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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Aug 23. 2016

'일'로만 볼게 아니다.

순간에 집중하고 느끼기.

1년 3개월 만에 사업부서로 돌아왔다.

현장의 소리를 들으며 실무를 하기에는 '감'도 떨어지고, 함께 일해야 하는 파트너들의 나이는 이제 다 어려서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며 돌아왔다.


막상 돌아온 현장은 그런 걱정을 할 틈도 없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떠안고 어떻게 하면 빨리 잘 끝낼 수 있는가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사업 방향에 대한 논의, 의사결정하기 전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는 간담회, 외부 사람을 만나기 전 내부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회의, 결정을 위한 회의, 행사 참여 등 사람들을 만나는 일의 연속인 생활로 돌아왔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시간은 가고, 기운이 빠진 채 퇴근시간을 맞이하는.  피곤함에 찌들어가는 생활로.   


그러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지만 내 일에 필요한 말만 골라 듣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수 차례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해치워야 하는 일 앞에서는 그저 거래를 통해 만난 사람들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회성 미팅인, 간담회라는 이름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그 간담회가 끝나고 나면 곧바로 이름을 기억할 수 없다.  얼굴은 물론이고. 


오늘도 일본 사람들과 간담회를 했다.  서울을 방문하는 일본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이런 간담회는 자료 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더 생생하고 미처 알 수 없었던 내용을 들을 수 있어 마케팅하는 사람에게는 참 좋은 기회다.  그분들의 얘기를 들으며 문득,  '이렇게 다양한 직업,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만남을 가졌던가! 직업상 만났던 각계각층 사람들의 얘기를 잘 정리했다면 좋은 글 소재들이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일"로만 생각했던 결과다.  




서울을 자주 방문하는 일본 사람들 중에는 '기운을 얻어서, 힘을 얻어서'라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서울에 오고 나면 뭔지 모를 에너지를 얻고 간다는 사람들,  한국의 '정'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는 말.  그래서 재래시장 방문도 좋아한단다.  나이 든 일본 사람들은 이제는 사라진 이웃 간의 소통을 그리워해서 서울 골목길의 오렌지 빛 가로등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사람'이 느껴진다는 표현을 하는데 왠지 나도 마음이 따뜻해지며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정작 어두컴컴하여 밤늦게 다니기 겁나는 그 가로등불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활기차고 열정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일본 사람들도 그렇단다.  정작 우린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데 말이다.


금수저, 흙수저 나누고 비리를 저지르고 부정부패한 얘기들, 강력범죄 등 암울한 뉴스만 접하다 보니, 우리는 대체로 음주가무를 즐기며 열정적으로 솔직하게 사는 사람들인 것을 잊고 있었던가 보다.


가수 뺨치게 춤과 노래를 잘하고 또 그것을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 위스키의 테스트 마켓이고 K-POP을 필두로 아시아의 대중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곳. 해외 아티스트들이 한번 오고 나면 열광적인 팬들의 반응 때문에 자발적으로 또 방문하고 싶어 한다는 곳.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너무 흔해서 귀해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각양각색,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다른 시각으로 다양하게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그저 '일'로만 치부해버렸다니...


오늘도 피곤하지만, 일을 하며 순간순간 느끼게 되는 이런 깨달음을 잘 유지해야겠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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