 그럭저럭 지낼 만하기는 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더니 못 가면 못 가는 대로 집에서 대충, 아주 가끔 “때”를 밀며 기분학적 찝찝함을 해소했다.  그리고 대중목욕탕에 못가는 몇 년 동안 그 기분학적 찝찝함은 점점 줄어들어 “때”는 굳이 밀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들은 저절로 떨어질 각질들은 샤워만 해도 충분히 떨어져 나가니 굳이 벗겨낼 필요가 없다고 하고, 어떤 이는 과도한 “때 밀기”는 피부에 자극을 주어 좋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때를 너무 세게 밀고 난 다음엔 피부가 빨갛게 되다 못해 딱지가 앉는 일도 종종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1-2년은 대중목욕탕을 가지 않고 샤워만 하며 잘 지낼 수 있었지만, 우연히 온천에 간 이후로는 다시 대중목욕탕을 찾는다. 온천물에 몸을 실컷 불리고 났더니 “때”를 밀지 않을 수 없었고 밀고 난 이후의 그 상쾌함, 피부의 보들보들한 감촉에 의한 기분 좋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외국에 다녀온 몇 년 사이 대중목욕탕의 달라진 풍경 가운데 하나는 서로의 등을 밀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각자 때를 밀다 옆에 앉은 사람에게 서로 등을 밀어주자고 제안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좋다고 하거나, 일행이 있어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인 경우에도 본인의 등은 괜찮으니 밀어만 주겠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 밀어 달라는 말을 못 하고 혼자 낑낑대는 사람을 보면, 먼저 다가가 ‘등 밀어드릴까요?’라고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나 같이 남에게 말 거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먼저 물어봐주는 사람들이 참 고마웠었다.


대중목욕탕에 다시 다니기 시작하며 등 밀어줄 사람을 물색하다 도무지 입도 떨어지지 않고, 어쩌다 물어보면 '저는 됐는데요!‘하며 쌀쌀맞게 거절하는 모습에 상처받아 “때”미는 아줌마의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이 닿지 않는 등만 밀었는데 아줌마는 등만 미는 것이 아니라 몸의 후면 부분을 다 밀어주었다.  그러다 전신을 밀게 되었는데, 비용 면에서 그게 더 나았다.  낯선 사람이 몸의 구석구석을 밀어주니 좀 민망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익숙해지니 편안하고 가끔 마사지라도 받는 날은 호강을 한 듯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그렇게 주기적으로 목욕탕에 간다. 그러다 보니 “때”미는 아줌마 얼굴이 낯익기도 하고 명랑한 성격의 아줌마는 이런저런 말을 걸어와 제법 편하게 얘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느 날 문득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한 가지 일을 오래한 이 분들은 어떤 재주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때를 미는 힘의 조절 능력, 한 명 당 소요되는 시간의 정확성 - 가장 빨리하는 사람은 15분 만에 끝내고 때도 깔끔하게 미는 걸 봤다, 수십 명을 밀고도 지치지 않는 기술과 요령 등등이 있을 거라고 짐작은 되었다.  그런데 정말 알고 싶은 것은 피부를 보면 그 사람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탄력의 정도를 알 수 있으니 얼굴은 비록 동안이어도 속살을 보면 나이 든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함.


아줌마는 ‘에이, 그런 건 모르지~’ 하신다. 대신 하도 밀다 보니 알게 된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몸에 만져지는 혹을 알 수 있단다.  본인들은 잘 모르는데 갑상선, 유방, 자궁 쪽에 만져지는 것들이 있어 병원에 가보라고 하면 나중에 물혹, 암 등으로 발견되었단다.  의사는 아니지만 의사 뺨치게 전문가가 되었다는 말씀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때 밀어 달라는 사람들이 참 고맙다고 하신다.  이거로 밥 벌어먹고 애들 교육시키니 고맙지 않겠느냐고.  “때는 나의 일용할 양식이여”라고 당당히 말씀하시는 모습에 예기치 못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잊고 있던 ‘작은 일에 감사하기’를 일깨워주심에.  때 밀어 주신 덕분에 호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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